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Alien: Covenant, 2017

  감독 - 리들리 스콧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 누미 라파스, 캐서린 워터스톤, 카르멘 에조고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앞선 이야기들을 복습하고 봐야하는 영화들이 있다. 예를 들면 ‘쏘우 Saw, 2004’라든지 ‘인시디어스 Insidious, 2010’,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2002’ 그리고 이번에 얘기할 ‘에이리언 Alien, 1979’ 시리즈가 그렇다. 왜냐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만 똑같고 사건별로 나뉘는 영화라면 별로 상관이 없는데, 위에 적은 시리즈들은 사건의 큰 줄기가 이어지고, 앞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뒤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수가 너무 많은 영화는 보기가 망설여지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지금 얘기할 에이리언 시리즈가 그런 류의 영화이다.



  이 작품은 ‘에이리언 Alien, 1979’ 시리즈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개봉했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2012’보다는 10년 후가 배경이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싣고 우주를 항해하던 커버넌트 호. 뜻하지 않은 사고로 승무원들만 깨어나게 된다. 그런데 미지의 행성에서 지구인이 보낸 게 분명한 신호를 받는데, 그 행성은 지구와 너무도 흡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숲이 우거졌으며, 심지어 누군가 심은 밀까지 자라고 있는 사실에 승무원들은 흥분한다. 하지만 우연히 밟은 씨앗에서 나온 검은 포자가 한 승무원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긴다. 그 포자가 몸속에서 변이를 일으키면서 번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을 뚫고 괴생명체가 튀어나와 남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우왕좌왕하던 승무원들 앞에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나타나 도움을 주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호에서 ‘쇼’ 박사와 살아남은 안드로이드 ‘데이빗’이었다. 10년 동안 그는 혼자서 그 행성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프로이트의 영향 때문인지, 아들과 아버지의 반목 그리고 딸과 어머니의 대립이 아주 자연스러운 심리 상태처럼 인식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와 맞서 싸우는 아들이 등장하는 작품이 꽤 많은 편이다. ‘스타워즈 Star Wars : Episode IV - A New Hope, 1977’도 그렇고 얼마 전에 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Guardians of the Galaxy Vol. 2, 2017’도 그런 설정이 들어있다.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냐면, 이 영화도 비슷한 설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안드로이드 ‘데이빗’과 그의 제작자이자 프로메테우스 호의 출항에 자본을 댄 기업가 ‘피터 웨이랜드’의 관계가 그러하다. 이번 이야기의 초반에 보여준 둘의 대화 장면에서, 자신을 만든 인간에 대해 실망하는 데이빗이 등장한다. 사실 전편인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인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실망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이번 편에 새로 등장한 ‘월터’를 보는 데이빗의 시선은 마치 ‘인간들이란…….’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월터는 데이빗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낀 제작사에서 기능면에서는 업그레이드시켰지만 지적인 능력은 떨어뜨린 버전이다. 아, 영화에서 두 안드로이드는 한 배우가 연기했다. 처음에는 구별하기 어려워서 손 없는 애와 옷이 다른 애로 인식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의 외모를 가졌으며, 인간보다 뛰어난 창작 능력과 학습 능력 그리고 무한한 생명을 가진 데이빗이 자신보다 떨어지는 창조주 인간을 멸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인터넷에 보면, 자기 부모를 부끄러워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올라오곤 한다. 개천에서 나온 용인데 그 개천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유형이다. 데이빗을 그런 종류의 인간으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그는 부끄러워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개천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자기가 새로운 개천을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말이다. 인간은 심심하면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 원시인들도 동굴 속에서 뭔가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랬잖은가? 데이빗도 그렇다.10년 동안 혼자 지내면서, 그냥 무료하게 있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그게 모든 비극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 여전사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다니엘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녀 외에 다른 인물들은 상당히 감정적이고 상황 판단이 늦은 편이었다. 뻔히 보이는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아 넘어간다. 그나마 다니엘스가 눈치 빠르게 함정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솔직히 다니엘스는 리플리만큼의 충격을 주지도 못했고, 영화 전반을 장악하는 힘도 보이지 못했다. 그 부분이 좀 많이 아쉬웠다. 사실 그 부분은 데이빗이 그녀를 능가했다. 그래서 1편부터 4편까지를 ‘리플리의 에이리언 시리즈’라고 한다면, 프로메테우스와 이번 이야기는 ‘데이빗의 에이리언 시리즈’라고 하고 싶다.



  전에 프로메테우스를 보고는 실망했는데, 이번 커버넌트를 보면서 그 작품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다면 다음 편이 나와야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영화의 CG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엔딩크레딧 화면 가득 빽빽하게 적혀 올라가는 CG 담당 스태프들의 명단을 보면서, 그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아주 잠깐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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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 2017-05-2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속작은 배경이 어찌 될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리들리 스콧 본인은 자신이 감독했던 1편을 제외한 다른 시리즈를 부정하는 뉘앙스를 보였으니.. 1편 이후의 이야기일지 아니면 1편 바로 전의 이야기일지..

바다별 2017-05-22 11:17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는 3부작으로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저 행성 개척단 사람들의 다음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제 - Guardians of the Galaxy Vol. 2, 2017

  감독 - 제임스 건

  출연 -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데이브 바티스타, 빈 디젤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대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 생각해서 선택하세요. >>




  영화를 본 지 며칠 되었지만, 리뷰를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좋게 보면 한없이 좋은 평을 쓸 수 있고, 나쁘게 쓰면 역시 나쁜 평만 줄줄 쓸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좋은 내용만 쓰자니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이 걸렸고, 그렇다고 나쁜 점만 짚자니 괜찮았던 내용이 아쉬웠다. 이렇게 장점과 단점이 반반으로 갈린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애인님에게 이 얘길 하니, 두 버전 다 써보라는 말을 들었다. ‘오옷, 재미있겠는데!’라며 솔깃했지만 막상 그렇게 쓰려니 귀찮아서 패스!



  ‘소버린’ 행성의 의뢰를 받아 무사히 해결한 ‘스타로드’와 멤버들. 하지만 ‘로켓’이 막판에 엉뚱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소버린 여사제의 분노를 사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런 그들을 구해주는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는데, 알고 보니 스타로드의 친부인 ‘에고’였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렸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아버지를 거부했던 스타로드였지만, ‘가모라’의 조언에 따라 그의 별인 ‘에고’ 행성을 방문해보기로 한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정에 스타로드는 점차 마음을 열지만, 가모라는 ‘맨티스’의 이상한 행동에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한편 우주선을 고치던 ‘로켓’과 ‘아기 그루트’는 여사제의 의뢰를 받은 ‘욘두’ 일당에게 잡힌다. 하지만 쿠데타가 발생해 욘두와 로켓은 포로 신세가 되고, ‘네뷸라’는 복수를 위해 가모라를 찾아 나선다.



  상영시간이 거의 두 시간 이십분에 해당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조금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부분이 당연히 있었지만, 그래도 멋진 장면들이 많아서 흥미 있게 보았다. 시작하자마자 의뢰받은 일을 해결하는 멤버들을 배경으로 혼자 흥에 겨워 춤추는 아기 그루트가 시선을 끌어당기더니, 로켓이 욘두 일당을 함정으로 반격하는 장면 그리고 욘두가 휘파람을 불어 그의 무기인 화살로 적을 몰살시키는 부분은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기 그루트와 욘두는 그야말로 이번 편을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귀엽고 멋졌다. 오죽하면 집에서 혼자 휘파람 부는 연습을 해봤을까. 아쉽게도 난 휘파람을 못 불기에,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덕분에 요즘 영화는 볼거리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기 그루트의 귀여운 표정과 몸짓이나 욘두의 화살 공격 장면 같은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영화는 또한 교훈적인 면도 동시에 갖고 있었는데,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1편에서는 친구 내지는 동지라는 개념이었는데, 이제 멤버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말하고 있었다. 씨를 뿌렸다고 다 아버지는 아니라는 대사에서, 아기 그루트를 보호하고 귀여워하는 모습에서, 후반부에 보여주는 욘두와 스타로드의 대화에서, 피를 나누지 않은 관계에서도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핵가족을 넘어서 솔로 라이프라든지 비혼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굳이 결혼이라든지 핏줄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제작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바로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하는 자식을 내세웠다. 네뷸라와 가모라 같은 경우에는 양아버지인 ‘타노스’를 증오한다. 특히 네뷸라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신체를 기계로 바꾸고 학대한 그를 찢어죽이겠다고 다짐한 상태이다. 그리고 스타로드 역시 처음에는 아버지를 만나 좋아하지만, 그가 어머니를 죽게 하고 자신을 이용하려고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죽기 살기로 덤빈다. 사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멤버들을 비롯해서 여러 행성들이 위험한 상태이긴 했다. 하여간 영화에서는 이런 인물들의 배경을 통해, 굳이 핏줄이라든지 오랜 기간 같이 지낸 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고 피로 이어져있다지만, 그 관계가 나에게 옳지 못한 것을 강요할 때는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가끔 가족 때문에 더 상처받고, 피해를 입으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래도 가족이니 참으라고 하는데, 이 영화는 벗어나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모 스님이 어떤 사람에게 했다는, 자신을 강간한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보라는 충고보다는 훨씬 마음에 드는 말이긴 하다.



  음, 한국의 유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면, “이런 패륜적인 내용이!”이라고 화를 낼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예전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있던, 어쩌며 인간의 뿌리 깊은 습성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오이디푸스는 그 대가로 가족과 지위와 명예와 눈을 잃었고, 루크 스카이워커는 손을 잃어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타로드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도리어 새로운 가족을 얻었으니 이득인 건가? 음, 거의 아버지와 비슷한 존재였던 욘두를 잃었으니 이득은 아닌가?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 급 캐릭터들이 공명정대하고 타에 모범이 되는 윤리사상을 갖고 바른 길로만 걷는 인물로만 이루어져있다면, 무척이나 재미없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악동 이미지도 있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사람도 있으며, 하다못해 츤데레나 왕재수 캐릭터까지 있어야 분위기도 살고 웃음 포인트가 생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게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하는 느낌을 줬다. ‘드랙스’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가 맨티스에게 하는 말은 진짜 단어 하나하나가 혐오스럽고 차별적이며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바깥세상을 몰라 그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맨티스와 이에 당황해하는 드랙스의 대조가 웃음 포인트인 것 같은데, 굳이 그런 혐오발언으로 뒤덮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드랙스는 얼핏 보면 문신을 잔뜩 한 스킨헤드 족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맨티스는 동양인의 외모로 그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이건 마치 백인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동양인에게 이상한 말을 던지면서 낄낄대는 상황 같았다. 또는 못된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소 이해력이 떨어지는 학우를 놀려먹는 장면을 희화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제작진은 두 캐릭터를 나란히 놓음으로, 인종차별에 성차별 그리고 장애인차별을 한꺼번에 드러낸 것이다. 둘의 대화는 전혀 웃기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했다. 설마 순수 그 자체인 맨티스의 하얀 마음에 정화되는 드랙스를 보여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인 것은 아니겠지? 아니, 그 전에 맨티스가 순수한지조차 잘 모르겠던데?



  거기에 로켓이 소버린에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왜 뜬금없이 욘두의 로켓 심리 상담소가 문을 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뭔가 많이 편집이 되어버린 것 같다. 스타로드가 하도 징징대니까, 그 때문에 로켓의 징징 부분을 빼버린 걸까? 아, 스타로드의 징징거림은 진짜 짜증이 났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슬픔은 알겠는데, 영화 내내 그 분위기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느낌이었다. 난 엄마가 없어, 흑흑. 아니, 아빠가 있었어? 그런데 우리 아빠가 신급 외계인이래! 오옷 그럼 나도 반인반신? 그런데 아빠가 엄마를 죽였대. 씨발, 아빠를 죽여 버리겠어! 죽어라! 흑흑, 난 이제 엄마도 아빠도 없어. 이런 분위기?



  영상적인 면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멋졌는데, 캐릭터 부분에서는 별로인 영화였다. 진짜 아기 그루트와 욘두가 아니었으면, 욕만 잔뜩 남았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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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Kvinden i buret, The Keeper of Lost Causes, 2013

  감독 - 미켈 노르가드

  출연 - 니콜라이 리 카스, 파레스 파레스, 쇠렌 필마르크, 미켈 폴스라르







  지원을 기다리자는 동료의 제안도 거절하고 무모하게 범죄 현장 진압하던 ‘칼’. 그는 손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지만, 동료는 반신불수가 되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만다. 덕분에 다른 경찰들 사이에서 은근히 외면을 당하고, 상부에서는 강력계대신 새롭게 신설된 미결수사반으로 그를 배치한다. 그리고 그냥 서류 작업이나 하라는 의미로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우편물 담당이었던 ‘아사드’를 파트너로 붙여준다. 그런 칼의 눈에 5년 전에 일어났던 정치인 ‘메레트 린가드’의 자살 사건이 들어온다. 탁월한 미모와 재능을 가진, 한창 떠오르는 신예 정치인이었던 린가드. 장애를 가진 동생과 페리호를 타고 가다 실종되었고, 경찰은 투신자살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데다가, 초기 수사에 허점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칼은 직접 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예전 수사팀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찾아내는데…….



  이야기는 칼과 아사드가 수사하는 현재, 5년 전 린가드가 사라지기 며칠 전부터의 일상 그리고 그녀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교차로 보여준다. 그렇다. 린가드는 5년 전 납치되어 감금상태였다. 두 경찰은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누가 왜 그녀를 납치했는지 밝히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미 결론난 일을 왜 끄집어내냐는 상부의 질타와 자신이 마무리한 사건을 왜 다시 들추냐는 동료경찰의 반발은 빠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린가드가 감금되어있는 상황을 보았기에 둘을 징계하겠다는 상관의 말에 화도 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독단으로 행동해 동료를 불구로 만들고 좌천당해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있어야 할 사람이 설치고 다니면 화가 날 것 같다.



  초반에는 인물 소개로 진행이 그다지 빠르지 않다. 다소 느슨한 느낌?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고, 살아있는 메레트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미치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무척이나 감명 받았다. 강인한 사람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갇힌 공간에 불이 들어와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1년에 단 한 번, 매일 대소변을 받을 수 있는 통과 음식물이 담긴 통만이 쪽문을 통해 교체되고, 공기 압력을 평상시보다 높이 설치한 곳에서 5년을 버티다니……. 제일 압권이었던 부분은 이가 아프다는 그녀의 말에 범인이 뺀치를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고 말할 때였다. 고민하던 그녀는 그걸 들고……. 그 장면이 너무 끔찍해서 보다가 멈췄었다. 차라리 살인마가 칼이나 톱을 들고 설치는 장면이 더 나았다. 그건 과장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보겠는데, 이건 담담하니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거기다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마취가 덜 된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녀의 아픔이 더욱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좀 멍해졌다. 아,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결국 남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그런 게 좀 마음이 아팠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는데, 그 책 표지에 적힌 말이 바로 사건의 동기였다. ‘내가 고통받은 시간만큼 너도 고통 받아야 해!’ 음, 시간이 되면 책도 읽어봐야겠다.



  첫 이야기라서 그럴까?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진행 때문에 초반에 좀 헷갈리고, 인물 소개 때문에 흐름이 느슨했던 것 빼고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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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annys dommedag, Danny's Doomsday, 2014

  감독 - 마르틴 바른비츠

  출연 - 윌리암 요크 닐센, 토마스 가비, 피터 간츨러, 에밀리 베르너 셈멜로스






  ‘대니’는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해주거나 보여주고, 그들에게 친동생이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런 대응을 못하는 무기력한 소년이다. 짝사랑하는 소녀의 초상화를 몰래 그리지만, 그녀에게서 호의적인 시선을 받지 못한다. 대니의 동생인 ‘윌리엄’은 그런 형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연일 36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개들이 일제히 짖다가 멈춘다. 그리고 뒤이어 집밖에 뭔가 거대한 것이 나타나는데…….



  미리 말하지만, 이 작품은 청소년용 SF 영화다. 잔인한 장면도 없고, 선정적이지도 않다. 십대인 두 형제를 통해 갑작스런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별로 친하지 않았던 가족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닥친 시련은, 놀랍게도 괴생명체의 습격이었다.



  무능력한 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동생은 처음에는 형은 의지할만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 형이 말하는 것을 듣기보다는, 자기주장을 먼저 내세운다. 눈앞에서 아빠를 잃은 윌리엄은 마트에 간 엄마를 찾으러 가야한다고 얘기한다. 반면에 대니는 지하창고에 숨어 있다가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자고 대답한다. 원칙적으로는 그의 의견이 제일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미 형을 신뢰하지 않는 윌리엄에게 먹힐 리가 없다.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동생이 괴롭힘 당할 때 외면하던 대니는 혼자 가버린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난다. 동생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윌리엄 역시 처음에는 제멋대로 행동했지만, 형의 진심을 알고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성장 영화의 뻔한 공식이지만, 평소에 학교에서 으스대며 잘난 척하던 애들은 막상 일이 닥치면 회피하거나 자기보다 약자라 생각되는 다른 아이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반대로 그들에게 구박 당하던 주인공은 그런 상황에서 용기 있고 슬기롭게 대처해서 위기를 벗어난다. 이 작품도 그런 단계를 밟아가면서, 대니와 윌리엄의 화해와 용기를 보여줬다. 형제는 함께였기에 용감했고, 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괴생명체는 물고기의 외모를 하고 육지를 마구 걸어 다닌다. 어류가 진화를 해서 폐호흡을 하고 다리가 생긴 걸까? 비린내가 엄청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일이 잘 마무리된다면, 과연 대니와 윌리엄은 남은 생애 동안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해졌다.



  막내 조카가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내 기준에는 별로였던 영화였다. 너무 건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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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ife, 2017

  감독 - 대니얼 에스피노사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레베카 퍼거슨, 라이언 레이놀즈, 사나다 히로유키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은 여섯 명의 우주인들! 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고, 화성에서 찾은 단세포 생명체에게 ‘캘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사까지 벌인다. 여섯 명의 우주인들은 우주 정거장에서 캘빈을 상대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인류 최초로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에 대해 파헤칠 수 있다는 기대로 잔뜩 들떠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진화하던 캘빈이 급기야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처음 캘빈이 발견되었을 때는 작은 유글레나 내지는 플라나리아 같았는데, 생명체를 흡수하고 커지면서는 문어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심해에서 볼 수 있는 투명한 물고기 같기도 하고, 레이스처럼 나풀거리는 것이 무척 신비로웠다. 그런 공격성만 아니었다면, 관상용으로 길러도 예쁠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캘빈에 대한 자세한 설정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탄소계 생명체로 산소와 물, 그리고 양분이 필요하다고만 나온다. 그래서 그것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우주 정거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단순한 생존에의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흡수한 생명체의 지식을 얻어서 움직이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야 후반부의 상황이 설명될 것 같다.



  영화는 그야말로 누가 누가 더 삶에 대한 집착과 의지가 더 강한지 대결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외계 생명체와 80억의 생명을 지켜야하는 인간 여섯의 싸움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진짜라면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제발제발을 외치며 봤겠지만, 영화니까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보았다.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캘빈의 몸부림도 안타까웠고, 놈을 절대로 지구로 보낼 수 없는 인간의 고군분투하 역시 안타깝고 화나고 그랬다. ‘캘빈, 이정도하면 좀 죽어주지 않으련?’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생존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한 편이 이기는 설정이었으니,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죽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애인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장면들이 더러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했는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가 과연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인지, 왜 갑자기 우주 정거장이 그렇게 되었는지 등등. 너무 많이 생략된 게 아니라, 몇몇 장면에서만 설명이 필요해서 의외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부분은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에 중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강약중간약으로 조였다가 풀었다가 살짝 긴장하게 했다가 아닌 척하는 리듬감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작품은 강과 약만 있었다. 몰아칠 때는 그냥 인정사정없이 우다다 밀려오다가, 갑자기 모든 줄을 놓아버린 듯이 축 늘어진다. 그 때문에 의외로 긴장하지 않는 역효과가 났다. 너무 후다닥 지나가는 그런 느낌? 그래서 ‘방금 뭐였지?’하는 그런 느낌? 그런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아, 그러고 보니 캘빈이 무성생식을 하는지 유성생식을 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거였는데……. 그랬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나저나 엔딩 크레딧에서 흐르는 노래가 ‘spirit in the sky’다. 그러니까 이승에서는 이미 글렀으니 빨리 교회 나가서 구원받아 내세를 기약하자는 의미일까? 아니면 외계 생명체 역시 그 분이 만드신 것이니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걸까?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자면, ‘비글호의 모험 The Voyage of Space Beagle, 1950’을 다시 출판하면 좋겠다. 이 작품을 처음 보면 떠오르는 건 영화 ‘에이리언 Alien, 1979’이지만, 중반과 후반에서는 ‘비글호의 모험’이 자꾸만 생각난다. 아, 다시 읽고 싶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이 버전이 아니라 완역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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