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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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작가 - 소재원

 

 

 

  처음엔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냥 가을이라 눈물을 자아내는 로맨스 영화가 하나 개봉하나보다 싶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면서, 넘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긴 한숨을 나오게 했다. 아이를 가진 가정이라면, 아니 아이가 없어도, 부모가 아니더라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그러다가 그 영화와 똑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몇 개 봐왔다. 그런 극들의 진행 방식은 대개 비슷했다. 피해자가 사건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한 다음, 부모가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길을 따르고 있었다. 부모의 복수 장면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보는 이들은 통쾌함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 그런 류의 작품일 것이라 추측하며 굳이 그 사건을 다루어야했을까 화도 났다. 만약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어린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쓸데없이 자세히 나오면, 그래서 아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 벌어진다면 장문의 반박문을 쓰겠다고 혼자 다짐도 해보았다.

 

  그런데 책은 그런 내 예상을 가볍게 뒤집어버렸다. 다른 작품들처럼 아이가 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았고, 부모가 복수극을 벌이지도 않았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었다.

 

  가족의 힘이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보여주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정이라는 존재가 최후의 보루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기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지윤의 부모가 자기 자신을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아무도 주위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고 느꼈을 때, 두 사람을 엮어준 것은 과거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사랑을 시작하고 연애를 하면서 같이 보았던 영화와 그 당시 나누었던 대화. 그 때를 기억하면서, 두 사람은 잃어버렸던 느낌과 감정 그리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갈 힘, 아이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는 힘, 주위 시선에 굴하지 않을 힘,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다양한지 예를 들어주고 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많은 입장이 있다. 책 속에서는 지윤의 상처를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보탬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녀를 무슨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이 배척하는 사람도 나왔다.

 

  지윤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도대체 지윤이 무슨 잘못을 했냐는 질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한 엄마의 대답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처음에는 진짜로 저런 말을 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생기면,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되니까 말이다. 당할만하니까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회니까, 남자가 욕정을 참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회니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그걸 제어하지 못한다는 건 자체 짐승 인증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런 발언을 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고 짐승이 되겠다는 건데, 그게 뭐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짐승 주제에.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언젠가 말한 것 같지만, 내 아이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나쁜 길로 들어간 게 아니라, 내 아이가 나쁜 친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한 것이다. 내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으면 남도 그렇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하나가 그런 걸 알려주지는 않는다.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커서도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자기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세상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소설은 지윤의 가족이 웃으면서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되면서 끝이 난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윤과 부모는 수없이 많이 울었고, 그 과정을 따라가는 나 역시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도 가슴은 먹먹하기만 했다. 지윤이는 부모의 사랑과 인내로 겨우 일어섰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 애와 달리 아직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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