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를 리뷰해주세요
피드 feed
M. T. 앤더슨 지음, 조현업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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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꽤 오래 전에 보았던 '엑시스텐즈'라는 영화가 기억났다. 척추에 뚫은 구멍에 생체 게임기인 '엑시스텐즈'를 연결해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미래사회가 배경인 영화로, 나중에는 게임이 현실을 점점 지배해 들어와 게이머들이 자신의 본성을 잃게 되는 줄거리였다. 조금은 구역질나고 현실성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어쩌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책에서 그린 미래사회의 모습은 영화보다 더욱 구체적이다. 사람의 뇌가 피드라는 중앙컴퓨터에 연결되어 쉴새없이 정보를 주고 받는 책 속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본다. 컴퓨터가 뇌에 심어져 있는 셈이니 학생들은 더이상 암기를 위해 죽도록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은 있을 것이나, 누구나 판에 박히고 일괄적인 정보를 제공받게 되면서 인간의 자율성은 빛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쉴 새없이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문구와 정보를 듣고 보지 않을 권리조차 없는 세상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그 모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뇌에 피드를 심긴 했어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자율적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던 바이올렛은 피드의 고장으로 생명의 위협에 처한다. 중앙에서는 피드가 보내준 정보를 무시하고 독자적 행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바이올렛을 무료로 치료해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결국 중앙에서 바라는 인간상이 아니었던 바이올렛이 버림을 받은 셈이다. 남자친구인 타이터스조차 한때 바이올렛을 마음 속에서 버리려고 했었다. 외로운 바이올렛의 허무한 죽음은 어두운 미래를 상징하며, 동시에 결코 이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금성과 목성을 여행할 수 있는 미래사회가 언뜻 손에 잡히지 않아 책으로의 몰입을 방해하긴 했다. 내용의 세부적 전개도 그다지 친절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미디어에 의해 조종되는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만큼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사회는 먼 미래의 이야기만도 아닌 듯하다. 방송과 신문의 논조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내용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어디 미래만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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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를 리뷰해주세요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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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어울리는 제목인 '기담 수집가'는 단편의 형태를 띤 장편소설이다. 에비스 하지메가 기담을 수집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내면서, 그 광고를 보고 찾아온 7명의 사람들이 각기 자신이 체험한 기담을 털어놓는 구성이다. 하지메의 조수인 히사카는 괴담을 논리력 있게 분석하여 범인을 찾아냄으로써 본래 기담이 갖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반면에 새로운 반전의 재미를 준다. 이 점이 이 소설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기담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하지메가 사는 스트로베리 힐을 찾아가 하지메와 히사카의 첫 인상을 묘사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여러 사람들이 때를 달리 하여 동일한 장소에서 하자메로부터 명함을 받고 히사카의 중성적이고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비슷한 내용이지만, 그 장면들이 별로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 것은 작가가 이 부분에 뚜렷한 차별성을 두려는 의도로 하지메와 히사카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출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인 '자기 그림자에 찔린 남자'을 읽을 때에는 아직 히사카의 추리실력을 몰랐던 까닭에, 기담 자체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사건의 결말을 궁금해했었다. 그래서 기담을 기담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히사카의 추리를 처음 접하고는 비약이 심한 것이 아니었나 의심도 했었만, 이렇게 한 편을 읽고 구성을 안 다음에는 기담보다도 히사카의 추리를 기대하며 읽게 된다.

'거울 속에 사는 소녀'는 일본 색채가 많이 느껴지는 내용으로서 역시 히사카의 추리가 주는 반전이 나름 흥미로웠다. '사라져버린 물빛 망토'에서는 조금 산만한 느낌을 받았고, '겨울 장미의 비밀'은 내용 자체는 밋밋했으나 범죄의 의도가 잔인해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전개가 치밀하다거나 결말이 궁금해지는 긴박성의 정도는 약한 편이다.  단지, 구전으로 전수되는 구수한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어딘가 미묘하고 약간은 잔혹한 설정이 오감을 짜릿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다. 그래서인지 읽고 난 후 내가 읽은 내용이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 상황, 즉 머리에 저장되지 못한 필름을 순식간에 감상하고 만 느낌이 난다. 책을 읽으며 한나절을 즐기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겠지만, 끝이 조금 허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 에비스 하지메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이라 하니, 일본인들이 읽기엔 또다른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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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를 리뷰해주세요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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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종로의 한 대형서점의 매대에서 책들을 구경하다 우연히 잡은 것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미 영화화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소설을 앞에 두고, 그간 작품보다는 사생활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던 까닭에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듯 관심사에서 밀려나 있었던 공지영의 작품세계에 오랜만에 빠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점의 한 귀퉁이에 앉아 '한번 읽어볼까"로 시작했던 한가했던 오후는 그만 눈물바람과 들썩이는 감정으로 인해 혼란스럽게 변해버렸고, 남의 일에 불과했던 사형제도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번의 파장을 몰고 오리라 기대했던 '도가니'는 이미 'daum'이란 사이트에서 팬들의 성원 하에 연재를 마쳤지만, 매주 글을 챙겨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라 책으로 출간되기만을 기다려왔던 작품이다. 공지영이 이 작품을 구상했던 동기는 어린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 재판의 풍경을 그린 신문기사였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사건에 대한 짤막한 기사를 접했던 적이 있었다. 언제나 성폭력 사건의 관대한 형량에는 혀를 찼었고, 이것이 정말 대부분의 판사가 남성들인 까닭에 내려지는 현실감 없는 판결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그럼 그렇지'와 같은 자조적 반응으로 넘겨버리고 말았다.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죄질이 나쁜 범행이기에 더욱 높은 형량이 선고되어야 한다는 일반적 상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 내용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픽션인지는 모르겠다. 단, 이 소설 역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처럼 작가가 해당 사건의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을 만나 조사하고 탐구한 끝에 나온 작품으로, 세부적 줄거리가 실제 사건과 다를 수는 있어도 사건의 본질은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분노하지 않고서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다. 그들이 추악한 범죄를 저질러서만이 아니다. 그들의 큰 죄악을 감쪽같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이 사회의 시스템과,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편 가르기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돈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못난 가난이 불쌍해서 울게 된다. 

생각해 보면, 강인호의 모습은 우리 모습을 대변한다. 가정을 책임지고 이끄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세상 일에 적당히 분노하고 타협하며 살아왔지만 눈 앞에 목도한 불의를 보고는 강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재하고 있는 사람,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받은 개인적 상처까지 무릅쓰고 나가기에는 힘에 부쳐 집 안으로 숨어버린 달팽이 같은 존재.
혹자는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강인호를 보고 패배자의 수치를 느끼거나 결국 힘과 돈 앞에 지고 만 진실이란 존재 앞에서 무력함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유진의 말대로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폭력 앞에서 울분만 삼키던 아이들은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고, 여러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보다 나은 환경에서 배움을 계속할 수 있게 된 성과도 올렸다. 

모든 것은 서서히 진행된다.
사회를 책임지고 잘 이끌어나가야 할 명망있는 인사들이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 설켜 철벽의 성 안에서 그들만의 범죄와 봐주기가 지속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과 체념, 그로 인한 무관심이다. 하지만, 강인호와 같이 약자와 정의의 편에서 불의에 맞설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 우리 사회의 희망은 죽지 않고 살아 조금씩 더 나은 사회로 보이지 않는 바퀴를 굴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 공지영이 이 소설을 씀으로써 사건의 진실에 좀더 다가서게 했고 우리를 깨어있게 한 것처럼.
작가이건 기자이건 펜을 든 사람은 시대의식까지 함께 느껴야 한다. 크게 소리지르지 않고서도 많은 이들의 생각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가는 그래서 숭고한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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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사랑>을 리뷰해주세요
헤세의 사랑 -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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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나 발표해던 글에서 발췌한 사랑과 행복,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줄 정도의 짧은 글에서부터 몇 쪽에 걸친 내용까지 길이는 다양하나, 원본 중에서 일부분을 실었다는 공통점은 같다. 큰 작품 안에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내용이므로, 전후사정을 모른 상태로 접해야 하는 것이 아쉽긴 하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류의 책을 일부러 즐기고 찾았던 때도 있긴 했는데, 아마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짧은 문장 하나를 곱씹어보면서 의미를 유추하고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에 인용하던 풋풋한 시절이었다. 지금보다는 감성이 훨씬 풍부한 때여서인지 마음에 와닿는 문장 하나를 갖고도 많은 사연을 뽑아낼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데미안'이란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헤세의 글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섬세한 글이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속독은 금물이며 문장 하나하나를 정성껏 읽어야 작품의 진국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헤세가 전하는 사랑과 행복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역시 선한 내용이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가만히 음미해보면 모두 고개가 끄덕여질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이 우리가 고통과 인내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게르트루트> 중에서 - 

- 인간은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행복을 오랫동안 견디지는 못합니다. <1946년의 신년 인사> 중에서 -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끼고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사랑에 대한 깊은 조예를 품고 있는 헤세의 생각은 그가 남긴 편지글의 여기저기에 남아 전수되고 있다. 편지의 생활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많은 편지글들은 요즘처럼 특별한 볼일이 있어야 편지를 보내는 삭막한 세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함축된 의미를 담아 헤세라는 인물을 나타내준다.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현대에서 헤세의 글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도 있겠으나, 굳이 그의 활동무대였던 19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기지 않더라도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헤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사랑과 행복을 추구했던 그 순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회상이 주는 편안함을 이 책으로 만날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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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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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세계여행을 다녀본 것이 분명했다. 경험 없이 단순조사나 자료만으로 많은 나라들의 섬세한 특징과 풍광을 이 정도로 잘 그려낼 수는 없었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저자 후기에 '팝툰'과 웹진 '문장'의 도움이 있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지원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덕분에 많은 경비가 드는 세계여행을 352일 동안 지속하며 글을 쓸 수 있었던 게다. 

그런데, 살짝 드는 배신감은 뭘까? 그렇다. 소설을 만족할 만한 감정으로 읽지 못했었는데, 그 이유가 여행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소갈머리 좁은 생각이 들어서다. 유석과 쇼타가 '야마 자화상'을 찾기 위해 많은 나라를 거친 것은 작품의 개연성에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저자의 여행길을 따라 돈 것이구나 하는 허탈함,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돌아서 간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소설을 써보지 못한 입장에서 작가마다 어떤 고심의 과정을 거쳐 창작물을 내놓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글이 뭔가 정리되자 않고 앞뒤 개연성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다고 느껴졌던 건 여행과 글쓰기의 두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내기에 벅찬 인간의 한계 같은 것이 아닐지.

천재 화가가 남긴 유작, 아버지의 흔적과 비밀에 쌓인 자화상을 찾아 길을 떠난 아들이란 제법 흥미로운 요소들과 함께 시작됐지만, 이따금씩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내용 전개에 푹 빠져들거나 공감하지 못해서였다. 군데군데 번뜩이는 작가의 기지나 미술분야에 대한 조예 같은 것은 충분히 존경스럽긴 했다. 그러나, 전체적 관점에서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일관적인 힘과 내용의 자연스러운 이어짐 같은 요소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로드 무비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표지, 흥미로운 도입부가 기대감을 품게 해서인지 읽을수록 아쉬움이 들었던 까닭에 적극적인 독서가 되지 못했고, 유석과 쇼타가 가는 대로 터벅터벅 따라다니다가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서 결말을 지켜보는 구경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456페이지에 예술을 정의해놓은 글은 꽤나 공감이 갔다. 현실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말부터 모든 예술가들은 어린아이가 되려고 예술을 한다는 내용을 읽을 때에는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권리. 79년생이니 작가로서는 젊은 나이다. 갖고 있는 글재주에 삶의 여러 경험이 더해져 좀더 다듬어진 내면의 글, 감동을 주는 글을 들고 나올 수 있으리라 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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