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Vampire Sisters, 2012

  감독 - 볼프강 그루스

  출연 - 마르타 마르틴, 라우라 안토니아 로제, 스티페 에르체그, 크리스티아네 파울





  인간인 엄마와 뱀파이어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뱀파이어 쌍둥이 ‘니아’와 ‘다카.’ 트란실바니아에서 살다가 독일로 이사 오는데, 처음으로 인간 사회에서 살려니 하면 안 되는 것투성이다. 비행금지, 초능력 사용 금지, 살아있는 건 먹기 않기, 그리고 십자가와 마늘 금지 등등. 엄마를 닮아 인간이 되고 싶은 니아는 학교에서 적응도 잘하고 호감이 가는 남자아이까지 생긴다. 하지만 아빠를 닮아 뱀파이어로 사는 게 더 좋은 다카는 인간 생활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연히 길에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법사 가게를 발견한 둘은 한 명은 완전한 인간으로, 또 다른 한 명은 100% 뱀파이어로 변하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둘의 소원이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한편 옆집에 사는 ‘더크’가 자매의 가족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제목만 보고 호러 영화라고 생각했는지, 애인님이 한참 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뭐예요, 이 간지러운 작품은!”



  그렇다. 이 영화는 호러라기보다는, 어린 자매의 성장 영화였다. 비록 그들이 뱀파이어의 혈통이라 온갖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죽이려는 자와 추격전 및 몸싸움을 벌이긴 하지만, 기본은 가족 간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었다. 비록 외모와 취향 그리고 성격은 다르지만, 자신과 똑같은 체질에 비밀을 간직하고 평생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가야할 자매간의 다툼과 화해,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또한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따 주도자들과의 충돌과 소심하지만 속 깊은 아이들과의 만남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친구가 되는 과정 중에 꼭 생기는 일인 오해와 갈등의 심화 그리고 화해는 꼭 빠지지 않는다. 그걸 기회로 아이들의 우정은 더 깊어지고,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는 사이가 된다.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아이들이 순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옆집 사는 더크의 사연도 처음엔 좀 안쓰럽긴 했다. 그의 어머니가 어느 날 뱀파이어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매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밝혀서 어머니의 누명을 밝히고 싶었다. 처음에는 진실을 알리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나중에는 자매와 친구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 총을 들고 설친다. 흐음, 왜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목표로 삼는지 모르겠다. 아빠나 엄마에게는 덤빌 용기가 없었나보지? 그래서 그가 허탕을 치거나 실수하는 부분에서는 고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일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공격 대상을 잘못 정하는 바람에 나쁜 역이 되었다.



  그나저나 독일은 성수라든지 성수 물총, 나무 말뚝 같은 뱀파이어 사냥 도구를 인터넷에서 그냥 살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긴 영화 시작 부분에 엄마가 독일엔 아직 뱀파이어 사냥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그래서 다 파는 모양이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으로 뱀파이어가 개최하는 대회 사이트가 나오다니, 뭐라고 해야 할까? 시대를 잘 따라간다고 할 지, 보안이 부실하다고 해야 할 지……. 아, 자매의 친구인 ‘헬레나’로 나오는 아역배우가 참 인상적이었다. 외모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분위기가 있어서,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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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battoir, 2016

  감독 - 대런 린 보우즈만

  출연 -제시카 론디스, 조 앤더슨, 데이턴 칼리, 린 샤예







  통신사에서 매월 두 편의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혜택을 주기에, 애인님과 같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쉽게도 지난 6월에는 호러스릴러SF에 마음이 가는 별다른 영화가 없었기에, ‘원더 우먼 Wonder Woman, 2017’ 하나로 끝나나 싶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귀에 익은 감독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오오!’했지만, 이제는 ‘또 나와?’라며 인상을 쓰게 되는, 하지만 정으로 볼 것 같은 ‘쏘우 시리즈’ 중 2,3,4편의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중에 그렇게 재미있는 걸 본 기억이 없어서, 잠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예고편과 설정이 마음에 들어서 보기로 했다.



  6월말에 본 영화인데 그동안 리뷰를 썼는지 안 썼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 같은 쏘우 시리즈 감독인데 ‘제임스 완’과 어쩌면 이렇게 다른지……. 아, 쏘우는 3편부터 망이었지 참.



  어느 날 ‘줄리아’의 언니 가족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신문기자인 그녀는 범인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그는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을 뿐이다. 언니네 집을 정리하려고 들른 줄리아는, 이미 집이 팔렸고 살해 현장이었던 조카의 방만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된다. 의문을 품은 그녀는 부동산 중개인을 찾아가고, 그에게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만 갖고 가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듣는다. 줄리아는 그 인물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어느 외딴 마을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몇 십년동안 숨겨져 있던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살해 현장만 모으는 사람이라니!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거실에서 살인이 일어났으면, 거실의 모든 것 벽지와 장식품까지 고스란히 다 가져간다는 의미다. 그래서 현장을 거의 100% 복원시켜 정리해놓는다는 얘긴데, 이건 그냥 취미를 벗어난 집착과 기괴함이 느껴지는 행위다. 이 기본 설정 하나만으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살인 박물관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왜 그러는 걸까? 그러다가 그 인물이 이단적인 종교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영화를 보았다. 이거 혹시 ‘존 카펜터’의 ‘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 1995’같은 류의 영화일까? 그 작품 정도만 되어도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렇다. 하려고 했다.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지루한 게 아니라, 아주 많이 지루했다.



  공포 영화를 보면, 초반은 배경 설명에 집중하면서 드문드문 오싹한 장면을 몇 번 보여주고, 중반은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극에 달하면서 결말로 이어지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초반, 중반 그리고 후반까지 설명의 연속이었고, 오싹한 장면이라고 보여주는 것도 오싹하려고 준비하는 데 끝나버렸다. 거기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고, 극의 흐름이 전형적으로 흘러갔으며 구성은 느슨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은 ‘자, 이제 무서운 장면을 보여줘.’였다.



  앞으로 이 감독의 영화는 극장에서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카다 히데오에 이어서 대런 린 보우즈만까지 나에게 커다란 똥을 줬다. 아니, 똥은 냄새라도 남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인님의 얘기가 없었으면, 보았다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무색무취했다. 하아. 이제 남은 공포 영화감독은 제임스 완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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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pider-Man: Homecoming, 2017

  감독 - 존 왓츠

  출연 - 톰 홀랜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이클 키튼, 마리사 토메이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 팀으로 나뉘어 히어로들끼리 격전을 벌인 이후. ‘피터 파커’는 ‘아이언 맨’에게서 새로운 스파이더맨 슈트를 받고 어벤져스 팀이 되었다는 기쁨에 들뜬다. 하지만 연락하겠다던 그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피터는 학교를 다니면서 소소한 동네 히어로로 활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ATM에서 돈을 훔치던 일당을 발견하는데, 그들은 처음 보는 엄청난 무기를 갖고 있었다. 아이언 맨에게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무기 밀매 일당을 뒤쫓는 피터. 하지만 그들의 정체는 그가 생각하는 것 상상 이상이었는데…….



  영화의 상영 시간은 내가 버틸 수 있는 최대치인 두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두 시간 13분이었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영화 ‘타이타닉 Titanic, 1997’ 이라든지 ‘킹콩 King Kong, 2005’처럼 세 시간이 넘은 작품들은 후반부에 가서는 거의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죽을 인물들 빨리 다 죽으라고 말할 정도였다. 최근에 본 영화 ‘원더우먼 Wonder Woman, 2017’도 이 작품보다 좀 길었다. 그래서인지 작품들 다 중간에 호흡이 길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들은 다 나에겐 쥐약이다. 시간이 길면, 이미 별점이 반 개 깎이고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 스파이더맨은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었지만 그리 늘어진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주인공인 피터 파커의 나이가 십 대 후반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 나이 또래의 허세와 우쭐거림, 잘난 척 그리고 한 번 좌절하면 암반층까지 파고들어가는 우울함 등등의 감정이 악당들과의 대결 사이사이에 적절하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우쭐거리다가 된통 당하고, 그래서 고뇌하다가 심기일전하여 제대로 반격하고, 그래서 또 우쭐대다가 다시 위기에 처해 자신의 존재와 능력에 의심을 품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하다가 재기에 성공하는, 롤러코스터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학업과 히어로의 임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친구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 등등이 소소하게 들어있었다. 제작진이 주인공에 대해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빽빽하게 집어넣은 느낌이다.



  거기다 생계형 악당의 짠함도 한몫 거들었다. 도시를 부수는 건 스타크 기업의 회장, 그걸 재건하고 청소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스타크 기업. 병 주고 약주는 게 아니라, 병 주고 돈마저 빼앗아가는 격이다. 그러니 이에 반발하는 무리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을 한 명 죽이며 살인자지만 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국가에게 몰래 또는 대놓고 무기를 파는 스타크 기업은 군수산업으로 엄청난 부를 모아 백만장자로 칭송을 받지만, 개인에게 무기를 몰래 파는 개인은 무기 밀매자로 범죄자가 된다. 이게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음, 모든 것의 원흉은 그러니까 스타크?



  영화는 또한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웃음을 주는 코드를 많이 배치했다.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피터 파커라는 걸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장면은 너무도 웃겼다. 또한 스타크의 부하직원인 ‘해피’와 피터가 화장실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 등장한 소년은 예상 밖의 활약을 보여줬다. 아무런 대사 하나 없이 화장실에서 나와 손을 씻고, 그것도 아주 깨끗이, 휴지로 손을 닦고 나가기까지 틈틈이 두 사람을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보는데, 너무 웃겼다. 그 외에도 슬쩍 지나가는 대사라든지 상황에서 많은 웃음을 주었다. 자잘하게 끼어있는 그런 장면들 때문에 영화는 상당히 유쾌하고 밝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내용을 엄밀히 따져보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은근히 DC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까는 마블이다. 피터 파커와 라이벌이라 혼자만 생각하는, 하지만 그에게 밀리는 학생 이름이 ‘플래시’이고, 영화에서 악당 대장으로 나오는 배우는 예전에 배트맨으로 활약했던 ‘마이클 키튼’이다. 불쌍한 DC.



  문득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Vol. 2, 2017’의 사춘기 버전 ‘그루트’가 떠올랐다. 과연 피터와 그루트, 누구의 팔에 잠들어있는 흑염룡이 더 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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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onder Woman, 2017

  감독 - 패티 젠킨스

  출연 - 갤 가돗, 로빈 라이트, 크리스 파인, 데이빗 듈리스

 





  며칠 전이 막내 조카 생일이었다. 예전에는 고모가 책을 골라 선물했지만, 이제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중2라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다. 물론 몇 가지 선택지는 정해주었지만. 조카가 고른 것은 ‘건담 프라모델’. 음, 그 부분은 내가 아는 게 없어서, 애인님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래서 애인님과 막내 조카와 함께 극장엘 갔다가 건담 프라모델 샵을 가기로 했다.



  셋이서 함께 본 영화는 바로 ‘원더우먼’이었다. 어렸을 적에 빙글빙글 돌면서 변신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나와, 코믹스로 접한 애인님,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조카라는 독특한 조합이었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조카에게 배경 설명을 조금 해줘야했고, 옆 좌석에 앉은 분의 째리는 시선을 접해야 했다. 그 분에게는 죄송했지만, 영화에서는 시대가 언제인지 장소가 어디인지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초반에 등장하는 건물을 보고 ‘저건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야. 저기 차에 적힌 웨인 컴퍼니는 배트맨 회사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줘야 했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비행기라든지 ‘카이저’라는 말에서 ‘지금은 1차 대전이야. 이 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였어.’라고 얘기해줘야 했다. 런던에 도착한 이후에는 ‘저 때는 아직 여자는 투표권이 없었어. 그래서 여자들이 투표권을 달라고 시위를 했대.’라는 설명까지. 아직 조카에게는 알아야하고, 배울 게 많았다.



  위에서 말했지만, 영화의 시작은 현대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원더우먼’에게 ‘브루스 웨인’이 오래 전에 그녀가 찍힌 흑백 사진을 찾았다고 보내온다. 엄청난 전투를 끝낸 것 같은 표정으로 네 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자신의 예전 사진을 보면서, 원더우먼은 회상에 젖는다. ‘데미스키라’는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왕국으로, 인간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전쟁의 신 ‘아레스’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곳의 유일한 아이이자 공주이며 최강의 전사로 성장한 ‘다이아나’. 어느 날 섬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그 뒤를 따라 총을 든 군인들이 상륙한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영국군 장교인 ‘스티브’는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독일의 ‘에리히’ 장군과 ‘포이즌’ 박사가 엄청난 생화학 무기를 발명해 사람들을 죽이려한다고 얘기한다. 그 말을 들은 다이아나는 에리히 장군이 아레스라 생각하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스티브와 함께 섬을 떠난다. 처음에는 낯선 영국 땅에서 혼란스러워하지만, 스티브와 함께 전장에 도착한 그녀는 원더우먼으로 능력을 발휘하는데…….



  영화는 좋았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 어떻게 현재를 만들어 가는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데미스카라 왕국의 여자들은 신이 내린 임무를 위해 활쏘기와 검술을 익히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살았던 스티브의 눈에 그들은 과거에 얽매여있는 존재들이었다. 신의 사명이라느니 선과 악, 사랑, 생명 존중은 어쩌면 스티브가 살던 시대에게 낡은 가치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섬에서만 살았던 다이아나의 눈에 20세기의 영국은 처음 보는 낯선 문물로 가득한, 미래의 사회였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악의 처단이었지, 협상이나 실리, 대의를 위한 희생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공격받는 군인이나 시민을 죽게 내버려둘 수가 있는가? 그녀는 앞에 서지 않고, 뒤에서 계획만 짜는 고위층을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쳤다.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의 가치관이나 문화를 다 떠나,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과 생명 존중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뒤따라야만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다이아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과연 인간은 지켜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기까지 한다. 아무리 아레스의 부추김이 있었다고 해도, 같은 인간끼리 죽고 죽이며, 상대를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은 그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걸 극복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믿을만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고 본다. 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다 포용했기에, 그녀는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난 너희보다 능력이 뛰어나니까 지켜줄게, 난 정의니까’라는 우월의식을 갖고 자아도취에 빠져 활약하는 존재를 뛰어넘었다.



  아쉬운 점을 고르자면,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일까? 중간에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 있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약간 쉬어가는 대목인 것 같았는데, 그 부분을 좀 줄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것만 빼면, 나무랄 데 없는 영화였다.



  음, 뒷이야기를 하자면 영화보고 밥 먹으러 가서 막내 조카와 애인님 둘이서 아주 즐겁게 건담 프라모델과 ‘포켓몬 고’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난 그냥 옆에서 혼자 열심히 치킨만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는 건 바람직한 일인데, 어쩐지 심심했다. 그래도 치킨이 맛있었으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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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Get Out, 2017

  감독 - 조던 필레

  출연 - 다니엘 칼루유야, 앨리슨 윌리엄스, 브래들리 윗포드, 캐서린 키너






  예고편을 보지 않고, 기본 설정에 대한 얘기만 들었을 때는 그냥 드라마가 아닐까 싶었다. 백인 여자 친구 집에 간 흑인 남자 친구라니…….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예전에 흑백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떠올랐다.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연애에 얽힌 흑백갈등을 대화로 풀어갔던, 감동적이었지만 다소 심심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걸 리메이크 한 건가? 그런데 예고편을 보고는 ‘헐!’ 했다. 이 영화는 그 작품의 기본 설정을 살짝 비틀었다. 그것도 다른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뒤섞어서 스릴러로!



  ‘크리스’는 여자 친구인 ‘로즈’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부유한 백인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뜻밖에도 흑인인 그를 무척이나 환대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어쩐지 이상함을 느낀다. 우선 최면으로 심리 치료를 한다는 로즈의 엄마는 그에게 최면을 걸어 금연을 시키고, 모두가 다 백인인 그 마을에서 흑인이라고는 로즈네 집에서 일하는 두 남녀와 나이든 백인 여자와 사는 젊은 남자뿐이다. 게다가 흑인의 우월한 신체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 그의 팔다리를 주물럭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울다가 웃는 흑인 하녀까지 모두가 다 이상하기만 하다. 게다가 젊은 남자의 사진을 본 친구는 그가 얼마 전에 사라진 재즈 뮤지션이라고 한다. 어떻게 된 걸까?



  영화를 보면서 많은 작품들이 떠올랐다. SF 쪽으로는 ‘셀프/리스 Self/less, 2015’가 있고, 호러물로는 ‘스켈레톤 키 The Skeleton Key, 2005’가 있었고, 한국 영화는 ‘더 게임 The Game, 2007’ 그리고 어릴 때 읽은 레이먼드 F. 존스의 ‘합성 뇌의 반란 The Cybernetic Brains, 1950’가 생각났다. 단편 소설이 하나 더 떠오르는데 그건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금물이다. 이 영화가 저 작품들의 설정이나 전개를 따왔다고 볼 수는 없다. 어쩌면 감독과 각본가가 저 작품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자기들 식으로 비틀었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어차피 셰익스피어 이후 새로운 것은 없고, 설정 갖고 따지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작품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빼고는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 더 첨가한다면, 신데렐라 스토리 정도?



  다행히 이 작품만의 미덕도 있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속한 장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 가지 설정으로 진행된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장르를 벗어나서 여러 가지 설정과 변주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범죄물인가 싶다가 갑자기 스릴러로 변하고, 갑자기 세태 풍자를 좀 하더니 뜬금없이 의학 미스터리로 변신했다. 그러다가 액션으로 흘러가다가 호러물적인 면모까지 보였다. 덕분에 영화 시간 내내 딴 짓 안하고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언제 어떻게 장르가 바뀌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말이다.



  별다른 특수효과가 없어도, 대본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아, 그런데 여기부터는 약간 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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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차별을 다룬 영화라고 하는데, 몇몇 부분은 흑인의 자기 자랑 같은 건 왜일까? 문제는 그게 어떻게 보면 자기 자랑 같고 또 달리 보면 자기 비하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중상류계층의 백인들이 흑인의 튼실한 육체를 갈망한다는 게 참 웃겼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너희 백인들은 우리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해라고 자아도취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흑인은 내세울 것이 몸밖에 없다고 비하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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