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답답한 건, 읽고 싶은 책들이 알라딘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는데, 졸업논문때문에 참고 있다는 것. 그래서 늘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했다를 반복하는 게 벌써 몇 주 째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그동안 못 봤던 책을 담아, 결제 버튼을 눌렀다.
나는 언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을까. 좀 더 정확하게 짚어보면, 언제부터 책 '만지는 걸' 좋아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부산의 어느 동네에 조그만 서점에서 500원을 주고 룰루랄라 집으로 뛰어 가던 한 소년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양장점을 하시던 외할머니. 외손자가 심심할까봐, "뭐 하고 싶노?"물어보시면, "할매, 내 저기 대신서점 가서 만화책이나 하나 사볼란다"하고 조그만 손에 동전 몇 개를 받는다. 찍찍이 신발을 신고 전력질주. 서점 문을 열면 문 앞에 내가 좋아하는 코믹북스 시리즈가 차례대로 꽂혀 있다. "왔나?" 서점 아저씨의 친근한 짧은 인사. 당시 코믹북스는 내게 대중문화를 알 수 있게 만들어준 좋은 교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책 전체 내용보다, 책 앞에 몇 장 배치된 컬러판 화보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학년이 높아가니, 친구들 사이에서 "네 부르마 가슴 봤나?"라는 말이 자주 들려 왔다. <드래곤 볼>의 추억, 하지만 난 <드래곤 볼>보다, <권법소년>과 <쿵푸소년 용소야>를 더욱 좋아했다. 당시 작가 이름이 '전성기'였나? (갑자기 제목이 헷갈린다)
<권법소년>을 볼 때마다 신기했던 건,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맛일 것 같은 만화 속 식당 메뉴들. 특히 '카레라면'이라는 게 신기했다. (지금 이 라면이 슈퍼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면서 깔깔 웃어보는 이 기분이란) 그리고 화장실에서 분노의 용변을 보던 유도부 주장. 그 주장들은 꼭 열받은 티를 휴지를 한 속으로 팍 구기는 것으로 표시했다. '용소야'는 좀 순수했다고 할까. 자기 분야를 순수하게 정진하는 용소야의 모습이 착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한 관문, 한 관문 통과할 때마다, "내일은 해가 뜰거야"라며, 착하게 마무리하는 엔딩. 그러면서 점점 강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그러다가 갑자기 학습만화 붐이 불었다. 나도 그 붐에 쉽게 휩쓸렸다. 하얀 봉투를 만들어놓으니, 거기에 매일마다 꽂히는 '아이템풀'학습지.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가끔씩 구독 부록으로 나오는 위인전기 만화가 더 기다려졌다. 그리고 그 이후 만화를 좀처럼 보지 않았다가 밤을 새며 보게 된 것이, <슬램덩크>였다. 이 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외삼촌이 친구에게 빌려 온 약 서른 권의 만화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새벽잠 없는 외할머니에게 학교 가야하는 데 안 잔다고 시원하게 한 대 맞은 기억.
당분간 만화를 보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국어 책에 나오는 소설 읽는 재미에 빠졌다. 그러다 외삼촌의 유혹. 미스떼루의 <전략 삼국지 60권>. 이 책을 다 읽고 가슴이 떨렸다. 너무나 떨리는 기분으로 전자상가에 가서, 삼국지 팩을 사서, 밤새도록 화면 안에서 전략을 짰다. (하지만, 만화의 그 감흥은 구현할 수 없었다)
중학교 후반,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책 수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뭣도 보르고 산 책이 <GMV>와 <키노>였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