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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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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나라가 한창 영토다툼을 벌이고 있었던 삼국시대에 이미 화려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폼페이.
"하나의 도시를 완전무결하게 보전하는 방법으로 도시를 화산재로 덮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어느 학자의 말은 얼핏 잔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폼페이는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간에 로마제국의 찬란한 문명을 후세에 남겨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폼페이'는 화산 폭발 이틀 전인 8월 22일부터 마지막날인 25일까지의 나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간 벌어졌던 많은 일들이 고작 나흘간에 일어났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급박하게 돌아갔던 상황이었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이라는 흥미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생생했던 것은 각 등장인물의 성격이었다. 인물마다 사실적이고 실감나게 그려져 마치 내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 바라보듯, 소설을 실감나게 만들어주었다.

주인공인 아틸리우스는 조상 대대로 수도교 기술자로 일해온 가문의 태생이다. 성품이 곧고 바르되 남의 일에 나서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코렐리아 집안의 일에 끼어들게 되면서, 평소부터 지니고 있던 정의감과 코렐리우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아틸리우스를 한결 더 용감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던 것 같다.
코렐리아는 당당하고 용감하다. 혈연에 묶여 운명이라 체념할만도 한 상황에서조차 부패하고 잔인한 아버지에게 맞서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로마시대에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들에 비해 눈에 띄게 낮았지만, 아버지의 기밀서류를 훔쳐 말 한 필과 함께 도주할 만큼 거침없던 여성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정하다. 아버지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될 집안 노예를 돕기 위해 제일처럼 발벗고 나섰다가 아틸리우스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노예출신이었다가 거부가 된 암플리아투스는 오래전 지진으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을 때 임자 없어진 땅에 집을 지어 팔면서 큰돈을 모았다. 이런 부정직한 행위 뒷면에는 항상 그렇듯이 관리에게 주는 뇌물, 결탁이란 것이 존재했다. 우리 사회에도 파헤쳐보면 속속 들어날 만한 전형적인 인물이다.
플리니우스는 나폴리만의 해군 제독으로 재임했던 실존 인물이다. 책에서처럼 '박물지'를 집필했었고, 화산 폭발때 현지에서 죽은 것도 사실이다.
그 밖에도 명예를 탐하며 시기하는 인물과, 후세에게 전해질 도서들을 생명보다 더 중히 여겼던 여인 등 톡톡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책 속에서 숨을 쉰다.

먼 옛날, 많은 사람들의 꿈과 생명을 고스란히 묻어둔 폼페이는 1500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는, 번성했던 도시가 화산재에 파묻혀 오랜 세월 후에 발굴되었다는 놀라운 사건에 대한 그간의 호기심을 넘어서서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당시로 한발짝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세간에서 말하듯이 오만한 자들에게 내리는 형벌이라는 시각보다는 살아 숨쉬던 인간상과 애환 속으로 다가가 폼페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이제는 화면 속에서 폼페이를 만나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생과 이별을 하게 된 그들에게는 먼 훗날 미래의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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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위대한 왕'을 읽으며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분명 이런 줄거리의 만화를 본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밤, 길을 걷다 호랑이와 마주친 사내는 용기를 내어 호랑이를 응시한다. 도전적이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눈빛은 호랑이를 압도했고, 호랑이는 조용히 한곁으로 길을 비킨다. 긴장감이 넘치는 위험 속에서도 당당한 자세를 지키는 사내와, 맹수이면서도 상대의 인성을 꿰뚫어보며 본능을 자제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었다. 그리고 마지막, 높은 산꼭대기에 잠자듯이 누워있는 호랑이를 그 사내는 찾아간다. 그리고 통곡했던 것 같다. 유독 그 두 장면만이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는 만화...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원작을 완역한 책이다.

이 이야기는 광활한 만주의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러시아 작가가 쓴 작품이며, 문체가 아름답고 유려하다.
--어린 새싹들이 회색과 암갈색 풍경 위로 에메랄드빛 음표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야생 벚나무와 사과나무들이 곗곡과 산비탈에서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얀 은방울꽃도 어둡고 깊은 숲 속에서 봉오리를 터뜨렸다. 크리스털처럼 맑은 숲의 공기가 땅이 내뿜는 온갖 개화의 향기로 가득 찼다. (p 20)--
이렇게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는 생생한 문장으로 시작하니, 청명한 공기 속에서 새벽 안개와 함께 파릇파릇 생명력을 자랑하는 식물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져서 책의 내용 속으로 빠져들게끔 준비 완료 자세가 갖춰졌다.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삽화도 펜으로 그린 듯 섬세하게 이야기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 내용을 살려준다.

훗날 왕으로 불리게 되는 주인공은 한국의 호랑이로, 왕이 어미의 뱃속에서 탄생되는 순간부터 내용이 시작된다. 왕과 여동생의 어린 두 남매를 먹이고 보호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산책을 시키는 등의 어미의 행동은 구체적이고 흥미롭게 나타나있다. 주변에 호랑이가 있음을 알아챈 인간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새끼를 하나씩 물어 다른 곳으로 운반하기도 한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살아있는 오소리를 동굴로 가져와 산 먹이를 잡는 법을 교육시키는데, 죽음을 감지하고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오소리와 새끼호랑이들의 싸움이 긴박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밖의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 멧돼지들의 우두머리로 통했던 '갈라진 귀'는 한번의 실수로 무리로부터 멸시당한다. 모두가 '갈라진 귀'를 따돌리는 새에 어느덧 젊은 멧돼지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자 늙은 멧돼지는 혼자만의 길을 나선다. 마치 사람들의 세계와도 같은 멧돼지 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겁없이 펼쳐지는 다람쥐와 담비와의 싸움 장면도 참 흥미롭다. 다람쥐를 쫓다 분에 차 씩씩대는 성질을 호랑이 앞에서도 죽이지 못하는 담비를 재미있어하며, 오히려 나무 위 작은 동물들을 부러워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진실하고도 소박한 권세자 같았다.

이 책에서는 '위대한 왕'의 생애와 동시에 인간들의 개발로 황폐해져 가는 산림과 동물들의 분노를 다룬다. 엄격한 먹이사슬의 위계질서 하에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던 동물들은, 다른 생명체는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들의 오만한 개발로 아파하고 신음한다.
--예전에 이 자유로운 황무지의 초록 언덕에는 순록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살았지만, 이제는 금속으로 만든 번쩍이는 날쌘 용이 끊임없는 굉음을 내며 굴러다녔다. 용은 긴 철로를 따라 거대한 꼬리를 뒤에 끌고 다녔다. 고막을 찢을 듯 삑삑거리는 용의 소리는 숲의 신성한 평화를 깨뜨렸고, 타이가의 모든 야생생물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미로 같은 산과 깊숙한 숲 속으로 도망쳤다.(p170)--

 인간이 만든 총이라는 무기로 속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산 꼭대기에 가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위대한 왕의 모습은 이 책이 쓰여진 당시의 정치적 의미, 즉 구미열강 앞에서 쇠락하는 아시아 민족들의 위기로 보여질 수도 있다. 당시의 일본인들은 인간의 새로운 개발로 위대했던 호랑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침략의 당위성 인정으로 해석하며 환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겐 오직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동물들의 터전이 앗아지는 비극을 보여주어, 지구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닌 생명체를 가진 모두라는 시각이 느껴진다. 책이 준 감동과 의미가 충분히 깊어 굳이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고집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세밀한 묘사로 숲 속 동물들의 세계를 여과없이 보여준 이 책은 기대하지 않았다가 뜻밖의 수확을 거둔 듯한 기쁜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많은 책들 속에서도 특별히 아끼는 보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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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 그림자 1
매튜 펄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에드거 앨런 포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읽기 전부터 기대를 잔뜩 했던 작품이다. 게다가 작가는 '단테 클럽'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매튜 펄이라니!
이 책이 아니면 에드거 앨런 포가 그처럼 젊은 나이에 객지에서 비명횡사하듯이 저세상에 갔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뻔 했다. 명망있던 작가의 느닷없는 죽음에 대한 밝혀지지 않은 사실로 한발짝씩 다가가는 설정은, 소설을 넘어서서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의 궁금증으로도 번져갔다.

유복한 집안, 아름다운 약혼녀, 보장된 직업 등 현생활에 아쉬운 점이 없던 클라크는 우연히 애드거 앨런 포의 장례식을 목격하고 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헤이티조차 포의 죽음의 비밀을 알아내는 의미있는 작업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자신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일에 전적으로 몸을 내던지기란 매우 어렵다는 걸 우리는 살아오면서 알고 있다. 클라크는 소설 속에서 이처럼 자신이 소유하던 것을 잃으면서까지 오직 열정으로 한우물을 파는 인물로 나온다. 정의를 추구하는 젊음의 패기가 느껴져,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은 든든하고도 믿음직했다.

포의 작품에 등장하는 뒤팽이란 실제 인물을 놓고, 뒤퐁트인지 뒤팽 남작인지 읽는 중에도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비교적 쉽게 뒤퐁트가 뒤팽이라 결론을 내리는 클라크를 보고, 의외로 뒤퐁트가 아닐 것이라는 가정을 머리 속에 심으며 소설의 내용이 뒤집어지는 반전을 기다렸다.

사실 1권의 초반부를 지나면서부터 내용이 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포의 죽음이 궁금한 현실적 이유로 허겁지겁 소설의 내용을 따라갔지만, 기대하던 추리소설로서의 재미에는 못미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매튜 펄이라는 작가에게 이미 마음 속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은 까닭일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2권에서 클라크는 뒤퐁트가 뒤팽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단순하게 보이던 뒤퐁트란 인물은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건을 조종해왔던 것이다. 그간의 의미없어보이던 행동도 면밀히 계산되어 이루어진 것이란 걸 알게 되면서 뒤퐁트의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다시 재미가 붙기 시작한다. 게다가 나폴레옹 집안 사람들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한결 복잡하게 얽혀 간다.

끝에서 피터가 헤이티와 파혼하면서 클라크를 성심껏 도와주는 설정은 매우 흐뭇했다. 친한 친구의 배신에서 오는 실망감이 은근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퐁트가 클라크에게 사건의 전모를 설명해주는 법정에서의 상황은 좀 억지스러웠다. 재판 중에 모두 몰려나가 고모님과 둘만 남게 된다거나, 뒤퐁트로부터 그 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법정에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다. 실제 사건에 대한 조사를 근거로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지만, 조금씩 보이는 헛점들이 소설 속으로의 완전 몰입을 방해했던 것 같다.

실화가 배경인 소설이므로 실제 인물들의 이름도 많이 거론된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책속에 나왔던 실존 유명인사들에 대한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소설 속의 내용이 깨끗이 정리되는 깔끔한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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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 풀빛 청소년 문학 4
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김라합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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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6학년인 딸아이가 이책을 먼저 읽고 난 반응이 남다르다.
"엄마, 이거 내가 봐도 되는 책 맞아?"
"왜? 청소년 소설 맞는데."
"왜 여행을 떠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맨 뒤가 좀 그래."하며 얼굴이 붉어진다.
순간 뭔가를 눈치채고 "야하니?"라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큰 고갯짓이 이어진다.
풀빛의 청소년 소설이 야할 리가 없는데, 이상해서 읽어본 소설.
아하! 그것은 테레제와 얀의 키스에 대한 묘사 때문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나와 여러 충돌을 빚고 있는 딸아이지만, 아직 청소년의 마음이 아니라 어린이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거였다. 그 키스는 세상에 대한 테레제의 한발짝 접근이 받아들여짐을 상징하는 것과도 같았는데, 아이에겐 아직 키스는 키스일 뿐이었다.

중학교 시절, 하이틴 시리즈라 불리던 그 또래의 성장소설류를 일부러 찾아 재미있게 읽던 기억이 난다. 그 또래만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담고 있던 소설을 읽으며 동질감과 두근거림을 느끼던 때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또래가 된 딸아이를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14살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테레제는 장애가 있는 언니 이레네, 엄마, 아빠와 함께 단촐한 가족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까닭없는 불안함과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 탓인지 신의 존재에 대해 알고 싶어하며 세상의 종말이 올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또한 외모에 대한 두드러진 관심으로 약간 넓은 이마에도 잔신경이 쓰이게 되고, 목사님의 아들인 얀에게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엄마 아빠의 이혼 소식은 테레제를 큰 혼란 속으로 빠뜨리며 의지할 대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테레제에게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과도 같은 선고였던 것이다. 테레제의 주위엔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그옛날 딸아이의 교통사고에 대한 아픈 기억을 안고 계셔서 어딘지 모르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할아버지와, 장애를 갖고 있는 언니 이레네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땐 괴성 지르기와 물건 던지기를 예사로 하는 언니지만, 툭툭 던지는 말에서는 이미 삶의 진리를 터득한 것 같다.
"배고픈 물고기만이 건강한 물고기거든."
"물고기들은 우리가 쳐다보든 말든 상관없이 언제나 거기에 있어."
배고픈 물고기는 배를 채우기 위해 물 속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이를 잡으려고 부지런히 노력한다. 테레제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스스로 속이 허한 배고픈 물고기였기에 세상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했다.

테레제는 믿음직한 친구 얀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게 되는데, 이것은 허전한 마음을 채울 대상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얀과 함께 '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할 12가지'의 목록을 만들고, 그중 세 번째에 해당하던 '꿈에 그리던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를 당장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주말에 로마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한다. 발칙하게도 아버지의 카드번호를 외워 결제한 비행기표와 숙박비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커다란 잘못이지만, 테레제는 잠깐 빌린다고 생각할 뿐이다. 당차고 실천력이 강한 테레제이기에 후에 아르바이트 등의 수단으로 아버지의 돈을 꼭 갚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로마로의 여행.
주말동안의 여행이지만 테레제에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삶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과 도전, 계획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을 보여준다.

물론, 인생을 이끌어줄 방향타는 필요하다. 여기서는 이혼으로 정신적 상처를 받고 계신 부모님이 아니라, 다소 퉁명스러워보이지만 이해력이 풍부한 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해주신다. 서슴없이 얀에게 키스를 하라고 코치하신 걸 보면, 할아버지는 사고가 행동을 지배하지만 때로는 행동이 머뭇거리는 사고를 끌어당겨 세우기도 한다는 것을 아셨나보다. 

이제 시작이다. 테레제는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용기를 내었고, 그것이 받아들여짐을 보았다. 부모님의 이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끝나지 않았으며, 언젠가 세상이 진실로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길을 따라 힘차게 도약할 테레제의 훗날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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