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Gehenna Where Death Lives, 2016
감독 - 히로시 카타기리
출연 - 저스틴 고든, 에바 스완, 사이먼 필립스, 랜스 헨릭슨
리조트 개발을 위해 ‘사이판’으로 온 일행. 우연히 부지를 돌아보다가 숨겨진 지하 벙커를 발견한다. 위험하다는 현지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영화는 음, 뭐라고 할까? 붕어빵처럼 틀에서 찍어내지 않았을까 싶은 전형적인 인물들과 어디서 본 느낌이 자꾸만 드는 흐름 때문에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이 캐릭터는 이런 행동을 하겠지’ 내지는 ‘이쯤에서 뭔가 나오겠네.’라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니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호러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때가 더러 있긴 하다. 그러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혹시?’라는 번뜩이는 생각과 동시에 ‘설마?’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게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초반이 너무 그저 그래서 중반에 살짝 드러난 복선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넘어가지만, 이 영화는 사이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0세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독일과 일본을 거쳐 현재는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그래서 영화는, 10세기 이전에 주민들이 믿었던 종교와 그들을 악랄하게 지배했던 나라들에 대한 한이 결합된 ‘뭔가’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부분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아직 그 시대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2차 대전 후 빠르게 성장한 덕분에 과거의 종교는 미신이 되어버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었다. 조상과 후손의 단절이 빚은 비극이랄까? 하여간 그 ‘뭔가’가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자 반전을 일으키는 열쇠였다. 그리고 떡밥을 꼼꼼히 회수하는 점에서, 영화의 기본 설정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부분들, 인물의 개성이라든지 판에 박힌 흐름은 그런 설정이 쌓은 점수를 우르르 깎아먹었다. 혹시 초반에 보는 사람의 기대를 스르르 마이너스로 사라지게 하고, 나중에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말을 듣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없는 초반은 다 까먹고, 볼만했던 후반만 머리에 남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한국 제목은 영화를 보고 지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물도 진부하고 극의 흐름도 전형적인데, 제목까지……. 거기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 이 영화를 검색하면, 포스터에 사막과 피라미드가 떡하니 그려져 있다. 설마 포스터 담당자도 영화는 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이미지를 선택한 걸까?
기본 설정이 너무 아까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