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아, 대학원이나 가볼까 주의자'였다. '아, 대학원이나 가볼까 주의자'들에게 붙은 단서는, '아심뽀까'(아,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와 같다. '심심한데~'라는 그 앞 말이 붙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대학원 안에 들어오면서 조금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내가 이렇게 공부라는 것을 좋아하는 놈이었나를 확인/점검하게 되었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을 보면(물론 나는 정말 모르는 놈이라는 것을 밝힌다) 질투심이 생기고, 내가 안 읽은 책을 누가 잡고 있으면, 슬그머니 눈으로 메모했다가 장바구니에 담거나 도서관에 들렸다. 그러다보니, 나에게는 공부에 대한 애정보다 '절박함'이라는 게 남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 '절박함'을 때론 분노와 함께 동여매고 산다. 직장다니는 사람들을 술자리에서 만나면, 그들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빠, 형, 뭐뭐야.. 공부할 때가 좋은 거에요.."라는 그 진부한 칭찬도 아니고 비하도 아닌 말들. 그 말을 몇 년 째 듣다보니 요즘엔 그런 자리도 잘 안나가게 되었다. 한편으론 '공부 좀 더 해볼까'라는 그 말을 ' 다니는 대학원 어때요?'라는 말과 함께 붙여 물어보는 사람을 나는 싫어했고 지금도 그렇다. 귀찮아서 대충 대중문화를 공부하고 있단다라고 하면, '재미있겠다'라고 웃으면서 '형 ,오빠 뭐 준비해야 되요?'라는 말들, '영어 점수 몇 점 이상이어야 해요?', 등등을 물어보며, 나를 일일 입시 강사로 만들어주는 이들의 대화. 나는 이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서, 그런 친구들의 이름이 휴대폰에 뜨면 전화도 일부러 안 받곤 한다.
친구와 함께 신촌의 모 카페를 들려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정장을 한 젊은 남자가 큰 노트북 가방을 들고 와서 혼자 팬케잌을 시켜 먹으며, 서핑을 하고 있더랬다. 나는 원래 공부하면서 사람 관찰을 잘 하는 편이라, 그 사람이 신경 쓰였다. 뭘 서핑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웃고 진지해지다가 그 사람은 전화를 받았다. 대화 중에 내가 유심히 들은 말.."나..지금 일 중이야...그러니까..가만 보자.." 나는 그 날 집에 와서 그 남자 생각을 했다. 그냥 인터넷 서핑하고 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나를 돌아보니, 그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갔다. 대낮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시간에, 서핑을 하고 있다는 그 말은, 분명 스스로의 이미지에 어떤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는 것 같다. 어느 낮 시간. 누워서 공부때문에 뭘 생각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으면, 모처럼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예민한 친구들은 첫 인사가 여보세요가 아니다. "너 잤지?' 그러면 나는 좀 죄인 취급 받는 기분이 들어서 약간 신경이 곤두선 채로, "아니야. 책보고 있었어"라는 말로 때운다. 책보고 있다는 말은 대학원생이라는 위치를 아는 친구들에게 그나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테니까.
대학원에 있으면 내가 '죄인-게임'이라고 부르는 대화를 동료들끼리 한다. 유감스럽게도 낮에도 밤에도 쓰고 읽는 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자폐적인 게임은 이상한 우울함과 쾌감을 준다. 우울함을 쾌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임인 것이다. "어제 내 친구한테 전화 왔는데. 증권회사에 취직했대. 그 친구 예전에 별로였는데..인생 참.." 그러면 나오는 후렴구는 "에효..나는 뭔지.."
카페에서 본 그 남자에게 낮은 강박적 시간이었을 것이다. 낮에 자신이 해야 할 행위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워야 할 어떤 업무들. 그 안에서 그 남자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카페에서 팬케잌을 먹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는 그 말을 '일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 '나 지금 바빠'라는 말로 감춘 채, 일말의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밑에 내가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닌 범주의 사람.그 안에서 공부는 잉여적 존재가 된다. '평생 공부'라는 말을 믿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살면서 많이 봐왔고, 지금도 보고 있지만, 그 말에 뜨거운 박수를 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입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팔자 좋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걸 많이 봐 왔다. 공부를 절박한 심정으로 하는 사람을 존경이라는 가식적인 포장 아래 잉여라는 외계인으로 취급하는 사회. 그 사회 안에서 전혀 느껴도 되지 않을 죄책감으로 공부와 일의 우열관계를 회한으로 따지고 살아가는 운명. 과연 우리 시대에 일이란 무엇이고, 공부란 무엇일까. 이 골치 아픈 생각들이 요즘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