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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아래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夜空の下で, 2012
작가 - 마스다 미리
24편의 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마스다 미리’의 우주 이야기다. 그러면 우주의 기원이라든지 각 행성에 관해 작가 특유의 그림체로 풀어내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다. 이건 학습 만화가 아니다. 작가 특유의 그림체와 느긋하면서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단지 그 둘이 주로 이야기하는 소재가 우주에 관한 것일 뿐이다.
작가의 그림체가 단순한데, 그건 인물의 특징이 머리 모양이라든지 옷차림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처음 이야기를 읽을 때, 등장하는 사람들이 다 다른 인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뭔가 연결 고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건 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학창 시절에 만나 연애를 하고, 대학 진학으로 멀어졌다가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이후 그들의 자녀로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다만 시간대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나이가 들면서 머리 모양이 바뀌는 바람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책을 다 읽고 문득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 시에서 이름도 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내가 인식하면서 의미 있는 대상이 된다. 이 책에서의 하늘과 별도 그러했다. 그냥 하늘에 떠 있을 뿐이었던 무생물이 등장인물이 그것을 인식하고 생각함으로, 나중에 추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 그래서 윤동주는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을 담아냈나 보다.
이야기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잔잔하면서 한 번에 훅 들어오는 그런 뭉클한 문장으로 가득했다.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중년의 부부 그리고 부모를 떠나보낸 뒤로 이어지면서 각 시간대에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특히 ‘내 인생의 심보다는 당신 인생의 심이 더 많이 남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나중에 상대방이 최후의 인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니 그때만큼은 자신이 더 오래 살아주겠다는 생각을 할 때는, 뭔가 손발이 오글거리면서도 나중에 써먹어 봐야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이게 사랑이구나’라는 감탄마저 들었다. 그리고 ‘달아날 때는 뒤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쿵’하고 다가왔다. 살아있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뒤이어 나오는데, 그 두 문장이 이어지면서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 내가 사는 게 먼저지. 내가 죽으면 그 어떤 의미도 없는 거잖아. 또한, ‘계속 빛을 내면 에너지가 떨어지니까 가끔은 빛을 끄기도 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매번 100% 집중하고 가진 열정을 다 쏟아부을 수 있겠어? 중간에 쉬기도 하고 재충전도 하고 그래야지. 그걸 못하니 ‘번아웃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많은 거잖아.
이번에도 버릴 페이지가 거의 없는 마스다 미리의 책이었다.
아, 각 에피소드 다음에는‘안도 카즈마’의 ‘알기 쉬운 우주 이야기’가 두 페이지에 걸쳐 곁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