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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채널 서비스에 가입해도, 결국 집중적으로 보게 되는 채널은 한정되어 있다. 영화 채널 안에서도 그런 법칙은 유효하다. 캐치온 같은 유료 서비스나, 오시엔, 채널 시지뷔 같은 채널이 아니면, 그 이외 채널들은 소외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히려 소외받는 채널들이 주는 사소한 재미들 또한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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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두를 빚느라(내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는 분들은 이 '만두'가 진짜 만두는 아님을 알 것이다) '야행성'체질로 바뀌면서, 좀처럼 보지 않던 채널들을 틀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이 채널들은 보고 싶은 최신 영화나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옛 작품들을 틀어주진 않지만, 조금만 참고 있으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옛 영화, 혹은 몰랐던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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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도 버리는 시간대, 새벽 1시~ 4시 사이. 이때, 사람들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영화들이 마구 쏟아진다. 내가 요즘 '버리는 영화'라고 명칭을 붙인 그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나의 눈보다는, 리모콘 버튼의 사랑을 더 받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자신만의 보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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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내 눈에 자주 걸리는 작품은 아주 모르는 영화들은 아니고, 특히 남자들의 뜨거운 성교육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던 잘만 킹 감독의 대표작 <레드 슈 다이어리>다. <와일드 오키드>에서 미키 루크의 그 끈적한 모습을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있었던 나에게, <레드 슈 다이어리>를 최근에 이렇게 야심한 밤에 만난다는 건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레드 슈 다이어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에피소드가 소개 되기 전, 개와 함께 등장해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다 껴안은 것 같은 데이빗 듀코브니의 모습이다. 듀코브니는 자신에게 도착한 에로틱한 사연들을 읽고, 개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고, 짧게, 그리고 강렬하게. 하지만 언제나 목소리는 지긋이 깔면서. 이 작품에서 온갖 '똥폼'을 다 잡는 그를 보다가, 미드 <캘리포니케이션>에서 맡은 섹스 좋아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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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시간대'에 만나는 또 한 명의 반가운 인물은 섀논 트위드이다.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그 열기가 식었지만, 비디오 문화가 한창이었을 때, 비디오 가게 에로 칸을 자주 채우던 이 여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에로 스릴러 장르의 대표 주자였으며, <데드 섹시>같은 작품은 꽤 재미 있어서 세 번 정도 봤던 기억이 난다. 섀논 트위드는 이제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그녀의 전성기 모습은 여전히 '버려진 시간대'를 통해 자주 볼 수 있다. 언제나 에로 영화 특유의 색소폰 소리와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녀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너무나 유명한 락 그룹 키스의 멤버 진 시몬스이다. 예전에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완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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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버려진 영화'들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 쿠엔틴 타란티노가 했던 말과 같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영화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