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부제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작가 - 용감한 자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난감했다. 우선 초고를 애인님에게 보내서 한 번 봐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올리면 블로그 관리자가 자기 호출할지도 몰라. 강퇴시킬 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이런 경우는 작년의 '복수의 탄생'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건 어쩌면 두 소설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의 탄생'은 그 때문에 고난의 길에 빠져든 주인공을 그리고 있어서 어느 정도 통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소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진짜 책을 읽다가 열 받아서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르겠다. 날도 더워죽겠는데, 책이 날 더 덥게 만든다.

 

  난 불륜이나 양다리가 싫다.

 

  그건 계약에 어긋나는 일이다.

 

  흠. 계약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이라든지 연애라는 것은, 그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은 서로 상대방에게 충실하겠다는 일종의 계약이 아닐까? 그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은 서로의 월급을 공유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상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접한다. 물론 이건 보통의 경우를 뜻한다.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 역시 그 때문에 서로 시간과 요일을 정해서 데이트를 하고 밤새 전화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다.

 

  이건 상대를 믿는다는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을 믿지 않는데 내 월급 통장을 맡길 리도 없고, 믿지 못할 사람의 아이를 낳아 기르지는 않을 것이다. 불성실한 상대와 굳이 주말마다 만나서 밥을 같이 먹고 극장엘 가는 건 시간 낭비이고 말이다.

 

  그런데 바람을 피거나 양다리를 걸친다? 그건 상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연은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 시작은 대학교수인 남편이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였다. 유명 의사와 섹스 파트너로 지내던 그녀는,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그 관계를 끝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이 20년 전에 썼던 소설이 다시 화두에 오르면서 만난, 남성 잡지의 편집장 수현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책의 제목인 '줄리아나 1997'은 그녀가 썼던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줄리아나 오자매'라 불리며 클럽 죽순이였던 대학 동기 다섯 명의 얘기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20년 후 40대가 된 그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책의 뒤표지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클럽 줄리아나를 주름잡던 이대 나온 다섯 언니들 20년 후엔 착실한 아내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후문이?' 착실하긴 개뿔이……. 주인공 지연은 연하 편집장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잘 나가는 정아는 동료 변호사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다. 세화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이 심하고, 은정은 40년 솔로 생활을 정리하고자 안달이 나있다. 그리고 진희는 너무도 뛰어난 외모 때문에 여러 남자들의 노리개로 살아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가 착실하다는 거지? 내가 아는 '착실'과 작가가 아는 '착실'의 개념이 다른 건가? 국립어학원에서 언제 뜻을 바꿨나?

 

  나중에 정아는 남편과 화해하고, 세화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남편을 휘어잡는데 성공했으며, 은정은 결혼에 골인하고, 진희는 첫사랑과 재회를 한다.

 

  하지만 주인공 지연은……이 망할 미친년은 남편과 이혼도 하지 않고 수현과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절대고 있다. 그러니까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돈을 놓치기 싫고, 수현과의 섹스나 그의 애교 같은 것을 잃기는 싫고. 두 권 내내, '유부녀인 자신과 유부남인 그와의 사랑이 과연 허용이 될까' 내지는 '이래도 될까'라고 고민을 하는데,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수현과의 사랑? 글쎄, 사랑이라기보다는 섹스 파트너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놀다가, 그와 만나서 섹스하고 시간 맞춰 집에 가서 아들과 남편 밥해주다가 시간이 남으면 그제야 '아, 수현아 난 널 사랑해. 놓치지 않을 거야. 그래도 될까?'라고 중얼거리면서 혼자 비련의 사랑에 빠진 불우한 여주인공 코스프레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시댁에게 더없이 잘하는 최고의 며느리이자 내조 잘하는 부인이라는 평을 들으면서, 속으로 그런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주는 그런 스릴이라든지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맛보는 게 좋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냥 남들을 속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자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우월감?

 

  작가가 이 불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편이 지연을 속이고 계속 제자와 만나고 왔다거나, 수현의 가정이 거의 붕괴상태였다는 등등의 설정을 주긴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차라리 잡다한 과거 얘기를 걷어내고, 친구들의 얘기를 조금 더 줄이면서 지연의 내적 갈등을 더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망할 미친년이라는 말은 안 들을 것 같다.

 

  지연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냐면,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남자를 찾고 남편이 마음잡았다고 따라서 정리하는, 그런 후진 여자가 되고 싶진 않다.'라고 말한 주제에, 남편이 불륜녀와 완전히 헤어진 것을 알자 이딴 생각을 한다. '나쁜 년. 내 남편을 힘들게 하다니. 내 남편을 울리다니.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왜 내 남편 버리고 결혼하냐고 깽판이라도 칠까?' 아니, 뭐 이런 자아분열적인 심리 상태가 있지?

 

  게다가 세화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같이 찾아가서 '이 나쁜 년'하면서 상대 바람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한다. 저기 주인공님아? 너님이 그 여자애 욕할 처지가 아닌데요? 아무리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생각이라는 걸 좀 생각해보시지요? 게다가 변호사인 정아씨? 너님은 불륜 중인 지연을 응원까지 하면서, 누구 욕을 하시나요? 아, 역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가보다.

 

  이야기가 너무 난잡하게 이리저리 얽혀서, 읽으면서 웃음만 나왔다. 은정의 결혼상대가 진희에게 한눈에 반해서 따라다니지 않나, 수현이 꿈에도 못 잊는 첫사랑이 알고 보니 진희! 설마 진희는 눈만 마주치면 사랑에 빠지는 마성의 여자인가! 이건 뭐 등장인물들끼리 돌아가며 사귀기는 드라마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설정을 늘어놓는 대신,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더 드러냈어야 했다. 그래야 주인공의 처지에 0.00001%라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화끈하게 불륜남녀의 섹스 장면이라도 잘 쓰던지! 그럼 '아아, 이 책은 좋은 야설이었습니다.'라고 광고라도 해주지! 여자들이 섹스 중에 내뱉는 말이라고는 '빨리 싸줘!'뿐이고, 묘사라고 해봤자 '그의 페XX가 꿈틀거렸다' 정도였다. 아아, 21세기에 쌍팔년도에서나 볼 수 있는 진부한 표현이라니……. 어떤 독자층을 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히 여성 독자를 노린 것 같은데, 여자들이 어떤 야설을 좋아하는지 작가는 모르는 걸까? 남자들이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둔다면, 여자는 행위가 일어나기 전과 후의 분위기에 뻑간다는 걸 몰랐을까? 왜 여자들이 전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자는 꺼려하고, 관계 후에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혼자 씻으러 가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의 섹스 장면보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네스퀵과 흰 우유의 19금 버전이 더 꼴렸다.

 

  불륜에 정당성을 주지도 못했고, 화끈한 언니들이라기엔 많이 모자라고, 이래저래 읽으면서 화가 나는 책이었다. 게다가 두 번이나 고쳐 써야 해서 더 짜증이 났다. 아우, 왜 별 0개를 못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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