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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애완조 잉꼬 한 마리가 우리 식구가 된 지도 1년이 넘었다. 깃털도 제대로 안난 것을 데려와 수저로 이유식을 떠먹여가며 키운 아이라 정이 남다르다. 집에 사람이 없으면 밥도 안먹고 기다리는 녀석 때문에 외출했다가도 허겁지겁 돌아가기 일쑤이지만, 어깨 위에서 눈맞추고 무엇인가 의사 전달을 하려 할 때마다 서로 못알아듣는 말을 대화하듯이 한참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미가 톡톡하다. 이유식을 떼면 새장에서 키우려 했던 계획은 새장이 감옥이라는 듯이 항의의 눈빛으로 꽥꽥대는 눈빛을 마주할 수 없어 포기했는데, 안셀마 역시 새장을 준비하고서도 밖에서 키우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전철을 밟았을지도 모르겠다.
안셀마는 전직 여선생님이면서 미망인이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삶은 겉에서 보면 평화롭지만, 내면은 상처투성이였다. 누구나 그랬듯이 젊은 시절의 안셀마는 미래에 대한 기대심과 밝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 절친한 친구 루이지타와 우정을 나누며 예술과 정신의 세계를 탐구하던 추억을 갖고 있는 것이 다행일 뿐, 그 이후의 삶은 그녀를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거짓을 알고 나서 다시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던 안셀마의 여린 영혼은 스스로가 판단한 가치에 엄격하여 변덕스러운 타협을 불허한다. 이익을 위한 말과 행동의 바꿈 없이 스스로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곧은 의지는 주변의 압박으로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기보다는 선생님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쪽을 선택하게 했다.
안셀마의 지식과 손주들 역시 그녀를 실망시켰다. 자식과 며느리는 안셀마의 집을 탐내고 요양원으로 데려가고 싶어하면서도, 진실로 어머니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손주들은 안셀마가 성의껏 준비하여 보여준 장난감들을 고물로 취급할 만큼 메마르고 물질적이며 버릇이 없는데, 이런 점을 걱정할 때마다 자식들은 세대차이로 간주해 버린다.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발견한 앵무새 루이지토는 이런 안셀마의 삶에 사랑을 전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느낌으로 의사 전달이 가능했다. 화려한 깃털의 색처럼 삶의 무지개가 되어 다가온 루이지토는 안셀마의 삶을 흔들어놓았고, 오래 전의 감정이었던 사랑을 되찾게 해준다. 안셀마는 오랜만에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열며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 오가는 정과 행복을 기억하는데 성공했고, 자리만 차지하던 전축은 그녀가 좋아하던 나폴리 민요의 선율을 내보내느라 바빠졌다.
현대 사회에서 이웃이란 어떤 존재일까? 안셀마의 이웃에게 그녀는 자신의 생활에 소음을 불러 일으키는 귀찮은 대상이었다. 그 이웃의 신고로 야생동물 보호센터로 보내진 루이지토는 자신의 깃털을 부리로 뽑으며 몸부림친다. 루이지토가 쓰레기통에 있었던 것은 이전 주인의 버림 때문이었을 게다. 새로운 주인 안셀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벌거숭이가 된 루이지토의 모습과 그런 루이지토를 조우하고 느꼈을 안셀마의 비통함은 내 일처럼 파고들어 착잡해졌다.
그러나, 무지개의 상징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작가의 마음 때문일까? 무지개 너머에 희망이 있다던 보호소 관리인의 딸 덕분일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무지개 너머의 희망을 기억하게 된 안셀마의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색깔을 잃어도 안셀마에게만은 여전히 무지개 조각이었던 루이지토가 파닥파닥 날아와 그녀의 품에 안겼다. 둘 사이엔 긴 말이 필요없었다. "구, 구, 구"라는 말에 "구, 구"로 답변하면서 흘린 뜨거운 눈물이 다시는 잃지 않을 소중한 존재를 찾은 기쁨을 전해주었다. 그 둘의 모습은 물질이 세상을 판단하는 척도가 아니라, 사랑만이 해답이며 진정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그대로 가슴에 박혀 지금도 일정 간격의 진동을 울려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