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Wonder Woman, 2017

  감독 - 패티 젠킨스

  출연 - 갤 가돗, 로빈 라이트, 크리스 파인, 데이빗 듈리스

 





  며칠 전이 막내 조카 생일이었다. 예전에는 고모가 책을 골라 선물했지만, 이제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중2라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다. 물론 몇 가지 선택지는 정해주었지만. 조카가 고른 것은 ‘건담 프라모델’. 음, 그 부분은 내가 아는 게 없어서, 애인님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래서 애인님과 막내 조카와 함께 극장엘 갔다가 건담 프라모델 샵을 가기로 했다.



  셋이서 함께 본 영화는 바로 ‘원더우먼’이었다. 어렸을 적에 빙글빙글 돌면서 변신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나와, 코믹스로 접한 애인님,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조카라는 독특한 조합이었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조카에게 배경 설명을 조금 해줘야했고, 옆 좌석에 앉은 분의 째리는 시선을 접해야 했다. 그 분에게는 죄송했지만, 영화에서는 시대가 언제인지 장소가 어디인지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초반에 등장하는 건물을 보고 ‘저건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야. 저기 차에 적힌 웨인 컴퍼니는 배트맨 회사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줘야 했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비행기라든지 ‘카이저’라는 말에서 ‘지금은 1차 대전이야. 이 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였어.’라고 얘기해줘야 했다. 런던에 도착한 이후에는 ‘저 때는 아직 여자는 투표권이 없었어. 그래서 여자들이 투표권을 달라고 시위를 했대.’라는 설명까지. 아직 조카에게는 알아야하고, 배울 게 많았다.



  위에서 말했지만, 영화의 시작은 현대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원더우먼’에게 ‘브루스 웨인’이 오래 전에 그녀가 찍힌 흑백 사진을 찾았다고 보내온다. 엄청난 전투를 끝낸 것 같은 표정으로 네 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자신의 예전 사진을 보면서, 원더우먼은 회상에 젖는다. ‘데미스키라’는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왕국으로, 인간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전쟁의 신 ‘아레스’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곳의 유일한 아이이자 공주이며 최강의 전사로 성장한 ‘다이아나’. 어느 날 섬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그 뒤를 따라 총을 든 군인들이 상륙한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영국군 장교인 ‘스티브’는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독일의 ‘에리히’ 장군과 ‘포이즌’ 박사가 엄청난 생화학 무기를 발명해 사람들을 죽이려한다고 얘기한다. 그 말을 들은 다이아나는 에리히 장군이 아레스라 생각하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스티브와 함께 섬을 떠난다. 처음에는 낯선 영국 땅에서 혼란스러워하지만, 스티브와 함께 전장에 도착한 그녀는 원더우먼으로 능력을 발휘하는데…….



  영화는 좋았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 어떻게 현재를 만들어 가는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데미스카라 왕국의 여자들은 신이 내린 임무를 위해 활쏘기와 검술을 익히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살았던 스티브의 눈에 그들은 과거에 얽매여있는 존재들이었다. 신의 사명이라느니 선과 악, 사랑, 생명 존중은 어쩌면 스티브가 살던 시대에게 낡은 가치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섬에서만 살았던 다이아나의 눈에 20세기의 영국은 처음 보는 낯선 문물로 가득한, 미래의 사회였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악의 처단이었지, 협상이나 실리, 대의를 위한 희생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공격받는 군인이나 시민을 죽게 내버려둘 수가 있는가? 그녀는 앞에 서지 않고, 뒤에서 계획만 짜는 고위층을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쳤다.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의 가치관이나 문화를 다 떠나,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과 생명 존중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뒤따라야만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다이아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과연 인간은 지켜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기까지 한다. 아무리 아레스의 부추김이 있었다고 해도, 같은 인간끼리 죽고 죽이며, 상대를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은 그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걸 극복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믿을만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고 본다. 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다 포용했기에, 그녀는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난 너희보다 능력이 뛰어나니까 지켜줄게, 난 정의니까’라는 우월의식을 갖고 자아도취에 빠져 활약하는 존재를 뛰어넘었다.



  아쉬운 점을 고르자면,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일까? 중간에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 있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약간 쉬어가는 대목인 것 같았는데, 그 부분을 좀 줄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것만 빼면, 나무랄 데 없는 영화였다.



  음, 뒷이야기를 하자면 영화보고 밥 먹으러 가서 막내 조카와 애인님 둘이서 아주 즐겁게 건담 프라모델과 ‘포켓몬 고’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난 그냥 옆에서 혼자 열심히 치킨만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는 건 바람직한 일인데, 어쩐지 심심했다. 그래도 치킨이 맛있었으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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