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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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levation, 2018

  작가 - 스티븐 킹




  어느 날부턴가 ‘스콧’에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매일 일정하게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옷을 입건 아령을 들건 무게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그런 기이한 일이었다. 은퇴한 의사 ‘밥’에게 상담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스콧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신 그는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옆집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데…….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전에 없던 상냥함’이라는 문구가 띠지에 적혀있다. 그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그게 말이 되냐는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반적인 상냥함과는 다른, 그런 상냥함을 말하는 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진짜 상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뒷면에는 잔혹하고 끔찍한 상황이 숨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상냥했다. 어떻게 스티븐 킹의 책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어쩌면 스콧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했기에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사는 ‘캐슬록’은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에서 중심이 되는 동네로, 온갖 사악한 존재들이 들끓고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기에 또 다른 특징이 붙었는데, 동성 커플을 꺼린다는 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드러내지만 않으면 괜찮은데, 그걸 밝히면 문제가 된다.’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콧은 달랐다. 그게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상처받은 옆집 커플을 위로하려고 했다. 스콧은 밥과 함께 그들의 식당에 가기도 하고, 동네 마라톤에 함께 참가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마침내 옆집 커플과 닥터 밥 부부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진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훈훈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스콧이 최후의 결단을 내리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과정 역시 무척이나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물론 그의 마지막 여정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끔찍하고 두려울 것 같지만, 스콧은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로 헤쳐 나간다. 그의 친구들 역시 슬프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행복을 빌어준다.


  그런 전반적인 분위기가, 지금까지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느꼈던 오싹함이나 공포를 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에서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인물들은 그런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순간 순간이 슬프지만 의미 있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매번 두툼한 분량으로 사람들에게 뿌리 깊은 공포와 그걸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려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얇은 분량으로 혐오를 이겨내는 과정의 공포 대신, 이해와 사랑에 대한 작품을 내놓았다.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가……. 뜻하지 않게,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책의 뒤표지에 ‘경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학교에서 소설의 길이로 분류할 때, ‘단편’과 ‘중편’ 그리고 ‘장편’과 ‘대하소설’로 배운 기억이 있다. 중편과 장편의 중간 단계라고 하는데, 이건 뭘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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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Gehenna Where Death Lives, 2016

  감독 - 히로시 카타기리

  출연 - 저스틴 고든, 에바 스완, 사이먼 필립스, 랜스 헨릭슨





 

  리조트 개발을 위해 ‘사이판’으로 온 일행. 우연히 부지를 돌아보다가 숨겨진 지하 벙커를 발견한다. 위험하다는 현지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영화는 음, 뭐라고 할까? 붕어빵처럼 틀에서 찍어내지 않았을까 싶은 전형적인 인물들과 어디서 본 느낌이 자꾸만 드는 흐름 때문에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이 캐릭터는 이런 행동을 하겠지’ 내지는 ‘이쯤에서 뭔가 나오겠네.’라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니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호러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때가 더러 있긴 하다. 그러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혹시?’라는 번뜩이는 생각과 동시에 ‘설마?’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게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초반이 너무 그저 그래서 중반에 살짝 드러난 복선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넘어가지만, 이 영화는 사이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0세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독일과 일본을 거쳐 현재는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그래서 영화는, 10세기 이전에 주민들이 믿었던 종교와 그들을 악랄하게 지배했던 나라들에 대한 한이 결합된 ‘뭔가’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부분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아직 그 시대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2차 대전 후 빠르게 성장한 덕분에 과거의 종교는 미신이 되어버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었다. 조상과 후손의 단절이 빚은 비극이랄까? 하여간 그 ‘뭔가’가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자 반전을 일으키는 열쇠였다. 그리고 떡밥을 꼼꼼히 회수하는 점에서, 영화의 기본 설정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부분들, 인물의 개성이라든지 판에 박힌 흐름은 그런 설정이 쌓은 점수를 우르르 깎아먹었다. 혹시 초반에 보는 사람의 기대를 스르르 마이너스로 사라지게 하고, 나중에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말을 듣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없는 초반은 다 까먹고, 볼만했던 후반만 머리에 남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한국 제목은 영화를 보고 지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물도 진부하고 극의 흐름도 전형적인데, 제목까지……. 거기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 이 영화를 검색하면, 포스터에 사막과 피라미드가 떡하니 그려져 있다. 설마 포스터 담당자도 영화는 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이미지를 선택한 걸까?



  기본 설정이 너무 아까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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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화이트 - 기묘한 그림동화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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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모호로시 다이지로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로 익숙한 ‘모호로시 다이지로’의 단편만화책이다.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았기에, 판타지에 기괴, SF, 호러, 그리고 개그까지 적절히 섞은 작가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 단편집 역시, 그런 그의 특색에 진지함까지 추가하여 색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읽은 동화도 창작하는 사람이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일곱 마리 새끼 염소』는 엄마를 기다리며 집에서 놀던 일곱 형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방문을 받는 이야기다. 늑대라고 알고 있지만 늑대가 아닌,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평범하지 않은 집에서, 일곱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호하게 설정이나 배경을 보여줘서, 책을 읽고 난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기묘한 초대』는 원작이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보니 간 소시지와 선지 소시지가 나오는데, 그냥 소시지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 보면 자아 분열을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고, 세뇌라든지 환각에 빠져 헛것을 보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원작을 찾아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부와 그 아내의 이야기』는 물고기에게 소원을 빌어 부자가 되고 싶었던 한 부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결말이 더 행복하게 끝난 것 같다. 그나저나 어부, 아내 말을 너무 잘 듣는다.



  『스노우화이트』는 백설공주 이야기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원작을, 더 음침하고 음울하며 종말론적인 19금으로 바꾸어놓았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백설공주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결말이었다.



  『생쥐와 참새와 소시지』는 제목에 있는 세 친구가 IT업계로 뛰어들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뭐랄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가 목표가 뭐였는지 상실해버린, 현대인의 비애를 보여주는 거 같았다.



  『라푼젤』은 탑에 갇힌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라푼젤의 이야기다. 배경이 미래로 바뀌었는데, 결말이 으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코르베즈 나리』는 인간을 습격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다. 원작이 뭔지 모르겠다. 이 책만 보면, 동물들이 악당 같다.



  『누가 암탉을 죽였나』는 추리물인데, 꽤나 재미있고 유쾌했다. 그 와중에 은근히 장르문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풍자하고 있었다.



  『카라바 후작』은 '장화신은 고양이'를 바꾼 작품인데, 원작도 재미있지만 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아니, 사실 이게 더 마음에 들었다. 어릴 적에 변신 능력까지 있던 카라바 후작이 그렇게 쉽게 당하는 것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의문을 말끔히 씻어주는 이야기였다.



  『밀짚과 숯과 누에콩』 역시 원작이 약간 기억이 나는데, 확실하지가 않다. 역시 추리물인데, 이것도 꽤나 유쾌했다. 역시 삼각관계는 위험하다.



  『뒤바뀐 아이 이야기』는 요정이 자신의 아이와 인간의 아이를 바꿔치기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요정의 아이가 인간의 실험 대상이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무서운 건, 권력을 가진 인간의 탐욕이라고 할 수 있다.



  『황금열쇠』는 우연히 주운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는 작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상자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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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Agatha Christie's Poirot: Series 7 & 8 (아가사 크리스티 : 명탐정 포와로 시리즈 7 .8) (한글무자막)(Blu-ray)
Acorn Media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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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2002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이번 8시즌도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Evil Under the Sun』은 소설 ‘백주의 악마 Evil Under the Sun, 1941’가 원작이다. 헤이스팅즈의 레스토랑 오프닝 날, 포와로가 식사를 하다 쓰러진다. 의사의 진단과 미스 레몬의 권유로 그는 헤이스팅즈와 함께 휴양지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부유한 자산가인 ‘아레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갈등을 보게 된다. 그녀를 의심하는 남편 ‘케네스’과 새엄마인 그녀를 싫어하는 의붓아들, 그녀와 친구 이상의 관계인 것 같은 ‘패트릭’,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질투하는 부인 ‘크리스틴’, 케네스의 오랜 친구로 아레나를 좋아하지 않는 ‘미스 댄리’ 그리고 신경쇠약에 걸린 것 같은 목사 등등. 아레나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의 선망과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레나가 살해당하는데…….



  드라마 시작 부분에 목사가 부정하고 사악한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제벨’에 대한 설교를 한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악마가 등장한다. 얼핏 보면, 아레나가 이제벨이고 악마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녀가 가진 부가 싫어서, 그녀의 미모가 싫어서,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게 보기 싫어서, 그런 악의와 시기와 질투가 쌓여서 그녀를 이제벨이자 악마로 만들다가 끝내는 희생양이 되게 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고, 배려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보다 뭔가 하나라도 더 나은 게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깎아내리려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배려할 필요 없이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시즌, 투자에 실패해 망한 헤이스팅즈가 이번에는 런던에서 큰 레스토랑에 투자한다. 그리고 하아……. 헤이스팅즈는 투자의 귀재인 것 같다. 망할 곳만 골라서 투자하는 투자의 귀재. 아레나의 의붓아들로 나오는 배우가 어디선가 본 거 같아 생각해보니, 미스 마플 시즌4 ‘Murder Is Easy, 2009’에서 경찰로 나왔었다. 새엄마의 살해사건에 충격과 영향을 받고, 경찰이 되었을 거라고 혼자 소설을 써본다. 그나저나 의학적인 비만이라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진단을 믿지 못하는 포와로를 보면서, 뜨끔한 이유는 왜일까?



 


  『Murder in Mesopotamia』는 장편 ‘메소포타미아의 죽음 Murder in Mesopotamia, 1936’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즌 3의 ‘The Double Clue’에서 포와로와 미묘한 감정 교류가 있었던 ‘로사코프 백작 부인’이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다. 이에 포와로와 헤이스팅즈는 약속 장소인 바그다드로 향한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포와로는 유적 발굴단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몇 년 동안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하던 발굴단이었지만, 단장인 ‘라이드너 박사’의 부인이 동행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고 한다. 전남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부인과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 다른 사람들. 그러던 중, 잠긴 방 안에서 부인이 살해당하는데…….



  집착남의 끝을 본 기분이었다. 첩자 짓을 하다가 미국 정보부에서 잘린 것도 모자라 감옥에서 탈출하면서도 놓지 못한 부인이라니! 죽은 척하고 그녀 곁을 맴돌면서, 다른 사람을 사귈 때마다 협박장을 보내다니! 데이트 폭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스토킹? 하아, 자기가 잘못해서 헤어져 놓고 찌질하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남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모양이다. 그래놓고 자기 머릿속에서는 세기의 사랑이자 죽음도 불사한 절절한 로맨스라고 여기겠지. 죽은 여인만 불쌍한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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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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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성희, 전건우, 정명섭, 조영주, 차무진




 

  좀비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은 상당히 공포스러우면서 또 매력적이다. 물론 홍콩에서 만든 강시는 귀엽고 코믹한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좀비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핫한 아이콘의 하나이고, 다양한 장르로 발전해왔다. 오리지널로 창작하는 것도 모자라,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작품에 변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 작품들이 거의 영미권 문학쪽에서만 발견되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도 그런 시도를 한 작품이 있다는 소식에 ‘오오!’하며 설렘과 반가움이 앞섰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 재미있다고, 꼭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관동행: GAMA TO GWANDONG』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關東別曲, 1580’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관동별곡에 얽힌,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십여 년도 동안 유배지에 있던 정철이 갑자기 관찰사로 임명된 이유, 그리고 부임지로 가는 길에 겪은 목숨을 건 사투 등등. 거기다 사람들의 신의와 배신, 충정 등이 잘 드러나 있었다. 여기서는 좀비를 ‘걸귀’라고 부른다.



  다 읽고 기억에 남은 건, 뭐니 뭐니 해도 김치였다. 역시 김치는 좋은 것이다.




  『만복사 좀비기』는 ‘매월당 김시습’이 조선 초기에 저술한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배필을 구하고자 불상과 저포놀이로 내기를 한 양생에 관한 내용인데, 여기서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시귀에게 쫓겨 만복사에 숨어있는 상황에서도 배필을 구해야한다고 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고자 그런다고 하는데, 흐음. 그런 상황에 아이 낳고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지막 반전이 멋졌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는 ‘주요섭’이 1935년에 발표한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원작이다. 여섯 살 난 ‘옥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원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오랜 병으로 괴팍해진 아버지와 시댁 식구들까지 건사하며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어머니, 그리고 의사인 사랑손님.



  아, 옥희 어머니에게 반해버렸다. ‘엄마는 참는 여자가 아니야.’라니! 그리고 시댁 식구들과 자신을 험담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휘두르던, 읍읍 여기까지.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1924’를 각색했다. 다른 작품들은 소설 속의 시간대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 이야기만 배경이 현대다. 채식 주의자였던 작가가 어느 날부터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하면서 사고를 당하고, 이후 자신의 입맛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첨지’와 그 아내의 슬프면서 어쩐지 화도 났던 그런 이야기가 어쩐지 액션 활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기를 못 먹는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슬픈 이야기였다.




  『피,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나기, 1953’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소녀가 죽은 그 이후를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소제목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잔망스러웠던 소녀는, 계속 잔망스러웠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를 너무 사랑했다. 이건 좋아한다는 걸 넘어서는, 진정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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