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92호 - 2010.가을 역사비평 92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8월
품절


천정환 선생의 <신자유주의 대학체제의 평가제도와 글쓰기>중 일부를 옮겨본다. / '학진 시스템'은 학문적으로 기여한 바가 많다.젊은 학자들이 정당한 학문적 이니셔티브를 갖게 됐으며,지원제도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대규모 기초연구가 수행됐다. 또한 고식적인 학문 간 경계가 흔들리고 융합적 학문연구도 확산되었다.그러나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선 학의 세계를 평균화,전일화,국가화하며,모든 학자와 연구를 거대한 하나의 창구,하나의 틀 속에 밀어넣고 있다.그럼으로써'학진 시스템'은 모든 '외부'를 재빨리 지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194쪽

'국가 안에서의'학의 자율성은 외관상 커졌지만,인문학이 가져야 할 가치인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이는 양가성을 갖는다. '국가'는 인문학의 최후 보루이며,동시에 '인문학의 위기'를 오히려 극단화시키는 장본인이다.특별한 실천력과 신념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연구자의 모든(194) '연구 성과'가 거기 '등재'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근대적 글쓰기와 근대자가 탄생한 이래 미증유의 일이며,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라 본다. '학진 시스템'하에서 우리 모두는 '국가-학자'인 것이다.그래서 '학진 시스템'은 지식 생산의 문화를 전변시켜 인문,사회과학자의 존재방식을 바꾸어놓았다.'지식인'은 이제 소멸했다.'연구자'혹은'전문가'만 존재한다.'국가'에 대한 인문학자의 의존성은 지나치케 커졌다.-194,195쪽

2000년대 초에 일어난 '인문학의 위기'담론은 인문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상시제도화하다시피 했다.이제 그것은 모종의 중독상태를 만들고 있다.이제 HK--BK같은 제도가 없는 한국 인문학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과정에서 '학진'은 그 자체로 무소불위의 리바이어던이 되던가,또는 리바이어던의 한쪽 팔이 되어 인문학을 지배하고 있다.'국가'에 의한 지원이란 언제나 정치(논리)와 절합될 가능성도 있다.과연 이 거대한 기계-동물을 제어할 수 있을까?-195쪽

'학진 시스템'하의 '학문'의 어떤 마디들은 점점 희화화,화석화되고 있다.학회의 정착,확산과 심사제도의 일상화는 '관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특히 '글쓰기'가 획일화되고 있다. 비슷한 문체,구성을 가진 수없이 많은 '논문'이,거의 똑같은 '원고 투고 규정'을 가진 '학회지'에 의해 대량생산되고 있다.모두가 [등재]학술지에 논문 쓰기와 심사평가-업적 보고에 목을 매달고 있지만,그것을 진실하고 온전한 인문학 활동이라 생각하는 인문학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이 제도는 그야말로 움직이기 힘든 '현실'로 실정화되었다.그래서 본연성에 대한 의식과 별도로 '현실'에 맞추어 살기 위한 적응력과 테크닉이 점점 고도화된다.또한 서론-본론-결론의 구성과 국문 초록-영문 초록-국문 핵심어-영문 핵심어 등의'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러운 '현실'이면서,점점 글쓰기의 본연을 잊게 만드는 매개다. -196쪽

더 큰 문제는 등재지 학술논문 중심의 '학진 시스템'인정구조가 강력한 경계벽이 되어 대학과 현실,학문과 현실 사이에 높은 벽을 쌓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논문'은 그야말로 양산되어 인문학이 발전하고 있는 듯하지만(196),그것은 '글쓰기'의 다른 존재방식인 비평과 '책'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196,197쪽

'인문학의 위기'가 중,고등학생들까지 입에 올리고 다니는 상투어가 된 것이 2006~2007년경이다.그런데 불과 3~4년 사이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오늘날 '인문성'을 규정짓는 한 변수가 시민을 향한,시민을 위한 인문학을 표방하는 인문학 강좌의 붐이다.전국의 지자체와 큰 지역 도서관과 대학 뿐 아니라,고급 백화점이나 대기업들도 '인문학'을 위해 나서고 있다.그리하여 이전에는 상상해보기 어렵던,극적이고 때론 코믹한 광경이 '인문학'덕분에 벌어지고 있다. -200쪽

'인문학'과는 가장 거리가 먼, 한국 사회의 양극에 있는 집단들이 각각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다.가장 돈 많고 권세 많은 대기업 CEO와 고위 공무원,그리고 '돈과 명예'양면에서 가장 '비천한'자리에 있는 노숙자,성매매 피해 여성, 재소자들이 그들이다. 인문학 강좌를 들은 CEO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실행자로 변신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또한 '인문학'이 가장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그 '비참'을 덜 수 있는 힘과 보람이 될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200쪽

그럼에도 인문(200)학자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무수한 스펙트럼의 '시민'들이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다.요컨대,몇 년 사이에 인문학 독서시장은 황폐해지고 대학원생도 줄고 있는데,'인문학'은 교양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시민'과의 접촉 부면을 넓힐 것이다.따라서 '편수'나 '논문 쓰기'는 제도 내부의 인문학과 외부의 인문학의 성격 및 주체를 지금보다 더 확연히 갈라놓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하기에 누가 '시민 인문학'의 주체이며,시장의 '인문학 서적'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인문학자들이 이런 흐름을 적극적으로 성찰하거나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진 시스템'과 '업적 점수'에 타락하고 있는 '제도' 종속적인 정신을 세척하는 물줄기를 트는 일이다. 공부 결과를 '공공적인'생산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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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9-13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지적이 많네요. 전 정권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아마 곧 종료되겠지만, 저희 과도 bk를 받는 입장에서 평소에 느꼈던 답답함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하이데거의 <세계상의 시대Die Zeit des Weltbildes>를 빌려봤는데 하이데거도 이미 그런 말을 써 놨더라구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철학은 이제 사유denken하지 않고 연구나forschen 하고 있다'였나? 그 여백에도 어김없이 누군가 bk라고 써 놨었지요; 사실 제일 역겨운 것 중 하나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인지 뭔지 하는 거 같아요.

얼그레이효과 2010-09-13 02:22   좋아요 0 | URL
바라님 오랜만입니다. 아, 하이데거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 좋은데요. 천정환 선생이 우려하는 걸 좀 감히 줄여보면 결국 '인문학의 국가화'와 '인문학의 (과한) 사회화(?)' 같은데요..요즘 제 주변도 그렇고,,'아카데미 내의 일정한 패배주의'라고 할까요..그런게 느껴져서 두렵더군요. 더 두려운 건 그 패배주의를 극복할 방안을 함께 모색하지 않고,그냥 돈 좀 내고..아카데미 바깥에서 좀 더 배우고 오면 되지와 같은 움직임들이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강하던데..천정환 선생 글을 읽으면서,,고민을 더 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라님이 전념하시는 연구 분야와 이런 학문 '사업'의 결합에서 바라님을 포함한 공부하시는 분들의 상처 같은 게 감히 떠올려지네요..어떤 선까지 악수를 해야 하고, 어떤 선까지 거부를 해야 하는지 점점 그 고민의 두께가 두터워지는 요즘입니다. 그 시기에 또 이런 아티클이 다가왔네요..크윽. ㅜ.ㅜ (독립영화도 관변화하려는 이 시대에,,인문학의 국가화라..가끔 제가 콘텐츠 생산자는 아닌가하는 고민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