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안타까운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괜찮은 사람이었다가도,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통화. 참 싫다. 학벌에 대한 문제 또한 그렇다. 더 정확하게 범위를 좁혀보자면, 학벌을 둘러싼 무의식 같은 거다. 난 학부는 3류를 나왔어, 그래서 편입을 생각해. 혹은 좋은 네임 벨류의 대학원으로 가려 해. 이건 지난 번에 '죄인 게임'이란 글에서 간접적으로 언급을 했다. 내가 말하는 건, 3류라고 간주되는 대학을 나와서, 대학원은 사회가 속된 말로 '쳐주는 곳'을 나온 사람들의 불쑥 튀어나오는 피해의식 같은 거다.
난 사회에서 말하는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좋은 대학교를 나오진 못했다. 하지만 대학원은 -또, 사회에서 말하는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좋은 곳을 다닌다.(하지만, 이 '좋은 곳'의 의미와 범위는 과연 무엇일까?-'진부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갈치를 먹다 걸린 가시같은 질문이다) 그러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선배들이나 몇몇 지인들이 전화를 하면, 대뜸 난 묻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먼저 "선생이 좋아야 해. 대학원 이름이 좋은 게 다가 아니라구."란 말은 한다. 그러면서, "아, -예전에 다닌- '우리'대학에 대학원 있었으면 편히 다닐텐데."란 말로 친절하게 자신의 심리를 설명한다. 혹은 '결국 사회에서 쳐주는 건, 학부 학벌이더라구. 대학원 학벌이 아니더라.'는 말을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꺼내는 대학원 선,후배들이 있다. 왜 그런 말을 나만 만나면 먼저 하는 것일까. 나는 2년 전부터, 누적된 이런 경험에 신경질이 나서, 그냥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안타까운 풍경은, 대학원 내에서, 자신의 대학교 학벌이 좋지 않다는 것을 공부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짊어지고 가는 대학원 친구들이다. 간접적으로 많은 위로와 자신감 불어넣기를 해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를 타인을 통해 들을 때, 그 안타까움은 더해간다. 그러한 '결정주의'가 "난 솔직히, 이 대학원 온 거 그런 목적도 좀 있단다..'라는 말과 엮어질 때, 그 모호한 분위기는, 공부한다는 것의 외부와 내부는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 풀기 어려운, 현실과 이상의 고리와 벽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시선이 이른바 권력을 비판하고, 그것에 나는 좌파요와 진보요를 꼭 표시하거나 들먹거리는 친구들의 입에서 나올 때, 자신들이 다니던 옛 대학을 '지성의 온정적 향수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정체성, 그 정체성을 보존하는 교수들의 지성을 존중하는 것은 좋으나, 그 대학의 외부 현실에 대해서는,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대학 사회의 더러움으로 환원시킨다. 그 더러움 안에, 자신이 다녔던 학교는 좋은 선생이 가득하고, 다른 곳은 속물이 가득한 곳으로 인식하며, 지성의 정수를 훼손시키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몰아가는 의견들이 있다.
그런 이들 중 공부보다, 공부 외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교수들의 신상 캐기에 더 바쁜 것이 씁쓸하다. 그러면서, 자신 스스로 그러한 담론의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감옥 안에서 학문의 순수와 불순의 경계를 만들어버리려는 '의로움으로 포장된 것 같은 지적 분노'가 불편하다. 한편으론, 하나의 이슈를 꺼내면, 그 이슈에 이상한 지적 참조를 달면서, 자신은 열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투로 지적 전투에 임하는 친구들도 안타깝다.
그러면서, 공부가 좋아서, 선택한 곳으로서의 대학원은 이데올로기에 복속되고, 나는 그런 선택의 자유에 대해 늘 사회가 간주하는 현실 세태의 눈 안에서 분석된다. '좋은 대학원 가니 좀 나아진 게 있던가?'라는 호기심, 그리고 그 질문에서 새어 나오는, 전도된 학문 세계에 대한 비판 의식. 과잉된 분노가, 과장된 비난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진중권-되기'의 열망으로, 이름 알리기에 열심인 친구들도 있다. 텍스트에 무조건 정치라는 말을 넣기 좋아하고,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너무 '저널리즘적'으로 보려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깊이 있는 텍스트에 시의성의 개입을 시도하고, 그 텍스트를 쉽게 풀어쓰고, 타인에게 전달하고, 그 타인의 반응에 힘을 쏟는 친구들. 나는 그런 친구들이 대학원을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될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이건 내가 우석훈의 책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북 리뷰에서 '이름값 효과에 대한 단상'으로 돌아본 적이 있는 내 주위 현상이다.)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네 지도교수가 누구냐, 묻고. 아, 그 교수.. 그리고 이어지는 현황 공개와 분석. '잘 지내니'라는 말 뒤에 바로 나오는 그런 말들로 귓가를 따갑게 만드는 지인들의 안부 인사가 참 싫다.
편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 사람들을 제대로/깊이 안 만난 지 2년이 넘었다. 참고로, 2년은 내가 대학원을 다닌 기간이다.
학문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이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기간이기도 하다.
학벌과 학문을 섞어 만든 칵테일을 권하는 이들의 이름을 휴대폰에서 지운 기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