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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미로
엠마 캠벨 웹스터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8월
평점 :
'오만과 편견'을 읽은 지도 한참이 지나 줄거리도 가물가물해져버렸지만, 기억과 상관없이 제인 오스틴에 대한 호감도는 줄어들 줄 모른다. 게다가 얼마 전에 '제인 오스틴 북클럽'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머지 작품들을 읽고 싶은 갈망이 더해지고 있다. 일단 '이성과 감성'은 구입해 두었는데, 그전에 잠깐 샛길로 빠지듯이 읽게 된 것이 이 책이다.
잡지같은 곳에서 'yes를 택했으면 5번으로 가세요' 따위의 미로 퀴즈를 풀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형식은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질문과 함께 줄거리 전개도 조금씩 이루어지므로, 선택한 것에 따라 전혀 다른 줄거리와 결론이 도출된다. 뿐만 아니라, 재능, 두뇌, 자신감, 인맥, 행운의 다섯 가지 범주에 점수를 매기게 되어 있는데, 어떤 줄거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이 다섯 범주의 점수가 정해진다. 이 점수는 중간중간 메모해야 하는 귀찮음에 비해서 활용도가 높지 못하다. 그저 끝부분에 가서 일정 점수 이상인 경우와 이하인 경우에 따라 두 갈래 길 중 한 곳으로 가는 선택을 할 때에 필요하다. 사실 나는 총 5단계의 관문 중에서 2단계에서 막혀버려 허무한 줄거리의 끝을 볼 뻔 했지만, 내 마음대로의 선택 되돌리기로 다른 길 찾기를 여러 번 해서야 겨우 다아시 씨와의 결혼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최근에 '오만과 편견'에 이어 '이성과 감성'을 해치워버린 딸아이는 이 책을 받고 굉장히 신나하면서 읽었다. 연습장에 점수를 기록해가며 즐겁게 읽으며 "재미있다!"를 연발하는 걸 보고, 나 또한 기대하며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낯선 형식에 적응이 안되어서인지 그다지 끌리는 점이 없었고, 딸아이와 나의 나이 차이가 참 크다는것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했다. 원작을 변형하고 확산시키더라도 나름대로의 철학과 기준이 있기를 바랐는데, 일단은 점수를 더하고 빼는 내용이 너무 장난스러웠다.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저자이건만, 그 줄거리에 따라 점수를 빼고 더해야 하니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때로 줄거리를 잘못 선택했을 때에 너무 황당한 내용이 전개되는 곳도 있어 저자가 이 책을 재미로 즐기며 쓴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굳이 장점을 들자면, 각각의 상황에서 선택한 결정에 대해 얘기하는 저자의 코멘트를 읽으면서 '이런 결정을 이렇게 이해하는구나, 이런 점이 나의 반응과 다르구나' 따위의 여러 생각을 하는 중에 저자와 대화하는 기분이 든 것, 그게 좀 신선했다면 신선했다. 나의 감정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소 내 결정이 이상없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깨우침을 얻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의미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난 원작을 읽는 편이 훨씬 좋다. 게임식으로 줄거리를 즐기고 싶을 때에는 이 책에 구미가 당길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간섭 없이 푹 빠져 몰입하는 세상의 맛은 그 어떤 것도 따를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