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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지난 1월 18일 끝내고, 지금까지 노는 중이다.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이 싫어서, 책을 여러 권 겹쳐 읽어보는 시도까지 했지만, 좋은 극복 방식이 아닌 것 같아 일단 2월까지는 마냥 놀기로 했다. 사회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 만큼, 내 의견도 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상담까지 받기도 했다. 친구의 위로는 결국 좀 놀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마치 "뒤를 좀 돌아봐"같은 자신의 일에 매진한 사람들이 쓰는 경구같은  시간을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 의심을 안심으로 바꾸는 것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것 같았다. 일단 아무런 의견 개진은 최대한 안 하기로 했다. 한다면 단순한 욕설 정도로 정리하기로 했다. (나 왜 이렇게 랩을 하는 거지. ~하기로 했다)

요즘 대학 동기 한 명이 안 좋은 병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말 정도에 이 소식을 들었는데, 난 그때 놀라움만 가슴에 가둔 채, 그 친구의 불안감을 매만져주지 못했다는 약간의 자책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그 친구의 투병 과정에 필요한 모금을 시도하기로 했고, 오랜만에 '과대'기질을 발휘해 모금 과정의 마무리에 와 있다. 어떤 보람 혹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연락하여 뜻을 모으는 과정에서 오는 어떤 스트레스. 사실 뭐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좀 거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영화를 보고 스스로 그 영화를 비평할 때 제법 진지하게 꺼내본 질문 이상은 아니었던 삶과 죽음. 그 문제를 정작 내 대학 친구가 겪고 있다 생각하니 왠지 내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친구에게 긴밀히 온라인으로 쪽지를 보냈다. 그 친구가 남편과 함께 지혜롭게 자신의 병을 극복해 나가는 것에 삶의 한 면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친구는 요즘 밝고 명랑한 소식, 표정으로 자신의 근황을 올린다. 그 친구가  내게 보내온 쪽지는 막 감동적인 문구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놀랐다', '어쩌겠나', '이겨내야지' 등. 무덤덤 그 자체였다. 거기에 '너 정말 대단하다'와 같은 진부한 응원을 보탠다는 게 초라하게 느껴졌다.  

친구에게 전이된 무덤덤함이 오래 간다. 사람들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격하게 분노하는, 그리고 열렬히 갈구하는 그런 현상들, 대상들에 대해 이상하게 밀가루 맛이 나는 것 같다. 당분간은 이 상태를 즐길 계획이다. 지금은 책도 영화도 '그냥' 읽고 '그냥' 봐야겠다. 넣으려고, 집을려고 애쓰지 말고, 가만히 놓아두고, 또 비워야 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나는 이것을 슬럼프라고  이름 붙이려 애썼는데, 그 수고로움마저도 잠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입력도 출력도 아닌, 전원을 다 끈 상태라는 걸 인정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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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1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자기를 채우고 있는 열정이나 기운이 빠져나가면 맘이 좀 허해지기 마련인가봐요.

친구분이 얼른 낫길 바랄게요.

얼그레이효과 2011-02-24 00:44   좋아요 0 | URL
arch님 오랜만이에요. 진단이 정확하신 것 같아요. 조금 쉬니 머리가 돌아가는 듯해요. 다시 달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