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무한은 제로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내가 해야 할 어떤 것이나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치가 있으려면

내가 가질 예정이거나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이,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어야

불능과 결핍이 있어야 존재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하는 선택의 문제가 없다면

가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고로 무한히 있는 것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극과 극은 통한다.

 

결국 무한은 제로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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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것을 다 욕망하게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부끄러운가?

그런 세태를 욕하며 대붕(大鵬)을 타고

만리(萬里)를 난다 한들 무에 그리 자랑일까?

 

타인의 탈속(脫俗)을 내 것 인양

소요유(逍遙遊)하는 여린 자아를 보듬으려

숨죽인 채 살아야만 한다면

참 한심한 세상이로세.


그러니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로 사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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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시절 시속 30km만 넘어도 덜덜 떨리다가

익숙해지면 광란의 질주도 불사한다.

 

초보 때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주의력의

거의 100%를 운전 조작에 할애하는 반면에

고수가 되면 주변 환경에 거의 100%의 주의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건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이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건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길이가 더 길어짐을 의미한다.

 

이렇듯 익숙함이란 내가 별다른 주의와 힘을 들이지 않고

거의 자동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수준과 같은 말이다.

우리 뇌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최소의 노력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건 최고의 효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함이란 달성하고자 한 목표의 도착점임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낯설고 서투른 것이 익숙해졌다면 이미 터득한 것이다. 목표를 이뤘다.

 

그러나 익숙함에 계속 머물고 있다면 안주하고 있는 것이니 다시 출발 해야 한다.

익숙함을 다시 낯선 것으로 바꾸고 다시 새로운 익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이지 않을까?

 

성공이란 기회비용에 다름 아니다.

성공은 교환이다. 시간의 교환이다.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놀 시간과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의 교환이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과

추운 겨울 찬바람과 싸우며 달리기를 하는 시간의 교환이다.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한나절의 시간도 쾌락을 안겨주지만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는 봉사의 시간은

다른 종류의 쾌락을 제공할 것이다.

주관적 가치 있는 시간과 가치 없는 시간의 교환이다.

내게 필요한 시간과 필요 없는 시간의 교환이다.

 

, 시간은 등가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유흥을 즐기는 서너 시간은 내일에도 같은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일 시험을 위해 오늘 공부하는 몇 시간은

결과에 따라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성공의 종류와 삶의 방식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걸 얻는 방식은 늘 동일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똑같이 내게 부여된 시간의 교환을 어떻게 하는가이다.

 

성공은 익숙함으로의 전진과 시간의 교환이다.

성공은 익숙함에 얼마나 근접했느냐와

시간을 무엇과 교환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 내가 성공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제자리거나 퇴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지금 내가 무엇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시간을 어디에 쏟고 있는지 계산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질구레하고 의례적인 일상으로 하루가 꽉 차 있다면

내일도 그저 그렇게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고

어떤 시간과 다른 어떤 시간을 바꿀 것인지

그 가치와 무게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고민한 만큼 나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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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어머니가 자그마한 화단에 피어있는 꽃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아휴! 진달래가 폈네. 어쩌면 이리 고울까!”

어머니는 쪼그려 앉아 자그마하고 소담스레 핀 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연신 탄성을 발한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아들이 웃으며 말한다.

어머니. 작년에도 피었고 그전에도 피었던 꽃인데 뭘 그리 처음 보신 것처럼

그러셔요?” 매년 보시잖아요.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미소로 바라보며 말한다.

얘야, 이건 작년에 피었던 그 진달래가 아니란다. 그게 보이면 늙은 것이고

똑같아 보인다면 아직 젊은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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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리잔이다.

 

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조금만 부주의하면 깨져버리는

약하디약한 유리잔

 

바닥에 떨어져도 깨지고, 어딘가에 부딪혀도 깨지고, 다른 잔에 부딪혀도 깨지고

심지어 같은 유리잔과 부딪혀도 깨지고 마는 유리잔이다.

 

어쩌면 마치 깨지려고, 깨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다.

왜 난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레스잔처럼 강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유리잔은 한없이 그들이 부러웠다. 그에게 강함이란 결국 생명의 길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옆자리에 대충 여러 개로 포개져 있던 밥그릇이 말을 건넨다.

유리잔아 내 꼴을 봐라. 난 사기그릇이라 잘 깨지진 않지만

너처럼 이쁘진 않단다. 그저 밥이나 담고 말지.

 

아무도 우리에게 다른 걸 요구하진 않는단다.

그렇지만 넌 뭔가 우리보다 더 특별해 보여.

넌 파티 같이 특별한 날에만 등장하잖아

먼저 투명한 유리잔은 내용물이 훤히 보이기에 좋잖아.

아름다운 색깔의 음료를 담고 있는 유리잔의 영롱함이란 얼마나 환상적인가

 

또 잔을 부딪칠 때 쨍! 하고 울리는 소리가 좋아서 건배용으로 좋고

유리잔 특유의 얇으며 차가운 감촉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

또 유리잔이 주는 다양한 디자인의 예술적 자태도 장점이잖아.

 

밥그릇의 말을 들은 유리잔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내가 비록 약하지만 좋은 점도 많아

저 밥그릇은 튼튼하지만 그저 밥만 담고 말잖아.

난 특별한 존재야.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날 찾잖아

 

유리잔은 평생 한탄만 했던 자신의 인생에도 특별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

삶에 대한 욕구가 불끈 치솟았다.

 

그래,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난 특별한 유리잔이야

유리잔은 새삼 자신의 삶을 다시 새롭게 보기 시작했고

비관으로 일관했던 과거를 잊고 앞으로 행복할 날만 꿈꾸었다.

 

그러던 며칠 후 유리잔은 평생을 노심초사 그렇게 조심했건만

결국 안주인의 부주의로 깨지고 만다.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린 유리잔 조각의 눈에 

저 멀리 밥그릇이 혀를 차는 게 보였다.

그게 유리잔 조각이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세상이었다.

 

 

유리잔만이 가지는 존재의 의미가 충분하기에

약하지만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유리잔은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고 이뻐서 살아남은 것이다.

 

나는 유리잔이다.

약하게 태어났고 언제 깨져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위태한 인생이지만

그 특유의 감성과 미적 자태로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담고 있는

그래서 특별한 날에 사람들이 사랑하는 유리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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