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권영락


출연 - 이종수, 구지성, 원기준, 한소영 








  참으로 신기하고 묘한 영화다. 인물들의 갈등이 빚어내는 긴장감과 바람직하게 들어가 있는 섹스 장면 그리고 충격을 주는 마지막까지, 꽤나 괜찮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주연을 맡은 남자 배우의 내적 갈등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부분은 신선하면서도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 저런 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구나. 또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어딘지 모르게 단아하면서도 모호한 표정과 여린 몸매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관계의 아슬아슬함과 주인공의 범죄행각이 발각이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파국에 치달은 두 사람의 관계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사건. 올해 괜찮은 호러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마음에 어쩐지 내가 다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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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위에 적은 글은 함정입니다. 엉엉엉


  하아, 나만 낚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낚시 리뷰를 써보자 생각했는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 같아서 포기한다. 앞에 얘기했던 '닥터'가 올해 개봉한 최악의 한국 호러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영화가 날름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직 올해의 한국 호러 영화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설마 이것보다 더 실망스런 작품이 존재할 리가…….


  왜 별점에 0을 줄 수가 없는지 안타깝기만 한 영화이다. 에로로 밀고나가려면 화끈하게 벗든지, 그게 아니라 호러로 나가려면 좀 더 긴장감 있게 진행을 하든지! 에로라고 부르기엔 너무 어정쩡하고, 스릴러적인 면에서는 긴장감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흔한 표현으로 죽도 밥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럼 떡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떡치는 장면도 그닥…….


  이건 마치 달걀말이를 만들려다가 달걀이 모자라서 오므라이스로 대체하려했는데, 그마저도 안 되어서 그냥 볶음밥에 달걀 프라이 하나 얹은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볶음밥이 맛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재료 맛이 각각 따로 노는데다가, 진밥을 볶아서 어딘지 모르게 질척거리는 이상한 게 나와 버렸다.


  영화를 보면서 두 개의 다른 영화가 떠올랐다. 한국 영화인 '얼굴 없는 미녀, 2004'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일본 영화 '오디션 Audition, 1999'이다. 기본 설정과 줄거리는 ‘얼굴 없는 미녀’에서 가져왔고, 결말은 ‘오디션’이었다.


  그래도 중간에 약간 변화를 주기 위해 남자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보여주었는데, 왜 그렇게 표현해야했는지 의문이다. 자위 장면이 내적 갈등의 외적 표출이라는 건가? 그럼 야동을 보고 딸을 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다 내적 갈등을 밖으로 표출하려는 건가? 난 지금까지 그냥 꼴려서 하는 줄 알았다.


  거기다 여주인공에게도 특이점을 주기위해 다중인격이라는 성격을 부여했는데, 그걸 잘 살리지도 못했다. 단지 그녀가 남자 주인공을 만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 아껴둔 것 같은데, 사실 그거 별로였다.


  차라리 순진한 애가 그런 악마성을 갖고 있는 게 더 오싹하지, 착해서 이용당하는 애 따로 있고 아주 나쁜 애 따로 있는 건 그냥 그렇다. 그렇다고 둘이 구별이 갈 정도로 배우가 특징을 잘 살려서 연기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인상은 주지 못했다.


  걸핏하면 나오는 남녀주인공의 섹스 장면도 마찬가지로 별로였다. 감독님, 야동보고 연구 좀 하셨어야죠! 이게 뭡니까! 이건 뭐 야하지도 않고, 짜증만 났다. 얘들은 한 가지 체위밖에 모른단 말인가!


  거기다 명색이 장르가 호러라는데, 어디가 호러? 마지막에 여자애가 미쳐 날뛰는 게? 초반에 살색 화면만 보이다가, 뜬금없이 빨간색 범벅이 된다고 호러는 아니다. 이건 호러를 무시하는 처사다!


  빠른 시일 내에 모든 포털사들은 이 영화의 장르 표기에서 호러 스릴러 빼기를 요구한다! 요구한다!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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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김성홍

  출연 - 김창완, 배소은, 서건우, 한다은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오!'하는 감탄사와 함께 망설임 없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올가미'와 '실종'의 감독이라니! 어쩐지 득템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덴티스트 The Dentist,1996'나 매니 코토 감독의 '닥터 기글 Dr. Giggles, 1992'의 향기가 너무도 진하게 났기 때문이다. 특히 '덴티스트'와 너무도 흡사한 설정과 진행 방식이어서, 혹시 한국판 리메이크라든지 오마주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름다운 젊은 아내와 사는 유명 성형외과 의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부인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고, 그동안 이성으로 억눌러왔던 본성이 튀어나오게 된다. 지금까지는 부인에게 변태적인 행위를 요구하면서 억제해왔지만, 그 한계 허용치를 넘어버린 것이다.


  상담을 받으러온 환자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퍼붓고, 수술을 하던 환자가 부인으로 보여 목을 졸라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노리던 장모를 죽이고, 부인은 죽지 않을 정도로 구타하고 감금한다. 그의 미친 짓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간호사들마저 하나둘씩 죽이고, 급기야는 환자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개조하려고까지 한다. 그러다 탈출한 간호사에 의해 경찰에 발각이 나면서, 그의 살인 행각은 제지를 받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게 시작한다. 부인이 골라준 넥타이가 천박하다고 분노를 터트리는 남편과 그가 나가자마자 애인을 불러들여 섹스를 벌이는 부인. 그리고 남편의 변태적 행위 요구 때문에 못 살겠다는 딸에게 조금만 더 참다가 위자료 왕창 받아 이혼하라는 장모.


  그리고 소심하기만 했던 의사가 차츰 변해가는 모습은 오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개인적으로 김창완 씨의 미소가 참 선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저런 행동을 하면서 저런 미소를 보이다니, 완전 또라이잖아! 제대로 미쳤구먼!'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러 영화라는 타이틀답게 그의 잔인한 행각은 꽤나 높은 수위를 자랑한다. 여기다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감독의 전작인 '실종'보다 더 하면 더했지 낮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는 많이, 아주 많이 아쉬웠다. 김창완 씨를 빼면 볼 것이 없다. 사실 호러 영화에서 사람만 잘 죽이면 되지, 더 뭘 바라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긴장감이 없었다. 예전에 '올가미'나 '실종'에서 보여줬던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은 서늘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도 판에 박힌 전개를 따라가고 있어서 마지막 장면도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다.


  '덴티스트'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치과에 가는 걸 고려해볼 만큼 무서웠지만, 이 영화는 그것도 아니었다. 요즘처럼 SNS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세상에, 의사가 환자의 목을 졸랐다는 기사가 뜨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체 그 의사에게 시술상담을 받으러 간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은 음……. 빨리 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오래오래 나왔으면 보는 사람이 더 고역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김창완 씨의 미친 살인행각 때문에,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을 한 부인과 그 불륜남이 피해자가 된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난리야, 불륜 커플 주제에.


   이것저것 그냥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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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oltergeist III, 1988

  감독 - 개리 셔먼

  출연 - 톰 스커릿, 낸시 앨런, 헤더 오루르크, 라라 플린 보일



  어찌된 일인지 캐롤 앤은 부모와 오빠를 다 잃고, 친척인 가드너 가족의 보호 아래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살고 있는 고층빌딩의 거울과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손거울까지. 바로 1,2편 내내 캐롤 앤을 데려가려고 했던 케인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거울을 통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케인을 막기 위해, 영매 탄자냐가 돌아온다. 케인의 힘은 점점 더 강해져, 물체를 비추는 곳이면 다 나타날 정도이다. 가드너 부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리고 그들의 딸 도나가 친구들과 몰래 파티를 여는 동안, 케인은 캐롤 앤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가드너 부인으로 나오는 사람은, 영화 ‘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 1980’에서 멋진 엘리베이터 장면에 나오던 그 배우이다. 게다가 가드너 부부의 딸로 나온 소녀는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 Twin Peaks, 1990’에서 주인공 절친으로 나왔었다.


  2편에서 케인을 맡았던 배우와 인디언 심령술사로 나왔던 배우 그리고 캐롤 앤 역을 맡았던 헤더 오루르크가 3편의 개봉을 얼마 앞두고 병사했기에, 이 영화에 대한 온갖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2편 제작 전에 큰딸로 나왔던 배우가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고 말이다. 물론 헤더 같은 경우에는 지병이 있었는데 그걸 의사가 발견하지 못했기에 급성으로 발전하여 사망한 사례였고, 다른 두 배우는 영화를 찍을 때부터 이미 병이 진행되던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연달아 배우들이 죽어나가니, 저주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만하다.


  그나저나 케인의 캐롤 앤에 대한 집착은 휴……. 어쩌면 빛으로 가는 건 핑계이고, 그냥 애를 괴롭히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단순히 어린 여자애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케인이 그녀를 데려가려면 몰래 들키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거울이나 물에 캐롤 앤이 다가갔을 때 괜히 ‘으하하하, 드디어 널 찾았다!’ 이러면서 난리치니까, 반항할 시간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이 구해주겠다고 달려드는 것이다. 원래 납치는 은밀하고 신속하게 하는 게 진리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어린 여자애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면 빛으로의 인도 어쩌구하면서 그냥 자기 옆에 두고 싶다거나.

 

  그렇다. 그들이 원한 것은 캐롤 앤이 자기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그 난리를 피운 것이다. 나쁜 놈들, 서로를 보호하려는 가족의 마음과 어린 소녀를 이용하다니!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기네가 질 것 같으니까 원래 우린 빛으로 가는 안내자만 있으면 된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선다. 하여간 잔머리는 엄청 잘 굴리는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도나 남자친구는 어떻게 된 거지? 가족이 아니라 아무도 신경 안 쓴 건가? 불쌍하다. 그 녀석도 자기 집에서는 귀한 아들일 텐데…….


  이 시리즈는 주연급인 어린 헤더 양이 요절하는 바람에 여기서 끝이 났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계속 나왔을까? 안 그랬길 빈다. 1편보다는 2편이, 2편보다는 3편이, 갈수록 엉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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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oltergeist II: The Other Side, 1986

  감독 - 브라이언 깁슨

  출연 - 조베스 윌리암스, 크레이그 T. 넬슨, 헤더 오루르크, 윌 샘슨


  

  지난번에 무사히 막내딸을 구해온 가족.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하지만 1편에서 무너진 그들의 집터에서 발견된 유적지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으니……. 그곳은 어느 사악한 지도자를 따라 목숨을 버린 광신도들의 무덤이었다. 막내딸에게서 아주 잠깐 빛을 보았던 사악한 혼령은 어린 소녀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족 주위를 맴돈다. 이제 막내딸을 구하기 위해 온 가족이 그 사악한 힘에 맞서 싸워야 한다.


  1편에서는 그냥 집터를 잘못 잡아서 그런 일을 겪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편을 보니, 조금 일이 복잡해졌다. 소녀의 외할머니뿐만 아니라, 소녀의 엄마까지 영능력을 갖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막내딸이 이어받은 것이고. 그래서인지 이번 편에서 소녀의 엄마가 갑자기 이상한 환영, 그러니까 예전에 사악한 지도자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광경을 보게 된다. 거기에 아메리칸 원주민인 인디언 무속인이 등장해, 가족들을 도와주겠노라 말한다. 전편에서 가족을 도왔던 능력자의 소개로 온 것.


  아무래도 미국인들, 그러니까 유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예는 미국 원주민들에게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무조건 그들이 등장하면 선이 어떻고 악이 어떻고 혼령의 세계 어쩌구 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 The X Files’에서도 그랬다. 거기서 한 사람은 거의 예언자로 추앙된다.


  초반에는 섬뜩한 분위기여서 마음에 들었다. 장난감 전화벨이 울리자, 의자에 앉아있던 대여섯살난 아이만한 인형이 고개를 돌리고 눈을 깜박인다. 거기에 그 전화를 받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으,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무속인들이 등장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사이비 굿판을 보는 것 같아졌다. 거기에 약간 어설픈 특수효과까지 가해지면서, 보는 동안 그냥 웃음만 나왔다. 심오한 뭔가를 주려고 애쓴 것 같지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냥 ‘미친놈은 죽어서도 미친 짓을 하네.’라는 생각만 들었다.


  덧붙여서 뜬금없는 개그도 왜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에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였겠지만, 글쎄? 내가 미국인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개그라고 넣은 게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감독이나 대본을 쓴 사람은 개그 코드가 나랑 안 맞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가 두 번이나 울어서, 불현듯 사자의 울음소리에 신빙성이 있는지 의아해졌다. (MGM사에서 만든 작품은 초반에 사자가 우는 횟수에 따라 영화를 상중하로 나눈다는 소문이 있다.)


  영화에서 큰딸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지인에게서 살해를 당했는데, 아마 이 영화에 얽힌 저주에 대한 소문이 이때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저주가 뭐냐고? 안알랴줌.



* 안알랴줌을 모를 분들을 위한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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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linic, 2009

  감독 - 제임스 라비츠

  출연 - 타브렛 베델, 앤디 윗필드, 프레야 스태포드, 클레어 보웬



  이 영화 광고에는 꼭 따라붙는 문구가 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이다. 그렇지만 영화에서와 똑같은 일이 진짜로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모티브만 따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임산부 배를 갈라 아이를 빼앗아 간 사건이 외국에서 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은 나니까.


  그래서 한동안 그런 류의 사건을 다룬 범죄 수사 드라마가 만들어졌었다. ‘크리미널 마인드 Criminal Minds’도 그렇고 ‘로 앤 오더 CILaw & Order: Criminal Intent’에서도 그랬고. 생각해보니 프랑스 영화 ‘인사이드 A l'interieur, Inside, 2007’도 비슷한 설정이었다.


  위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임산부를 잡아다가 아이를 강제 출산시키는 집단과 그들에게서 아이를 되찾아 탈출하려는 여자의 사투가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남편은 행방불명된 부인을 찾으려고 밖에서 애쓰다가, 일당에게 험한 꼴을 당한다. 그런데 이런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


  영화는 그런 기본적인 줄거리에 몇 가지를 더 첨부했다. 배틀 로얄식으로 자기 아이를 찾고 싶으면 다른 임산부들을 죽이라든지, 그 조직이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어서 지역 유지와 경찰까지 연결되어있다는 등등.


  이건 순전히 인간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으면 포기하고 부부끼리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이 있다. 그게 싫으면 고아원에서 아이를 데려다가 입양을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친척 아이를 입양하는 길도 있다. 방법이야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멀쩡한 부부를 골라서, 부인을 납치하고, 강제로 수술을 해서 아이를 빼앗아 가냔 말이다. 그리고 왜 몸조리도 못한 산모들에게 ‘아이를 되찾고 싶으면 우리말을 들어라!’라며, 배틀 로얄식의 결투를 시키냔 말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긴 하다. 가장 강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생존력이나 기타 여러 가지 면에서 우월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건 뭐, 히틀러가 주장했던 ‘아리아인 우월주의’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개똥만도 못한 이론이다. 그럼 부모가 천재면 자식도 천재인가? 반대로 생각해서 부모가 개자식이면, 자식도 개자식인가? 이건 개천에서 용난다는 일말의 희망마저 빼앗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만 보고 아이를 고른다니, 그러면 엄마가 천재인데 아빠가 살인마면 어떡할까?


  그런데 영화는 말미에 그 이론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헐, 이게 뭐람?

물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는 말과 사자는 고양이를 낳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알고 보니 위대한 호카게였다던가 사신 내지는 훌륭한 왕 또는  뛰어난 전사였기에, 처음엔 개차반에 능력도 없어보이던 아들이 성장하며 그 뒤를 따른다는 내용의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러면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은 대를 이어 비슷한 운명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핏줄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초반, 중반 그리고 후반까지 다 좋았는데 막판 반전에 확 열이 받는 영화였다.


  그런데 강제로 예정일도 안 되어 수술을 했는데, 영화에서처럼 막 뛰어다닐 수 있나? 올케들보니까 며칠은 꼼짝도 못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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