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2002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이번 8시즌도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Evil Under the Sun』은 소설 ‘백주의 악마 Evil Under the Sun, 1941’가 원작이다. 헤이스팅즈의 레스토랑 오프닝 날, 포와로가 식사를 하다 쓰러진다. 의사의 진단과 미스 레몬의 권유로 그는 헤이스팅즈와 함께 휴양지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부유한 자산가인 ‘아레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갈등을 보게 된다. 그녀를 의심하는 남편 ‘케네스’과 새엄마인 그녀를 싫어하는 의붓아들, 그녀와 친구 이상의 관계인 것 같은 ‘패트릭’,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질투하는 부인 ‘크리스틴’, 케네스의 오랜 친구로 아레나를 좋아하지 않는 ‘미스 댄리’ 그리고 신경쇠약에 걸린 것 같은 목사 등등. 아레나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의 선망과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레나가 살해당하는데…….
드라마 시작 부분에 목사가 부정하고 사악한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제벨’에 대한 설교를 한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악마가 등장한다. 얼핏 보면, 아레나가 이제벨이고 악마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녀가 가진 부가 싫어서, 그녀의 미모가 싫어서,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게 보기 싫어서, 그런 악의와 시기와 질투가 쌓여서 그녀를 이제벨이자 악마로 만들다가 끝내는 희생양이 되게 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고, 배려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보다 뭔가 하나라도 더 나은 게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깎아내리려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배려할 필요 없이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시즌, 투자에 실패해 망한 헤이스팅즈가 이번에는 런던에서 큰 레스토랑에 투자한다. 그리고 하아……. 헤이스팅즈는 투자의 귀재인 것 같다. 망할 곳만 골라서 투자하는 투자의 귀재. 아레나의 의붓아들로 나오는 배우가 어디선가 본 거 같아 생각해보니, 미스 마플 시즌4 ‘Murder Is Easy, 2009’에서 경찰로 나왔었다. 새엄마의 살해사건에 충격과 영향을 받고, 경찰이 되었을 거라고 혼자 소설을 써본다. 그나저나 의학적인 비만이라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진단을 믿지 못하는 포와로를 보면서, 뜨끔한 이유는 왜일까?
『Murder in Mesopotamia』는 장편 ‘메소포타미아의 죽음 Murder in Mesopotamia, 1936’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즌 3의 ‘The Double Clue’에서 포와로와 미묘한 감정 교류가 있었던 ‘로사코프 백작 부인’이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다. 이에 포와로와 헤이스팅즈는 약속 장소인 바그다드로 향한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포와로는 유적 발굴단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몇 년 동안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하던 발굴단이었지만, 단장인 ‘라이드너 박사’의 부인이 동행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고 한다. 전남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부인과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 다른 사람들. 그러던 중, 잠긴 방 안에서 부인이 살해당하는데…….
집착남의 끝을 본 기분이었다. 첩자 짓을 하다가 미국 정보부에서 잘린 것도 모자라 감옥에서 탈출하면서도 놓지 못한 부인이라니! 죽은 척하고 그녀 곁을 맴돌면서, 다른 사람을 사귈 때마다 협박장을 보내다니! 데이트 폭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스토킹? 하아, 자기가 잘못해서 헤어져 놓고 찌질하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남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모양이다. 그래놓고 자기 머릿속에서는 세기의 사랑이자 죽음도 불사한 절절한 로맨스라고 여기겠지. 죽은 여인만 불쌍한 에피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