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논문 주제를 정하기까지, 총 4번의 '협상'과정이 있었다.(누구와? 지도교수 그리고 내 자신과) 석사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 정말 멋진 학위논문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욕심은 내 글로 흐리멍텅하고 비판의식 없는 동료들에게 자극을 주는 글을 쓰고 싶은 것. 나름대로 나는 그 자극에 '섹시한'이라는 수사를 넣어, 꼭 그렇게 써야지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2009년 1학기 때부터 지금 쓰는 주제를 밀어붙이다가, 다음 학기, 방황의 나날을 보냈고, 지금 다시 돌아와 마음을 가다듬었다. 혹자는, 그냥 수그렸으면, 빨리 졸업하고, 얼른 다음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고마운 걱정을 해줬지만, 작년 가을,겨울의 방황을 나는 후회하진 않는다. 

방황의 시간 속 나는 무엇을 했을까. 일단, 이론을 정치라는 단어와 무조건 묶으려는 것에서 조금 벗어난 듯 싶다. 그 무거운 굴레. 비판하지 않는 자들이 다 미워보였던 옛 시간들. 동료들이 한심해보였고, 그래서인지, 간간히 쓴 소논문은 너무나 '태도'중심적이어서, 내 스스로는 신났으나, 내 논문을 읽어주는 분들은 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최근에 들어서야, 내가 뭔가 잘못된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몇몇 학회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늘 비판,비판이라는 개념을 강조했을 때, "oo야, 그래 네가 생각하는 비판적 문화연구..그거 맞는데..그래도 그 여백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라는 말. 나는 그 동료들의 지적을 사실 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물렁물렁한 사유들, 뭔가 럭셔리해 보이는 '편안한'글들의 집합.  

하지만, 요즘 나를 반성하면서, 그들의 논문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테마에 쏟아부은 그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이 열정을 인정하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지인들은 요즘 내가 쓰는 논문 주제를 보면 다 의아해 한다. 뭔가 '나답지'않다는 것. 그러나, 그럴때마다 나, 정말 한 살 먹었나. 공부나이가 정말 한 살 더 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안에 자리가 잡힌다. 이제 어떻게 비판해야 할 지, 어떻게 사유해야 할 지, 어떤 논리를 추구해야 할 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나, 어디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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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씨의 일을 통해, 문득 '대자보'에 대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학생회 시절,총학생회 친구들에 비해 그닥 정치적인 이야기를 적을 거리가 없었던(아니, 적으려고 했지만, 한계로 인해 적지 못했던 게 맞겠다)  때, '총학'에 있는 친구들을 보러 학생회관에 가면, 긴 천에 거무룩한 굵은 글씨가 무섭게 적혀 있었다. '타도'라는 말이 무섭기도 하면서 가슴 설레였고, '비판'이라는 말이 책이 아닌, 학생들의 정성스런 글씨 한 톨,한 톨에 박혀 있을 때, "그래도 아직은.."이라며, 희망 찬가를 마음 속으로 만들곤 했다. 긴 천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느라, 시간도 없었을텐데,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 보면, 학교 벽 군데군데, 총학 친구들이 적어놓은 다량의 대자보가 보인다. "너무 세게 나가면 친구들이 두려워하니까, 위트있게 가자구" 란 말이 상상될 정도의 개그콘서트 유행어를 섞어 놓은 재치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컷을 따라한 카피들. 그런 '유연함'을 보는 건, 어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뜨거운 현재진행형의 추억으로. 누군가에게는 함께 하고 싶지만 주저하는 이들의 투명한 지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부 때문에 숨가쁜 시간 속에서, 약간의 웃음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매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대자보는 대학생들의 시간과 공간과 연관된 대학생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넘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는 쪽이다. 학생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그 주목도를 올릴 수 있는 곳은, '도서관'. 그래서 대학 도서관은 대자보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한 친구가 사회에 대한 울분을 털어놓거나, 한 학생이 신입생에게 성희롱을 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것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폴리페서에 대한 찬반양론이 때론 인터넷 덧글 달리는 모양새 마냥 대자보를 통해 확산된다. 대자보가 주는 파장은 요즘 시대에는, 어떤 영향력의 행사보다는, 책만 파야 하는 학생들의 고리타분한 시간을 채워주는 약간의 '희소성'있는 에피소드로 그친 감이 없잖다.  

대자보는 학생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에 붙여지기도 하지만, 경험상, 남들이 자고 있을 즈음, 누군가의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소리, 청테이프 뜯는 소리가 밤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질 때 그 맛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이게 언제 붙어있었지? 누군가가 부지런하게 격문을 붙이고 간 시간.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들어가기 전, 유심히 글을 읽어본다. 누구는 "야, 또 누가 글 올렸냐" 속닥속닥거리고. 누구는 진지하게 안경을 매만지며 정독한다. 

대자보는 한 때 국가에서 관리가 들어갔던 매체이기도 했다. 1994년 10월 15일 김예슬 씨가 다니기를 거부한 고려대학교에 당시 국무총리인 이영덕 씨가 학교를 방문한다. 이영덕 씨는 학교를 둘러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내로 들어오면서보니, 벽보가 없는 대학이 너무 깨끗해"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건 당시 총장이었던 홍일식 씨의 친절한(?)보고 때문이었다. 

"고려대 안에는 현재 각종 벽보와 대자보 등 불법부착물이 모두 사라졌다", "총장이 직접 나서 매일 같이 학생들이 붙이는 벽보를 치우자, 학생들도 결국 이에 협조하고 있다" (동아일보, 1994년 10월 16일자 기사) 

대자보는 비단 학내 일만 부각하는 매체는 아니었다. 학교 주변의 일들을 챙기고, 학생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분들을 위한 위로를 담기도 했다. 1993년 4월 고려대 앞에서 23년간  <고모집>이란 이름의 막걸리집을 운영했던 한정숙씨. 당시 한정숙씨가 건강 상태로 가게를 그만둔다는 이야기와 함께, 학생들이 외상값을 갚지 않아 경영이 악화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대자보를 통해, 학생들에게 얼른 외상값을 갚을 것을 부탁했다. 또 맥주집 대신 <고모집>을 더 애용해줄 것을 부탁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1993년 4월 17일자 기사) 

시대가 시대였던 걸까. 1989년 고려대학교 복학생협의회는 대자보를 통해, 술집과 카페출입을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다. 지금으로선 아마 엄청난 뒷담화의 공세에 시달렸을 것 같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생활개조운동'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대학 내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았던 상황.  

대자보는 이렇듯 단순한 성명을 발표하거나, 총학생회라는 조직의 선전 수단이 아닌, 대학이라는 울타리에 있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들의 경연을 위한 매개였다.   

그리고 지금 한 친구가 당당한 제목의 글을 대자보를 통해 공개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그 친구는 과감하게 적들의 이야기라는 수사를 통해 우리 시대의 대학의 의미를 되묻는다.  

요즘 김예슬 양의 일이 있은 이후로, 가끔 학교에 들려 하는 일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대자보를 정독하는 것이다. 때론 내가 부끄럽고, 때론 뜨거워진다.  

가끔 대자보로 더러워진 학교를 상상해본다. 관리 아저씨도 감당하지 못할 많은 격문들이 붙고, 그 격문 안에서 희망과 행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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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학교에 가기 싫어서, 연구실이 있는 건물은 거의 가질 않았다. 대신 신촌에 몇몇 카페를 돌아다니며, 책을 읽고, 사람구경을 하며, 논문을 다듬는 게 요즘 내 일이다. 카페에 있으면, 공부가 잘 되요? 묻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대체로 잘 되는 편에 속한 것 같다. 내가 아지트로 삼은 곳은 서강대 가는 길 O 카페, 이화여대 가는 길 쪽 M 카페 정도다. 그러다가 가끔 신촌역 2번 출구로 나오는 길에 바로 보이는 T 카페에도 종종 들려 몇 시간을 죽친다.  

워낙 사람구경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나는 참고로 토익 첫 시험 때 토익 시험을 실제로 치기보다는, 이런 시험을 치러 오는 사람들이 어떤지 구경하러 갔었다) 눈에 들어오는 카페 속 장면들이 있다. 무엇보다 자리 잡기에 대한 장면들이 카페를 들릴때마다 겹쳐,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자리를 잡을 때 보면, 나와 같은 소심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낀다. 분명 카페 안에 빈 자리가 많은데도, 남자친구와 손을 랄라라 잡고 온 어떤 여자분은 빈 자리보다, 뭔가 빽빽한 기운에 질식당할 것 같은 지, 남친의 옷자락을 잡고 그냥 나가자고 한다. 왼손에 토익 교재를 한 꾸러미 잡고 온 어떤 여자분은, 자리를 빙 둘러보더니, 분명 빈 자리가 몇 개 있는데도, "야, 자리 없다."라는 말이 같이 온 친구에게 쉽게 나온다. 나도 한 때 그랬다. 카페에 분명 빈 의자와 테이블이 보이는데도, 뭔가 빽빽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같이 온 친구에게 그냥 나가자고 말한다. 그러다가 다른 카페를 찾고. 결국 처음 발견한 그 카페를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잦다.  

어떤 인지일까. 나는 좀 엉뚱하게도 지하철 7호선 온수역, 지하철 용산 역 동인천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전쟁을 치루듯이 자리를 잡는 그 광경이 겹친다. 이 상황도 웃기고 흥미롭다. 사람들이 그렇게 우르르 달려들어도 빈 자리가 보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지 않고, 꿋꿋하게 창에 기대는 친구들이 있다.(나도 사실 이 쪽이다) 무슨 심리일까.  요즘 그런 장면들을 워낙 자주 보다보니,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솔직히 어떤 자리에 앉을 지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제법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그런 사람들과 비슷한 나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 잡기의 또 다른 맥락. 나는 늘 앉는 데만 앉는 습관이 있다. 이건 많은 이들이 실제로 해 봤을 것 같다. 수학으로 비유하자자면 나는 왼쪽을 기준으로(1.1) 자리를 참 좋아했다. 늘 그 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졌고, 교수님의 강의도 귀에 잘 들어왔다. 하지만, 시험은 달랐다. 시험 때는 주로 뒤로 앉고 싶어 했다. 시험 때, 문제를 가장 먼저 받아, 뒤로 넘기는 그 순간이 나는 이상하게 싫었고 불안했다. 실제로 자리에 따라 성적도 상이했는데, 뒤에 앉아서 시험을 봤던 날은, 점수가 잘 나왔다. (찍는 것도 잘 되었던 것 같다 ㅎ) 

앞에서 이야기한 카페에서 자리 잡기와 조금 다른 맥락. 나는 빈 자리가 많은 식당을 좋아한다. 내 친구 참참은 붐비는 분위기가 아니면 여기서 나가자고 내 옷자락을 휘휘 잡으며 흔들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런 식당이 끌린다. 맛이 없어도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러다 단골이 되고, 주인의 사연을 듣는다. 동네 집값 이야기, 음식 재료 시장에서 떼어 오는 이야기, 나라 이야기, 날씨 이야기 등등. 이야기하다보면, 과일이 나오고, 매번 보던 반찬에서 계란말이 하나, 소세지 하나가 더 얹어져 있다.  지난 여름이었던가. 인천의 냉면 골목에 참참과 함께 갔다가, 나는 냉면을 먹고 온 것이 아니라, '마시고' 온 것에 심한 불쾌함을 갖고 있었다. 긴 대기줄, 사람들은 언제 빈 자리가 생기나 요리조리 눈치를 본다. 앉아 있는 사람들.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냉면에 신기해하면서도, 이야기도 하지 않고, 겨자 소스 한 번, 식초 한 번 뿌리는 시간, 후루룩 세 번의 시간 그리고 물 약간 마시는 시간. 한 남자는 연인의 늦은 식사 시간을 자신의 빈 그릇으로 재촉한다. '야, 나 다 먹었어. 사람들 몰려와. 왜 이렇게 늦게 먹니?' 무언의 압박.  (난 개인적으로 '맛집'이라는 걸 그닥 신뢰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맛집에서 느끼는 자리의 강박. 진중권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인들은 휴식도 일처럼 한다고. 맛집은 붐비는 분위기, 그 분위기 안에 나도 동참해봤다는 경험 경제의 하나일 뿐. 정작 나는 그 맛이 그 맛이더라) 

또 내가 잡아야 할 자리는 무엇이 있을까. 부산 사직구장 명당자리?(응원단과 최대한 가깝게) CGV 아이맥스 영화관 명당 자리?(아바타 볼 때) 동네 큰 교회 명당자리?(설교시간에 적절히 졸기 좋은, 새신자카드 작성하라고 재촉 안 받는 좋은 자리?) 예비군 안보시청각 훈련 때 명당자리?(휴대폰으로 게임하기 좋고, 자는 것도 눈치 안 보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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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20 16:3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서강대 근처에 잘 가는 주점이 하나 있는데, 언제 한 번 편안하게 세상사 이야기 할 날이 오길 고대합니다.^^ (대신 졸업논문부터 좀 처리하겠습니다. 쿨럭 )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시대에 뒤쳐진 젊은이'로 볼 것 같아 두렵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대중문화를 비평한다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루에도 수 십 건씩 터지는 연예인들의 일희일비를 대상으로 한 비평을 쓰는 이들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쉽게 말해서, 나는 그런 사건 하나,하나를 통해 좋은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카페에서 친구들과 앉아 조금은 두껍고 심각하게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자신들의 세밀한 생각들을 교류해보는 것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말이 아닌 '글'로 표현되었을 경우 조금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글이 어떤 저널에 기고가 되었다는 부분이 하나요, 또 글을 통해 나름대로 비평이란 형식 속에 한 사건을 논리정연하게 보여줘야 하는 저자의 태도라는 부분이 다른 하나다. 그 측면에서 어쩌면 가볍게 이야기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 혹은 편하게 이야기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 진지하게 논의될 공간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한국평론가자격고시 같은 것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비평가라는 직함을 따기 위해 시험을 치는 것도 웃기겠거니와, 글쟁이들의 밥벌이라는 그 고단함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경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거다 싶어, 달려드는 비평문들을 보면 정말 재미가 없다. 혹은 지나치게 규범적이다. 그래서 연예프로그램에 자주 출몰하는 대중문화평론가라는 직함의 이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인터뷰 속 말이나 글이 똑같은 수준이라는 것에 민망함을 감출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형식상, 인터뷰 속 말은 아무리 신랄한 시선을 담지하더라도, 약간은 재미없는 식상하면서 진부한 멘트를 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신선하고 날카로운 의견의'자유가 보장된 기고 공간에서도, 그러한 인터뷰 멘트를 보는 느낌을 가진 적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 이것은 그 대상이 단순한 정보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과 사건. 비평을 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그 대상과 관련된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을 향한 수많은 루머들이 퍼지거나, 관계된 사연이 소개된다. 비평을 하려는 자들은 그 정보를 읽어본다. 그 다음은? 거기서 나오는 대답은 결국 새로울 순 없다. 지극히 도덕적이거나, 혹은 지극히 정보를 잘 정리한 정도 밖에는. 나는 어떤 의미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정보 중심의 시네필 문화가 갖는 폐해에 대한 언급한 측면이 고스란히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예 사건을 다룬 비평들의 공통점은 정보 중심의 재구성인 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거기서 해석을 내리는 수준은 그냥 약간의 진지함을 띤 포장의 효과일 뿐이다.   

많이 '알지만'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성일이 지금의 영화광들에게 내린 직언이었다. 그대로 이어보자. 소녀시대를 비평하는 누구는 소녀시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알겠지만, 정작 소녀시대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앎의 표피적 배치와 구성. 정성일은 그것을 사랑이 아닌 단순한 신학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내가 이 '기이한'세태를 나름대로 분석해보면서,고리타분한 현상이 아닌,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비평. 그 비평은 '문화를 사랑하는 비평'이 아닌 듯 보인다. 거기에 남은 건, 오직 자신이 분석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이런 글'을 쓰고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자기 만족, 자기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자기에 대한 신학으로 귀결되면서, 자기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리고 어정쩡한 비평을 계속 남기기. 수많은 덧글들이 그 비평을 둘러싸지만, 이미 그 자에게 그러한 덧글은 악의 무리들,무지한 이들의 잡변으로 환원된다.

혹자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흉내를 내며, 90년대 한국 문화담론의 폭발 때 <상상>,<리뷰>,<이매진>등에서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던 그 비평의 기운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마치 새로운 것인양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진지한 의미를 붙인다는 것에 대해 이상한 정당화를 추구하려 한다. 지나치게 가볍거나 혹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미쳐 있는 비평의 상실. 어쩌면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곤조 저널리즘'의 창시자 헌터 s. 톰슨이 가졌던 세상을 향한 지나친 열정과 애정을 몸소 실천하는 그 자세를 요즘 글쟁이들은 너무 안이하게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 스스로의 신학에 빠져버린 것. 자신이 이런 대중문화에도 그런 진지한 의미를 남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과한 신학. 지나치게 스스로를 숭배하거나(학문의 고귀함이란 이름을 갖다대며 스스로의 논리 옳음을 보호하는 데 치중/치장하는 비평) 혹은 지나치게 타인의 우상에 빠져있거나(단순한 정보의 재구성을 엄청난 해석으로 포장하거나, 그 시선을 사회에 대한 해결책인양 으스대는 해결사적 비평이 추구하는 타인지향형적 태도)  

 

아..내 글도 함정에 빠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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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밝히고 싶은 건 나는 '천안함'이 소속된 해군 2함대 정훈공보병 출신의 예비역이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내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천안함 관련 뉴스를 계속 녹화하고, 새벽에 일어나 언론의 2함대 관련 뉴스를 클리핑할 후배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런 고생을 위로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군대 언론의 역할을 하는 '정훈공보실'의 구성원들이 아직까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걱정할 이들을 위해,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길 바란다. 군대 내 속성상,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라도, 쉬쉬할 공산이 크다는 건 비단 해군 출신이 아니더라도 군을 갖다 온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상식일 것이다. (상식이라는 표현이 비극적이긴 하지만) 

요즘 군대가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군대라는 울타리에 들어온 이상, "너희는 이제 나라를 위해 쓰일 병기란 말야"라는 훈련소 어느 장교의 말을 곱씹어보면, 군대가 환경이 좋아지는 것과, 그 장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군대 내 많다는 건 다르게 봐야 할 문제라는 건 명백하다. 누구는 기독교를 싸그리 비판할 때와 같이, '일부'를 가지고 그렇게 군대를 폄하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 '일부'가 군대라는 명령 체계로 움직이는 시스템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통해 시신으로 돌아온 장병들은 엄연히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 '개죽음'은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그리고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죽음이기에, 더 그렇다. 더 나아가서는 군대의 일순간 오류가 아닌, 그동안 누적되어온 군대라는 조직의 메커니즘이 방관해왔던 부분들의 폭발로 인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제기하는 '음모론', 언론이 제기하는 '음모론'이 주는 안타까운 이 현실 판단은 씁쓸함을 가중시킨다. 

군대의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정훈공보실, 더 적확하게 말해서 해군 정훈공보실이 다른 병과에서 주는 정보들을  쉬쉬하려는 데 애를 쓰고 있다면, 오늘도 정권의 엉덩이를 핥기에 바쁜 신문,방송 언론들은 팍팍 드러내기에 바쁜 것 같다. 군대는 보이는 것을 보이려 하지 않게, 군대 용어로 '싸재(사회)에 속한 언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려 만드느라 바쁘다. 그 빈틈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우리들이 있다. 그리고 그 우리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유가족들의 모습도 있다.  

정말 잔인한 지적일 수 있겠으나, 이번 사건을 통해 해군 지원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해군 2함대의 이미지가 떨어지는 것이 더 걱정될까봐 이 사건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는 군대 간부들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와 같은 사병 출신들이 소속 부대에 대한 얼마나 큰 애착이 있겠나. 사병을 나온 우리와 같은 이들에게 어느 부대를 나왔다는 건, 전역을 해서 관계를 만들어가고, 술자리 때 맛난 반찬격인 '향수'용으로 쓰일 따름이다. 단, 이런 충성심의 층위와 달리, 군을 업으로 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모조리 전가하는 것과 달리, 군대 안에서 '조국'이라는 이름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령관 이하 간부들이 분명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부탁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그들이 너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2함대 작전실 벙커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사실상 각 해군 병과 중 가장 낮은 영관 계급을 가진 정훈공보실장의 사무실에서 작전과,감찰실,법무관 등등의 영관장교들은 점심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나는 함부로 예단하지 않겠다.  

나는 큰 것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윗 분들이 지금 실신하고 오열중인 저 가족들의 마음을 '인간'의 모습으로 봐주길 바란다.  희생당한 장병들을 병기가 아닌, 전역을 한 달 앞두고,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소소하게 살았던 한 인간으로 대우해주길 바란다. 그랬을 때, 그들의 죽음은 2함대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지금 이 사회의 현실이 이랬음을 공유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의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 안에서 보상금이니, 성금모금이니하는 '처리'의 언어들이 넘쳐나는 것은 "이제 이 정도면 되지 않겠냐"는 현실주의를 가장한 또 다른 회피일지 모른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침몰당시 신속하지 못한 구조로 인해 많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명같다는 군대의 보고 체계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외부의 공격으로 침몰된 것이라면은 국방부와 국군에게는 

중대하고 치명적인 오점이 될 것입니다. 

무능하거나 정직하지 않은 군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부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물에 잠긴 배 안에서 끝까지 사투를 벌였을 천안함 승조원들과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가족들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모든 진실이 명백하고 완전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길만이 바로 한없이 떨어져버린 군당국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며 피끓는 청춘을 조국에 받치고 있는 60만 국군장병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길이고 역사의 퇴행을 막는 길일 것입니다. 

정부가  천안함 순직 병사들에게 전사자에 준하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기로 한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티끌만큼의 의혹도 없이 모든 진실을 밝히는 것 만이 

마지막까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젊은 넋들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 <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의 마지막 멘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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