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루시아 1권 루시아 1
하늘가리기 지음 / 조아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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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작가 - 하늘가리기

 

 

 


 

 

  웹소설 연재 사이트인 J 모 사이트는 예전부터 판타지가 강세인 곳이다. 무협은 M모 사이트, 판타지는 J 모 사이트. 이런 식으로 나뉘어져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판타지보다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가 그곳의 대세가 되었다. 이 작품 ‘루시아’도 J 모 사이트에서 연재가 되었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지금 확인을 해보려고 사이트에 접속해서 찾아보니, 현재 총 조회수가 천 만이 넘는다.

 

 

  사이트에 연재가 될 때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책으로 구입할까 했지만, 19금 장면이 다소 들어있었던 관계로 포기했었다. 조카들이 가끔 고모 방에 어떤 책이 재미있을까 넘겨볼 때가 있어서……. 이 소설, 19세 이상 이용가답게 두 주인공의 섹스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몇 번을 해도 지치지 않는 정력왕 남주인공과 마성의 육체를 가진 여주인공의 만남이다보니……. 그러다 이번에 이북으로 냉큼 질렀다. 아싸! 신난다! 아직 조카들은 고모의 컴퓨터까지는 건드리지 못한다.

 

 

  ‘루시아’는 열여섯 번째 공주이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이상한 꿈을 꾼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의 삶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은 꿈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지참금을 가장 많이 낸, 나이 많은 백작에게 팔려가듯이 결혼한다. 백작은 그녀를 무참히 괴롭히고 성적 학대를 일삼는다. 꿈에 깬 루시아는 절대로 그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열여덟이 된 그녀는 미래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마침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타란 공작 ‘휴고’와 거래를 하기로 한다.

 

 

  사랑을 믿지 않는 휴고 타란. 그에게 여자는 잠자리 상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는 여자 막지 않지만, 그들이 사랑을 고백하면 가차 없이 이별을 고하는 차가운 성격의 남자이다. 어차피 명목상으로 내세울 부인이라도 있어야 했기에,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루시아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절대로 그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루시아와 사랑을 믿지 않는 휴고.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루시아는 본인도 모르지만, 주인공 버프로 남자를 끌어들이는 마성의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1권에서는 등장인물 소개와 배경 설명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각자를 위한 계약으로 묶인 두 사람이 어떤 결혼 생활을 보낼 지 궁금하게 만든다. 게다가 어떻게 꿈에서 본 것이 그대로 일어나는지, 예지몽인지 아니면 회귀인지도 궁금하고. 연재본에서는 없던 외전이 이북에 실려 있다니, 빨리 8권까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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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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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제 - En Man Som Heter Ove, 2012

  작가 - 프레드릭 배크만

 

 

 

 

 

  30초마다 웃음이 터진다는 광고 문구에 끌렸었다. 그런데 음, 처음에는 웃음이 좀 나긴 했지만, 나중에는 웃을 수가 없었다. '오베'의 지나온 삶과 '소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알고 나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한 여인에게 평생 동안 마음을 바친 한 남자의 이야기에 웃는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어머, 어쩜…….'이라든지 '괜찮네.' 또는 '하아, 감동적이야.' 같은 감탄사만 나왔다.

 

  오베는 스웨덴의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며칠 전에 정년퇴직을 한 59살 먹은 남자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남의 일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비록 자동차에 관한 그의 독특한 사고관과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성격덕분에 오랜 시간 알아온 이웃사촌 루네와 말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절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러서지 않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오베.

 

  그런 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바로 이웃에 새로 이사 온 가족, 특히 그 집의 젊은 부인 파르바네가 옵저버처럼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그것도 꼭 그가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순간마다! 오베의 유일한 소원은 얼마 전에 병으로 죽은 부인 소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밧줄을 걸때도, 배기가스로 질식사를 하려고 자동차에 가스를 틀어도, 파르바네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어떤 핑계로라도 그를 밖으로 끌어내고, 온갖 마을의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한다. 적어도 오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책은 오베의 과거와 현재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오베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째서 그렇게 무뚝뚝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자랐는지, 소냐를 만나 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의 운명이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흑백이었던 그의 삶에 소냐라는 물감이 들어와 모든 것을 총천연색으로 바꾸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남자인 오베.

 

  그리고 소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금. 작가는 오베의 결심과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련의 사건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파르바네였다. 파르바네 때문인지 아니면 덕분인지, 오베의 자살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고 그의 삶에는 여러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끼어들어온다. 무뚝뚝하고 까칠하고 옹고집이지만, 오베는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그에게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한다. 마치 츤데레처럼, 오베는 툴툴거리면서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고나 그들이 주고받는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웃기보다는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고의 까칠남이라고 책 뒤표지에는 적혀있지만, 자기감정을 잘 표현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서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고집도 있고,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도 있다. 그래서 남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남들도 그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아니,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본다면, 가까워지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치 파르바네와 옆집 사는 지미 그리고 아드리안처럼 말이다.

 

  오베라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베나 파르바네, 지미 그리고 아드리안 심지어 고양이마저 각자의 영역이 있었다. 각자 삶의 범위를 그리는 커다란 원이 있다면, 그 원은 겹치기도 하고 아주 살짝만 닿아있기도 했다. 그들은 그 범위 안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애정과 존경, 그리고 배려를 통해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최고의 이웃이었고 이웃사촌이었고 가족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가끔 멋진 말을 내뱉는다. 특히 소냐의 아버지가 재혼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

 

  “난 여자가 있어. 지금 집에 없다뿐이지.”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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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장 재밌네요.
나는 궁하지않다고 말하던 어떤분 기억나요. 허세가 귀여운ㅎㅎ

바다별 2015-07-02 11:54   좋아요 0 | URL
이 책에는 저런 재밌는 대사가 많이 나와요 ^^
 
몽유록 - 꿈속 이야기로 되살아난 기억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정녀 지음, 이수진 그림 / 현암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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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꿈속 이야기로 되살아난 기억들

  저자 - 김정녀

  그림 - 이수진

 

 

 

 

 

  ‘몽유록’이라는 제목 때문에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九雲夢’같은 이야기를 상상했었다. 꿈과 환상이 가득한,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헐…….’하는 말만 맴돌았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인『대관재기몽 大觀齋記夢』은 조선 성종 때 ‘심의’가 썼다고 한다. 주인공이 꿈에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의 문인들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큰 벼슬을 한다는 내용이다. 나쁘게 말하면, 작가가 알고 있는 온갖 어휘와 사람 이름을 이용해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 같다. 내 어휘 부족함은 제쳐두고, 작가의 무분별한 단어 나열을 비판하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인『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은 ‘임제’가 썼다고 한다. 역시 꿈에서 주인공이 사육신과 단종을 만나 그들의 원통함을 듣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군주와 신하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조정의 권력자들이 그 내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꿈에서 봤다는 데 뭐 어쩌겠는가?

 

  세 번째 이야기『달천몽유록 達川夢遊錄』은 ‘윤계선’이라는 사람이 적었다고 한다. 역시 꿈에서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여러 장수들을 만나, 채 피지 못했던 그들의 꿈이라든지 전쟁 당시의 상황, 이후 현실에 대한 개탄 등을 듣고 기록해두었다.

 

  마지막 이야기인『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은 누가 작성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읽다보니, 저자가 본명을 밝히지 않을 만했다. 이건 뭐 대놓고 저격을 하고 있으니……. 주인공이 꿈에서 어딜 가다가 여러 여자들이 모여 슬퍼하고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그들은 병자호란 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었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전 고위관직에 있으면서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남편이나 아들, 또는 도망간 남편을 비난하고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고 있었다. 대놓고 누구 부인 누구라고 나오니, 저자가 몸을 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은 무척이나 환상적이고 색감이 좋았는데, 내용은 어쩐지 우중충하고 슬프기만 했다. 주인공이 꿈에서 만난 인물들이 다 그들이 있던 현실을 개탄하고, 아쉬워하는 내용이 주였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꿈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핑계로 그 당시 사회를 비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풍자라든지 희화화시키는 게 아니라, 다소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특이했다.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 무식하다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글에서 나오는 어휘들이 무슨 말인지, 옆에 설명이 달려있지 않았다면 하나도 몰랐을 것이다. 역사에 나오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예전에 사용하던 단어도 모르고. 그래서 처음에는 본문을 읽고 설명을 읽느라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번째 읽을 때쯤에서야 비로소 이런 내용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우리 고전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대가 흘러서 어휘가 바뀌었다고 해도, 이정도로 내가 몰랐나하는 한심함만 자꾸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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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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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殘り全部バケ-ション, 2012

  작가 - 이사카 고타로

 

 

 

 

  이름은 몇 번 본 작가이다. 영화 원작인 소설도 있었고, 호기심을 끄는 제목인 책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일본 작가는 그만’이라는 엉뚱한 생각 탓에 책을 들춰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인생에 일본 작가 한 명 더’라고 생각이 바뀔 거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총 다섯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각각 연결이 되어있으니까, 연작 소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부스지마’라는 암흑계의 거물 밑에서 일하는 ‘미조구치’와 ‘오카다’. 주로 남을 등쳐먹거나 협박해서 돈이나 다른 재산을 빼앗는 일을 한다. 그런 일에 염증을 느낀 오카다는 부스지마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랜덤으로 메일을 보내 친구하자는 말에 답이 오면 눈감아주겠다는 미조구치의 제안에 문자를 보낸 오카다. 뜻밖에도 부모의 이혼과 딸의 기숙사 생활로 해체하기 직전의 가족에게서 답이 온다. 오카다는 세 식구와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는데…….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은 미조구치와 오카다가 헤어지기 전의 일을 그리고 있다. 부스지마의 명으로 협박질을 하던 둘의 눈에 아버지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어린 소년이 들어온다. 오카다는 소년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곤도라는 사람을 끌어들여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친다.

 

 

  『불길한 횡재』는 오카다가 부스지마에 의해 제거된 이후, 미조구치와 새 파트너 오타가 맞닥뜨린 황당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의뢰를 받은 목표물인 여자를 납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의원 습격 사건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검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어럽쇼? 검문을 끝내고 현장을 벗어나 트렁크를 여니, 돈다발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언제 누가 왜 돈을 여기에 넣은 걸까? 납치된 인질까지 가세해 진상을 추리하는 세 사람. 뜻밖에도 사건은 의원 습격 사건과 불륜 치정 사건에까지 연결이 되는데…….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오카다가 흘리듯이 했던 말, ‘친구 아버지가 스파이였다.’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아버지를 스파이로 알았던, 오카다의 초등학교 친구였던 한 영화감독의 인터뷰 겸 회상이다. 여기서 오카다가 뜻밖에도 남을 잘 배려하지만 표현이 서툰 소년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은 교통사고 사기를 벌이다가 진짜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미조구치. 그런데 뜻밖에 그곳에 부스지마도 사고를 당해 입원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부스지마를 죽이려고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다. 새로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된 다카다는 부스지마의 심복으로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다. 다카다는 누가 왜 부스지마를 노리는지, 어떻게 그를 죽이려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마침내 범인을 알아낸 다카다. 하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등장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개성적이었다. 두목인 부스지마는 냉정하지만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고, 세 번째 이야기에서 납치당한 여자는 엉뚱하면서도 이성적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세 가족의 엄마는 속을 알 수 없지만 자상했고, 딸인 사키는 어리지만 영특하고 눈치가 빨랐다. 그런 개성들이 글에 생동감과 긴장감을 주고 동시에 집중하게 했다. 부스지마가 나오는 부분은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글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데, 으…….

 

  사람들을 협박하고 사기치고 온갖 나쁜 짓을 벌이지만, 결국 미조구치도 사람이었다. 정이 있고 다정다감하고 책임감도 있고. 처음에는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나중에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 시작은 오카다에 대한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조구치가 이 책의 주인공이지만, 숨겨진 주인공은 오카다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야기마다 그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마지막장까지 읽은 다음에야 제목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휴가처럼 유유자적하게 지내라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 하고 싶지만 못했던 일들을 휴가 때 하는 것처럼,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하라는 의미였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 없는 삶을 살 테니까 말이다.

 

  처음에 모든 이야기마다 다른 ‘나’라는 화자가 등장해서 누가 누군지 알아차리는데 조금 혼란스러웠다. 대개 이야기들은 주인공이 ‘나’라고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비해, 이 책은 각각의 이야기마다 화자가 달랐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는 사키와 오카다의 시점으로 왔다 갔다 해서, 누가 말하는 것인지 파악하느라 좀 힘들었다. 그래서 읽은 부분을 재차 넘겨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물론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방해받지 않고 진도가 술술 나갔다.

 

  책은 인물과 이야기만 톡톡 튀는 게 아니라, 대사마저 상큼하면서 취향저격이었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꽤 있었다.

 

  “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어요. 차만 해도, 계속 백미러만 보고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사고가 난다고요. 진행방향을 똑바로 보고 운전해야지. 지나온 길은 이따금 확인해보는 정도가 딱 좋아요.”-p.40

 

  “멋대로 좋아하는 녀석들은 반대로 멋대로 화내고 멋대로 미워하기 마련이니까.”-p.179

 

  “그보다는 걸어서 집까지 찾아온 남자가 ‘네가 좋아!’하고 직접 말하는 편이 감동적일 텐데.”

  “상대에 따라 달라요, 분명.”나는 대답한다. 요즘 시대에 남자가 느닷없이 집까지 찾아오는 것은 감동보다 공포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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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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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Effroyables Jardins, 2001

  작가 - 미셸 깽

 

 

 

 

  마지막 장면을 덮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가끔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처음 읽을 때는 펑펑 울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코끝이 찡해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년은 자신의 가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왜 걸핏하면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어린 그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창피한 존재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 소년은 삼촌에게서 2차 대전 때 일어났던 어떤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소년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 아버지가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지, 삼촌 부부가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괴로워하는지 알게 된다.

 

  2차 대전 당시, 소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레지스탕스였다.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치하의 비시 정부 아래에서 두 사람은 변압기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성공리에 폭파 임무를 완수한 두 사람은 다음 날, 독일군에게 체포당한다. 그 당시, 프랑스 비시 정부는 법률 하나를 통과시키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인질을 대신 처형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범인이 자수하지 않으면 대신 다른 사람들을 죽여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사건을 일으킨 진범을 인질로 잡아놓고 범인보고 자수하라고 하다니……. 무고한 다른 두 명의 인질과 같이 잡힌 두 사람은 고민한다. 자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두 사람마저 희생시키는가.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진범이 자수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을 한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삶이란 리셋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나중에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소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순수하게 나라를 구하고 침략자에게 저항하겠다는 생각으로 폭파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결과 무고한 다른 두 사람마저 인질이 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 두 사람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니콜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죽게 해야 하나, 아니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를 살려야 하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굳이 자기가 나서서 총대를 멜 필요가 있을까?

 

  두 사람을 인질로 밀고한 사람은,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팀을 위해 상대팀의 주력 선수였던 둘을 신고한다. 같은 프랑스 사람끼리! 단지 자기 팀을 이긴 상대팀 선수라는 이유로!

 

  여러 사람의 선택이 맞물려지면서 소년의 아버지가 왜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받아 성인이 된 소년이 광대 복장을 하고 남긴 편지를 읽을 때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누구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 빚을 갚으려고 평생을 바치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 모든 것을 외면하고 회피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걸까? 그리고 얼마나 불합리하면서 이성적인 걸까? 모순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은 또 얼마나 잔인하고 비극적인 걸까? 그러면서 곳곳에 처절할 정도로 아픈 희극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면서 서로에게 남은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그러기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건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다. 거짓을 제거하고 진실을 남기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상처는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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