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저분한 연구실을 때로는 아무말 없이, 때로는 한 숨과 함께 청소해주시던 할머니께서 내가 있는 대학원을 떠난지 한 달이 지났다. 할머니께서 떠난 이유는 단 하나, '고령'이었다. 할머니가 떠나기 전, 나의 손을 잡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할 때, 나는 웃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방패막으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하지만, 그것은 '변호'를 가장한, 이럴 때면 등장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무기력함과의 조우다. 나는 대학원 게시판에 할머니가 왜 일을 그만두셔야 하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려다가, 행여 글 속의 선의가 할머니를 괴롭힐 수도 있을 것 같아, 교수님에게 메일을 드렸다. 교수님이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제자의 선의를 늘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나의 스승의 조그만 배려가 고마웠다. 나는 그 배려를 통해 할머니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 많은 연세임에도, 꿋꿋하고 명랑하게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았고, 용역 단체의 이유모를 압박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12시는 점심 시간의 시작을 알린다. 그것보다 조금 늦게 구수한 음식 냄새가 화장실 옆 작은 방에서 나올 때면, 나는 할머니께서 이제 식사를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연구실로 향했었다. 할머니가 떠나기 전, 할머니가 계시던 좁은 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할머니의 송별회를 열어주고 있었다. 짭쪼름한 음식들과 시골 기운이 가득 풍기는 상다리 모양의 밥상, 그리고 할머니들의 수다. 그것은 이색적인 풍경이 아닌, 뭔가 보존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떠났다. 밤을 새고 나면 연구실을 맴도는 '아저씨'냄새를 뚫고, 주섬주섬 쓰레기통을 비우시는 할머니, '귀차니즘'으로 인해 분리수거가 되지 않아 폭식 상태가 된 대학원 쓰레기통을 희미한 신음 소리로 새벽부터 치우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유난히 '할머니'에게 약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쌀쌀한 풍경 속에서 쌩뚱맞게 철 지난 군고구마를 먹고 싶다. 온갖 언어들이 횡행하는 이 대학원 건물 속에서, 그리 큰 재미는 없다. 큰 감동도 없다. 상당히 심심하고, 어찌보면 유약한 기운마저 흐르는 이 공간 속에서, 가장 강건한 사람은 나도 내 동료 연구자도 교수들도 아닌 할머니, 그 할머니의 지속된 배려였다. 할머니, 잘 계시죠? 이 인사는 할머니의 온기를 박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성의 온기를 체험하겠다고 온 나의 결심을 다시 매만지는 고백 그 이상의 작은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