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순수한 것일까요. 난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깨끗한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순수함'이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겠지요. 저에게 공부를 하면서 갖게 되는 순수함이란, 공부를 많이 하고 그것을 통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나누는 삶을 뜻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지성의 의지를 확보하는 것도 포함되구요. 대학원이라는 것에 대해 사실 그리 영악하게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주 깨끗한 놈이라는 것은 아니구요. 뭐랄까요. 그래도 희망은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름 방학 때부터 찾아온 슬럼프는 그 희망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하게 만드네요.  

그 어떤 일이든 그렇겠지만, 대학원은 '야심'이 있어야 인정받는 곳입니다. 사실 아주 겸손한 미소로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는, 그 미소를 한 꺼풀 벗겨보면 다 남모를 이유가 숨겨져 있을거에요. 지성과 친절함의 관계에 대한 불순함, 그것에 대한 의심은 일찍이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바가 있지요. 뭐 꼬치꼬치 사람을 험담하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공부와 인간 관계 속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친구들의 넋두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 괴로움 속에서 '타인지향형'의 공부 태도를 발견하게 되죠. 또, 그런 것을 과도하게 어떤 전략화된 형태로 보여주는 듯한 이들이 계속 너스레를 떨 때마다, 괴로움들은 우리들만의 '뒷담화'가 되는 것이 사실이구요. 

"아 떨려..어떡해. (드디어 내가 교수 A의 프로젝트를 맡았어)" 그러면서 그 교수랑 내가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을 티내려고 컴퓨터를 끄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훤히 공유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 현실적으로 대학원에서 '지적 경쟁'이라는 것은 그리 순수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닐테고. 제가 그리 오랜 대학원 생활은 안해봤지만, 대학원은 분명 고인 물이 썩어 지린내가 나는 곳이 맞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너무 영악해져서, 그 지린내를 "아이 달다~"하고 연기하며 버티어내죠.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말이죠.  

지성이 정말 나를 키워줄거라는 사람들에게 대학원은 '인정 투쟁'이란 장애물을 선사합니다. 당신이 조용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라인'에서 부터 시작하는 그 호들갑스러운 '과시적 태도'의 소비들에 몸서리를 칠지 몰라요. 그리고 공부라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안 좋은 방향으로 파고드는 괴물로 변해있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종종 제 지인들은 이런 대학원의 모순을 알고, 이 대학원을 탈출하고자 자신의 인생이 <트루먼 쇼>의 결말처럼 되길 희망하며, 노를 저어요.(사실 그러면서 탈출하려고 하는 이 대학원으로 언젠가 다시 돌아올것 같다는 모호한 희망 아닌 희망을 품고 살면서 말이죠) 

'키친 타올 심부름'을 시키고, '미용실 예약'을 부탁하는 교수들의 뒷처리를 위한 예민지수가 이제 몸에 베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대학원 동료들의 모습을 들어볼 때마다, 저는 '야인'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 주부터 용기를 내어 대학원 측에 터무니 없는 등록금 항목에 대한 항의를 시작했습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성의 없는 답변이 나왔지만, 그리고 그것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는 동료들이 너무나 많은 것에 아쉬움 금할 길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모순을 내버려두지 않기. 공부한다는 것에 희망을 걸기. 그리고 공부를 내 삶에 스며들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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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9-1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한 교수님이 재밌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께서 재직중인 대학은 아직도 등록금이 130만원이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다들 궁금해서 물었는데, 지방 국립대의 경우 - 서울 소재 국립대도 마찬가지긴 합니다 - 매년 5%씩 올리다보니 80년대 몇십만원 하던 등록금이 매년 올라도 얼마 안 오른다는거죠. 몇만원 정도. 반면, 사립대는 똑같이 매년 5%를 올려도 수십만원씩 올라가게 되니, 지금처럼 거의 5-6배의 차이가 나는거라고요. 우리는 '5%'라는 동일한 수치에 속아버린겁니다. 사립대학은 부지값으로 돈을 모으기만 하지 학생들을 위해 쓰지는 않습니다. -_-

얼그레이효과 2009-09-1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 때부터 [교육투쟁]을 해왔던 사람인지라,,아프락사스 님의 덧글을 읽고 다시 한 번 한국 대학의 모순에 대하여..느끼게 되는군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