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부제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작가 - 용감한 자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난감했다. 우선 초고를 애인님에게 보내서 한 번 봐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올리면 블로그 관리자가 자기 호출할지도 몰라. 강퇴시킬 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이런 경우는 작년의 '복수의 탄생'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건 어쩌면 두 소설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의 탄생'은 그 때문에 고난의 길에 빠져든 주인공을 그리고 있어서 어느 정도 통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소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진짜 책을 읽다가 열 받아서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르겠다. 날도 더워죽겠는데, 책이 날 더 덥게 만든다.

 

  난 불륜이나 양다리가 싫다.

 

  그건 계약에 어긋나는 일이다.

 

  흠. 계약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이라든지 연애라는 것은, 그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은 서로 상대방에게 충실하겠다는 일종의 계약이 아닐까? 그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은 서로의 월급을 공유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상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접한다. 물론 이건 보통의 경우를 뜻한다.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 역시 그 때문에 서로 시간과 요일을 정해서 데이트를 하고 밤새 전화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다.

 

  이건 상대를 믿는다는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을 믿지 않는데 내 월급 통장을 맡길 리도 없고, 믿지 못할 사람의 아이를 낳아 기르지는 않을 것이다. 불성실한 상대와 굳이 주말마다 만나서 밥을 같이 먹고 극장엘 가는 건 시간 낭비이고 말이다.

 

  그런데 바람을 피거나 양다리를 걸친다? 그건 상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연은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 시작은 대학교수인 남편이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였다. 유명 의사와 섹스 파트너로 지내던 그녀는,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그 관계를 끝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이 20년 전에 썼던 소설이 다시 화두에 오르면서 만난, 남성 잡지의 편집장 수현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책의 제목인 '줄리아나 1997'은 그녀가 썼던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줄리아나 오자매'라 불리며 클럽 죽순이였던 대학 동기 다섯 명의 얘기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20년 후 40대가 된 그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책의 뒤표지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클럽 줄리아나를 주름잡던 이대 나온 다섯 언니들 20년 후엔 착실한 아내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후문이?' 착실하긴 개뿔이……. 주인공 지연은 연하 편집장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잘 나가는 정아는 동료 변호사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다. 세화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이 심하고, 은정은 40년 솔로 생활을 정리하고자 안달이 나있다. 그리고 진희는 너무도 뛰어난 외모 때문에 여러 남자들의 노리개로 살아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가 착실하다는 거지? 내가 아는 '착실'과 작가가 아는 '착실'의 개념이 다른 건가? 국립어학원에서 언제 뜻을 바꿨나?

 

  나중에 정아는 남편과 화해하고, 세화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남편을 휘어잡는데 성공했으며, 은정은 결혼에 골인하고, 진희는 첫사랑과 재회를 한다.

 

  하지만 주인공 지연은……이 망할 미친년은 남편과 이혼도 하지 않고 수현과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절대고 있다. 그러니까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돈을 놓치기 싫고, 수현과의 섹스나 그의 애교 같은 것을 잃기는 싫고. 두 권 내내, '유부녀인 자신과 유부남인 그와의 사랑이 과연 허용이 될까' 내지는 '이래도 될까'라고 고민을 하는데,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수현과의 사랑? 글쎄, 사랑이라기보다는 섹스 파트너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놀다가, 그와 만나서 섹스하고 시간 맞춰 집에 가서 아들과 남편 밥해주다가 시간이 남으면 그제야 '아, 수현아 난 널 사랑해. 놓치지 않을 거야. 그래도 될까?'라고 중얼거리면서 혼자 비련의 사랑에 빠진 불우한 여주인공 코스프레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시댁에게 더없이 잘하는 최고의 며느리이자 내조 잘하는 부인이라는 평을 들으면서, 속으로 그런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주는 그런 스릴이라든지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맛보는 게 좋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냥 남들을 속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자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우월감?

 

  작가가 이 불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편이 지연을 속이고 계속 제자와 만나고 왔다거나, 수현의 가정이 거의 붕괴상태였다는 등등의 설정을 주긴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차라리 잡다한 과거 얘기를 걷어내고, 친구들의 얘기를 조금 더 줄이면서 지연의 내적 갈등을 더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망할 미친년이라는 말은 안 들을 것 같다.

 

  지연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냐면,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남자를 찾고 남편이 마음잡았다고 따라서 정리하는, 그런 후진 여자가 되고 싶진 않다.'라고 말한 주제에, 남편이 불륜녀와 완전히 헤어진 것을 알자 이딴 생각을 한다. '나쁜 년. 내 남편을 힘들게 하다니. 내 남편을 울리다니.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왜 내 남편 버리고 결혼하냐고 깽판이라도 칠까?' 아니, 뭐 이런 자아분열적인 심리 상태가 있지?

 

  게다가 세화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같이 찾아가서 '이 나쁜 년'하면서 상대 바람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한다. 저기 주인공님아? 너님이 그 여자애 욕할 처지가 아닌데요? 아무리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생각이라는 걸 좀 생각해보시지요? 게다가 변호사인 정아씨? 너님은 불륜 중인 지연을 응원까지 하면서, 누구 욕을 하시나요? 아, 역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가보다.

 

  이야기가 너무 난잡하게 이리저리 얽혀서, 읽으면서 웃음만 나왔다. 은정의 결혼상대가 진희에게 한눈에 반해서 따라다니지 않나, 수현이 꿈에도 못 잊는 첫사랑이 알고 보니 진희! 설마 진희는 눈만 마주치면 사랑에 빠지는 마성의 여자인가! 이건 뭐 등장인물들끼리 돌아가며 사귀기는 드라마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설정을 늘어놓는 대신,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더 드러냈어야 했다. 그래야 주인공의 처지에 0.00001%라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화끈하게 불륜남녀의 섹스 장면이라도 잘 쓰던지! 그럼 '아아, 이 책은 좋은 야설이었습니다.'라고 광고라도 해주지! 여자들이 섹스 중에 내뱉는 말이라고는 '빨리 싸줘!'뿐이고, 묘사라고 해봤자 '그의 페XX가 꿈틀거렸다' 정도였다. 아아, 21세기에 쌍팔년도에서나 볼 수 있는 진부한 표현이라니……. 어떤 독자층을 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히 여성 독자를 노린 것 같은데, 여자들이 어떤 야설을 좋아하는지 작가는 모르는 걸까? 남자들이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둔다면, 여자는 행위가 일어나기 전과 후의 분위기에 뻑간다는 걸 몰랐을까? 왜 여자들이 전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자는 꺼려하고, 관계 후에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혼자 씻으러 가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의 섹스 장면보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네스퀵과 흰 우유의 19금 버전이 더 꼴렸다.

 

  불륜에 정당성을 주지도 못했고, 화끈한 언니들이라기엔 많이 모자라고, 이래저래 읽으면서 화가 나는 책이었다. 게다가 두 번이나 고쳐 써야 해서 더 짜증이 났다. 아우, 왜 별 0개를 못 주는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길 The Snowy Road (Hardcover, 한영합본) Modern Korean Short Stories 3
이청준 지음, 최재은 그림 / 한림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영제 - The Snowy Road

  작가 - 이청준

  그림 - 최재은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슬퍼 보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과 뭔가 할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꾹 다문 입 그리고 볕에 탄 주름진 얼굴. 분명히 손도 거칠거칠할 것이다. 그리고 눈이 하얗게 머리에 내려앉았지만, 모자나 귀마개 하나 쓰지 못했다. 분명히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닐 것이다. 왜 이 할머니는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날씨에, 어째서 이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야기는 한 남자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조카들만 남기고 죽은 형 때문에 학창 시절부터 집안을 떠맡아야했던 주인공. 그가 입버릇처럼 생각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와 자기 사이에는 빚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자기가 해야 하는 정도의 일만 어머니에게 하고, 그 이상은 해줄 마음이 없었다. 그에게 어머니나 형이 남긴 조카들, 형수는 그리 살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작은 아들에게 변변하게 해준 것이 없다는 미안함으로 가능하면 부탁 같은 걸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난생처음 부탁 비슷한 것을 말한다. 바로 집을 고쳤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 것이다. 당신님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지금 방한 칸밖에 없는 초가집은 그럴 수가 없으니, 증개축을 했으면 하는 소원을 조심스레 말한다.

 

  주인공은 그에 뿔이 나서 시골집에 온 지 하루 만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에 상심한 노모를 달랜 것은 주인공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모자 사이의 앙금을 해소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며느리와의 대화에서 노모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하나둘씩 내비치는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큰아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길에 나앉았지만 타향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주고 뜨끈한 방에서 하룻밤 재우고 싶었던, 도시로 돌아가는 어린 아들 밤길에 혼자 가면 위험할까 그 먼 눈길을 같이 왔다가 혼자 돌아가야 하는 먹먹함, 조금이나마 자식과 같이 있고 싶었던, 먼 곳에서나마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기원하는, 아들에게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으면 힘이 나겠지만 어린 자식에게 그런 짐을 지울 수 없기에 혼자 참아내야 했던, 자식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단호함과 그리움이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희생의 대명사로 대변되는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자식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안쓰러웠다. 아들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어머니가 자식 복은 없지만 며느리 복은 있는 것 같았다. 큰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일찍 죽었고, 작은 아들은 어머니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냉담하게 군다. 하지만 큰며느리는 시골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작은 며느리는 남편과 달리 사근사근하니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남편과 화해시키려고 한다. 아들보다 훨씬 나았다.

 

  모자가 화해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변화는 생길 것 같다. 주인공이 아주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보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제대로 보려고 했으면, 아마 조금은 서로에게 다가서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구성이 그런 감동 느끼는데 여러 번 방해했다. 이 책이 한국 단편을 영어로 번역해서 내놓은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편집이 좀 아쉬웠다. 한 쪽은 한글로, 다른 쪽은 영어로 구성해놓았는데, 두 언어의 문장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연달아 영어로 된 페이지가 나온다거나, 그림과 글 내용이 살짝 어긋나기도 했다. 그래서 감동이 반감된다거나 중간에 툭 끊어졌다. 차라리 앞은 한글, 뒤는 영어로 나누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살아있었고, 심경을 나타내는 배경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편집이……. 아쉽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작가 - 소재원

 

 

 

  처음엔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냥 가을이라 눈물을 자아내는 로맨스 영화가 하나 개봉하나보다 싶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면서, 넘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긴 한숨을 나오게 했다. 아이를 가진 가정이라면, 아니 아이가 없어도, 부모가 아니더라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그러다가 그 영화와 똑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몇 개 봐왔다. 그런 극들의 진행 방식은 대개 비슷했다. 피해자가 사건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한 다음, 부모가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길을 따르고 있었다. 부모의 복수 장면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보는 이들은 통쾌함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 그런 류의 작품일 것이라 추측하며 굳이 그 사건을 다루어야했을까 화도 났다. 만약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어린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쓸데없이 자세히 나오면, 그래서 아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 벌어진다면 장문의 반박문을 쓰겠다고 혼자 다짐도 해보았다.

 

  그런데 책은 그런 내 예상을 가볍게 뒤집어버렸다. 다른 작품들처럼 아이가 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았고, 부모가 복수극을 벌이지도 않았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었다.

 

  가족의 힘이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보여주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정이라는 존재가 최후의 보루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기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지윤의 부모가 자기 자신을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아무도 주위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고 느꼈을 때, 두 사람을 엮어준 것은 과거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사랑을 시작하고 연애를 하면서 같이 보았던 영화와 그 당시 나누었던 대화. 그 때를 기억하면서, 두 사람은 잃어버렸던 느낌과 감정 그리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갈 힘, 아이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는 힘, 주위 시선에 굴하지 않을 힘,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다양한지 예를 들어주고 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많은 입장이 있다. 책 속에서는 지윤의 상처를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보탬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녀를 무슨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이 배척하는 사람도 나왔다.

 

  지윤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도대체 지윤이 무슨 잘못을 했냐는 질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한 엄마의 대답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처음에는 진짜로 저런 말을 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생기면,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되니까 말이다. 당할만하니까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회니까, 남자가 욕정을 참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회니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그걸 제어하지 못한다는 건 자체 짐승 인증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런 발언을 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고 짐승이 되겠다는 건데, 그게 뭐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짐승 주제에.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언젠가 말한 것 같지만, 내 아이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나쁜 길로 들어간 게 아니라, 내 아이가 나쁜 친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한 것이다. 내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으면 남도 그렇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하나가 그런 걸 알려주지는 않는다.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커서도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자기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세상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소설은 지윤의 가족이 웃으면서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되면서 끝이 난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윤과 부모는 수없이 많이 울었고, 그 과정을 따라가는 나 역시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도 가슴은 먹먹하기만 했다. 지윤이는 부모의 사랑과 인내로 겨우 일어섰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 애와 달리 아직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된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 이나미

 

 

 

  제목이 참 특이하다. 가냘프고 고운 여자 손을 나타내는 섬섬옥수 纖纖玉手가 아니었다. 섬, 纖獄囚. 내 부족한 한자 실력으로 해석해보면, 섬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섬은 육지와 동떨어진, 바다로 둘러싸여 달리 갈 곳이 없는 땅이다. 그곳을 벗어나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배를 타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주 큰 섬이 아닌 이상, 사람들이 자주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갈등이 생긴다면, 참 곤란할 것이다. 영영 안 보고 살 수가 없는 곳이니 말이다. 또한 육지의 행정력이 즉각적으로 발휘되거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미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얼굴도 모르는 육지 행정부의 장이 아니라 바로 이웃에 사는 마을의 장이다.

 

 

  물론 덕분에 육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발이라는 이름의 파괴를 조금이나마 지연시킬 수는 있다. 그래서 섬 특유의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한다.

 

 

  그 때문에 섬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종착지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중간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주도와 가까운 섬이 배경이라,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일까 의아했지만, 읽다보니까 대충은 의미가 전달되긴 한다.

 

 

  변해가는 섬의 모습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동물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지만 인간은 유희를 위해서도 사냥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이기적이라는 뜻이리라. 아, 이기적이라는 말이 무조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신을 위하는 것은 좋은데, 불필요한 일까지 한다는 면에서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섬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과의 평화로운 삶도 중요하지만, 그들 나름 살아야했기에 경쟁하고 싸우게 된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예전의 생활 습관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변해야했을 것이다.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과학 기술의 특혜를 누리고 온갖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서, 그들에게는 예전 그대로 남아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들을 향한 우리의 이기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글을 읽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변해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현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섬이라는 작은 공간으로 축약된, 인간들의 치열하고 냉혹한 삶의 일면을 담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섬이라는 곳은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공간의 역할도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그들의 마음을 섬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누구와도 교류가 불가한, 외떨어지고 고립된 곳.

 

 

  그래서 더 처절하고 절박하고 상처가 많은 것이다. 섬으로 상처를 치유하러왔던 사람들은, 다시 육지로 돌아가 회복을 하려고 한다.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육지에서 상처를 받아 섬에서 새 출발을 하려던 사람들이, 그 섬에서 치명타를 입고 그 치유를 위해 육지로 돌아가다니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작가는 그래도 일말의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피해 섬에 왔던 자애가 다시 섬을 찾는다. 그런데 그녀가 갖고 있던 문제, 특히 남편과의 불화가 조금은 치유가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섬에서 안식을 취했던 것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새로운 내일을 약속하는 그녀의 다짐에서, 우리는 어쩌면 섬과 육지를 연결하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봐야하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뒤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우리, 정말 어쩌다 이리 됐을까?”라는 대사가 날카로운 창처럼 마음을 쿡하고 찔렀다. 정말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같이 살아가기보다는, 너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夜のピクニック, 2005년

   작가 - 온다 리쿠

 

 

  동생이 자기네 모니터가 고장 났다고 내 컴퓨터를 장악한 날, 할 일도 없으니 책을 읽자는 생각에 큰조카에게서 빌려온 책을 집어 들었다. 큰조카는 온다 리쿠의 열성팬이다. 내가 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 아이에게서였다. 조금 두꺼워서 한 번에 다 못 읽겠다고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쳤다. 그런데, 동생이 일을 다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구성을 짤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은근하면서 도발적인 전개를 만들 수 있을까. 드러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드러내기라니! 언젠가 지인께서 ‘바다별님은 글을 쓸 때 너무 성격이 급해.’라고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너무 조급해서 끝까지 숨겨야할 것을 너무 빨리 드러낸다는 말씀이셨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온다 리쿠의 글을 보면서 ‘아, 역시…….’하고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소년과 소녀의 비밀이 천천히, 그러면서 너무 느리지 않게 드러나는 전개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는 둘의 심리 변화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은근 슬쩍 툭 튀어나오는 숨겨진 사실의 나열도 마음에 들고. 그냥 주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드러나는 일들을 재배열하고 끼워 맞추기를 하면서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았다.

 

  주인공이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매년 재학생들이 마을을 걷는 행사가 있다. 쉬는 시간과 잠자는 몇 시간을 빼고는 계속 걷는 것이다. 반별로 줄을 맞춰 걷기도 하고 친구들과 짝을 이루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집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극도의 육체적 피로를 견디는 훈련을 한다.

 

  아이들을 극한으로 몰다니 어쩌면 아동 학대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포기하고 싶으면 중간에 빠져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뭔가 해냈다는 기쁨을 얻기 위해 끝까지 완주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못 볼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추억 만들기 행사도 되니까, 다들 좋아한다고 책에 나온다. 현실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생각들이 서로 교차되고 공감을 이루기도 하고, 질투, 연민, 동경, 유머 등등의 복잡한 사춘기 소년소녀의 마음이 드러난다. 물론 마지막은 화해와 이해로 종결. 감동도 있지만 그보다 ‘다행이다 참 잘 컸어, 얘들은 앞으로 잘 될 거야’라는 뿌듯함과 희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작가가 쓴 리세 시리즈와는 또 달랐다. 그 시리즈가 서늘하면서 축축하고 칼로 베는 분위기였다면, 이 책은 따뜻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손난로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훈훈하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막내 조카가 중학생이 되면 한 번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