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명예교수 조셉 와이젠바움. 영화 <her>에서 테오도르와 OS 사만다의 관계를 좀 깊게 이해해보고자 찾은 두 권의 책은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그리고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두 권 다 조셉 와이젠바움 교수와 엘리자에 대한 에피소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1964년부터 1965년 사이 몇 달에 걸쳐 당시 41세의 한 교수가 글로 쓰여진 언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응용프로그램을 만든다. 이 프로그램은 애초에 컴퓨터를 쓰는 학생이 문장 하나를 치면, 프로그램이 영어 문법의 단순한 규칙들의 집합에 따라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나 구문을 알아내고, 이것이 사용된 통사론적 문맥을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 이 프로그램의 혁신은 '답변의 형태를 띤 새로운 문장'이었다. 엘리자는 답변과 물음으로 '인간과 컴퓨터가 벌이는 인간적 공모'인 엘리자 효과라는 개념의 당사자가 되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원리는 '나는 00다'를 엘리자가 기본적으로 인식한 뒤, '얼마나 오랫동안 00했나요?'식의 답변을 산출해내는 것이었다.
와이젠바움의 엘리자는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프로그램, 인공지능에 대한 열광이 있던 시기였다. 심지어 인간의 언어는 컴퓨터 내에서 실행되는 알고리즘 중 하나의 산물이란 생각이 나왔던 시기였다.
와이젠바움은 엘리자에 심리치료사라는 인격을 부여한다. 1940년대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환자와 대화할 때 부러 이 세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척한다. 심리학자들은 환자와 대화할 때 따분하게 느껴지는 열린 질문을 반복해 던지고, 이 형식을 알아차린 환자는 모든 종류의 배경 지식, 이해, 논리력이 자신들의 치료사로부터 나온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와이젠바움은 이 로저리안 페르소나가 엘리자에게 매우 결정적인 심리학적 유용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참고로 엘리자라는 이름은,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에서 음성학 교수 헨리 히긴스의 가르침 아래 또박또박 정확히 영어를 말하는 법을 배우는 런던의 꽃집 아가씨 엘리자 두리틀에서 따온 것이다.)
(이미지는 대화 내용과 무관함)
엘리자의 초기 시험자였던 한 젊은 여성과 엘리자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시험자: 남자들은 모두 똑같아요
엘리자: 어떤 식으로요?
시험자: 그들은 언제나 이런저런 일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어요
엘리자: 특별한 예를 생각할 수 있나요?
시험자: 글쎄, 내 남자친구는 내가 이곳에 오도록 했어요
엘리자: 당신의 남자친구가 당신을 이곳에 오도록 했군요
시험자: 그는 내가 거의 늘 우울해한다고 말해요
엘리자: 우울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안됐네요
조셉 와이젠바움의 제자들이 자신의 스승이 만든 프로그램을 썼을 때, 스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은 처음엔 '오늘 기분이 어때요?'나 '안녕하세요?'란 인사를 건네다가 '여자친구가 날 떠났어요' '유기화학 시험을 망쳐 걱정이에요' '여동생이 죽었어요' 같은 이야기를 자주 꺼내게 되었다.
셰리 터클은 이러한 인간적인 기계의 시대를 조망하면서, 인간이 무생물에 기만당하는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 관점이 아니라고 말한다. 터클이 보기에 중요한 것은 빈 곳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엘리자 효과에 대한 이해는 와 어느새 컴퓨터가, 로봇이, 인공지능 시스템이 이런 단계까지 왔냐에 대한 감탄보다는 실은 인간이 기계와 교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터클의 주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편 와이젠바움은 엘리자가 일으키는 여러 사회적 현상들을 보면서, 지혜를 요구하는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는 것을 거부하는 용기를 주장했다. 물론 그런 그의 주장에 대해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와이젠바움이 이단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