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가방에 잔뜩 무엇을 넣고 다닌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길 좋아한다. 역도 선수도 아닌데, 나의 무게를 실험하며, 5kg 더! 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넣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넣고 다니는가? 제대로 물은 적이 없다. 스스로에게. 이 물음은 조금은 무겁게 바뀌었다. 나에게 가방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나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방’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달릴 때, 정지와 멈춤을 인식한다. 그러나 ‘가방’도 생각해보면 비슷한 원리인 것 같다. 가방을 약간 의인화하자면, 가방은 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좀 쓸쓸하게 말하자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물이다. 가방은 어디를 향하고자 할 때,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소한 사물이자 필수적인 사물이다. 이러한 설렘은 주로 ‘채움’에서 나타난다. 가방에 무엇을 넣는다는 것은 내가 늘 안주하던 ‘이 곳’을 떠난다는 ‘탈주’의 시도다. ‘저 곳’이 내게 어떠한 희열을 줄 지 모르지만, 우리는 ‘떠난다’는 행위 자체에 일단 기대를 건다. 그것은 그만큼 ‘이 곳’이 갖는 일상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 ‘탈주’와 나의 거리를 멀게 했다는 걸 반영하기도 한다.


‘가방’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그 누군가는 ‘이 곳’을 떠나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곳’은 이승에서의 삶일 것이다. 누군가의 육신이 자신의 존재를 ‘저 곳’에 맡겨야 할 때, 가방은 ‘이 곳’에서의 육신을 정리하며, ‘저 곳’에서의 영혼을 빌어주는 매개적인 사물이다. (가방은 미디어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매개 속에서 여전히 ‘채움’은 삶의 정지와 작동을 표시한다. 가방에 들어가는 고인의 유품은 누군가의 삶이 더 이상 이곳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표현이자, 그 표현은 곧 ‘향수의 장소’가 된다.


가방은 끊임없이 움직일 수도 있다. 가방은 정처 없이 떠도는 누군가의 귀한 친구가 된다. 서로 말은 없지만, 가방 속에 들어간 사물은 가방과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연결 고리다. 가방과 나는 ‘채움’과 ‘비움’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유한다.


영화 <인 디 에어>를 보면서, 다시 ‘가방’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는 정해진 목표, 정해진 규격, 그것의 편안함 혹은 일정함에 속해 있다는 표식으로 가방을 들고 다니며, 가방 속을 채울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늘 이 곳의 안정감을 균열내기 위한, 혹은 탈주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방을 들고 다닐 것인가.


때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가 속박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가방의 채움과 비움이 주었던 ‘탈주’의 희열은 뭔가 뒤바뀐 것 같기도 하다. ‘가방’과 함께 할 수 있던 저 수많은 경험의 곳을 ‘가야한다’라는 압박으로 느낄 때, 가방과 함께 하는 ‘떠남’, 그 발걸음과 어깨의 짓누름은 무겁고 또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무거움보다 더한 ‘무서움’은 가방을 매거나 들고 가지 않는 사람에게 지워지는 무형의 가방들이다. 우리 삶엔 아직 꺼내지 않은 가방 속 물건이 많고,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가방 속 물건들도 많은 것 같다. 가방을 불태워버리자는 짐짓 ‘정치철학적’ 시각은 아직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사유에서만) 일단 필요한 건 내가 지고 있는 이 가방을 쳐다볼 때다. 너무 원칙적이지만, 이 원칙을 지키기도 살기 어려운 세상이 아닐까. 휙휙 던져지는 가방, 그 피곤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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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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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0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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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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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0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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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7-1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늘 메고 다니는 가방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군요. 주로 교정지를 넣고 다니니 밥벌이와 직결된 가방인 셈인데, 그동안 홀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ㅎㅎ 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얼그레이님^^

얼그레이효과 2011-07-25 06:16   좋아요 0 | URL
후와님의 가방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후와님도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2011-07-19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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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0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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