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써놓은 글이 있었는데, 부주의로 날렸다. 그래도 이 충격을 상쇄시킬만한 일상의 발견 혹은 문화적 차이. 오늘 오랜만에 만난 일본인 친구(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의 한국 친구분)가 해주신 말은 이랬다.
어떤 일본인이 물었단다. "한국에는 왜 장례식장이 병원과 같이 붙어 있나요"
당연한 것에 대한 의문 제기. 혹은 또 다른 발견을 위한 출발의 대화. 그것을 위한 약간의 놀람과 침묵.
이야기를 들은 즉슨, 일본에서는 장례식장이 병원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한다.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죽은 자를 산 자 옆에 놓아두는 게 이상하다는 지적.
또 한 번의 반전.
결국 '에이, 재수없어'라는 전형적인 미신의 식상한 언어를 기대했던 나와 어긋나기, 이상한 배려와 포용을 교감한
사람들의 침묵.
죽은 자를 죽은 자 답게 예우할 수 있는 distance의 미학인가.
때마침, 지워졌던 내용이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세속적 영화,세속적 비평>에서 언급된 초월적 '거리'에 대한 것이었다.
글은 죽었지만, '인생'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