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봉지가 되고 싶습니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지 않고 넣어, 구멍이 뚫릴지라도 원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차라리 그 원망을 초월하여, 그저 그런 관용이 아닌, 초월적 관용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혹은 초월적 헌신의 삶을 살고 싶기도 합니다. 어두운 밤거리의 고독과 방황을 가득 담은 구토물이 저에게 담길지라도, 차라리 그 구토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제 안에 든 무엇이 더러워, 매만지길 두려워하더라도, 저는 검은 봉지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차라리 제 속이 비치는 하얀 봉지가 되어, 상처를 어리숙하고 조급한 동정의 시선으로 덮지 않고, 상처를 상처 그대로 인정하는 시선을 가지려 합니다. 

봉지를 통해 저는 '담김'과 '바라봄'을 사유하고 싶습니다. 담김은 과잉된 욕망의 '채움'을 벗어난, 새로운 차원으로서의 '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채우는 것'이 아닌, '타인'을 비움으로써 타인을 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타인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관계 그 자체'를 자유롭게 놓아두며 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비움의 자세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시각의 육질에서 조금 더 여유로이 저를 다스리면서, 모든 현상을 비움으로써 본질을 바라보려는 자세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봉지가 되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것보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고백할 수 있는 확언의 시간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저 봉지를 바라보는 두 사람처럼, '상상력'을 기꺼이 현실로 전유하려는 욕망에 벗어나, 상상력을 상상력의 영역에 고이 놓아두는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상을 상상에 놓아두기.   

그것은 곧 시각성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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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해엔 멋진 '봉지'로 거듭나시길!!^^ 새해 복 많이많이 만들어요.

얼그레이효과 2009-12-2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롱씨도 행복한 대학원 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2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엔 공부가 더 수월해지시기를 빕니다 ^^

얼그레이효과 2009-12-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올해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알게 모르게 블로그 들어가서 글들 보고 좋은 생각들 공유하고 있답니다. 내년엔 따스한 기억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