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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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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일단 곤경에 빠지면 간단히 그 고상한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전향해버리는 예가 역사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면 베네치아인의 집요함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자기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당위로서 생각해낸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라고 썼다. 


주인공 정찬우가 고난에도 올곧은 삶을 살아갔고, 책에 나온 열혈 공산주의자들이 수용소에서는 동료를 억압하고 반공주의로 변신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정찬우의 소망은 “우리 민족이 강대하였더라면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으로 양단되는 서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토가 두 동강이로 나누어진 이 약소민족의 처지가 저로 하여금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법무관과의 대화에서 볼 수 잇는 것처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민족통일이고, 그 하나를 위해서 만주로, 북한으로 건너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할 것인가를 새기며 살아온 삶은 우리 현대사 비극의 증인이 된 것이다. 

아까운 인재가 분단으로 사라져갔고, 이 같은 이들이 어디 정찬우 뿐이겠는가하는 한탄이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이들의 행적과 이루지 못한 꿈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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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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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처음 가본 제주도는 중국인들이 많고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이 생긴 관광지의 겉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이제 제주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을 통해서<순이삼춘>을 읽은 적이 있는데, 4.3 사건의 비극을 소설에서 처음 알게 됐다.

재일 동포중에 제주도 출신이 많은데, 4.3 사건 후에 일본으로 밀항해서 살 길을 찾은 경우들이다. 

2000년 초에 현기영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보안사에 끌려 았을 때 조사관이“ 해병대 제대했네. 해병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육군 많이 때렸지” 라는 말을 하면서 유머 속에서 강연을 했다.

폭도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병대를 자원하거나, 제주도에 주재중인 북한 출신 군인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안정망을 구축하려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4.3 제주도를 그린 단편들과 신문사 기자가 여공들의 살아있는 현실을 쓴 기사는 부장에게 컷 당하고, 사표 내고 나온 후 번역 일을 하는 당시의 시대상, 제주도 출신들의 고단한 서울 살이를 엿 볼 수 있는 단편들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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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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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빨간 책방에 나와서 웃음을 선사했던 이기호 작가의 소설은  읽을 중에는 웃지만 다 읽은 후에는 가슴이 찡하게 상념에 잠기게 한다. 

일어날 일은 아무튼 일어나고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라 구조를 바꿀 수는 없어서 개인의 선택은 무의미한 것인가? 라는 질문과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1980년 광주가 없었더라면, 김재규가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박정희가 교사일에 만족했다면 교장을 하면서 은퇴했겠지 라는 상상을 해본다. 갈림길에서의 작은 선택이 소시민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아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누아르의 핵심 서사란 무엇인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우연히 휘말린 한 사람이, 그로 인해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마저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누아르의 기본 뼈대 아니던가? 전두환 장군은 독재자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가 독재자가 되어버렸다.


나복만의 인생은 어떠한가. 그래서 그는 수배자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우연히 휘말려 택시 시기사라는 정체성을 타의에 박탈당하고 우연과 조작이 겹쳐서 간첩이 되어버렸다. 


나복만이 고문속에서 감추고 싶던 것은 문맹이었으며, 어눌했던 그가 취조 속에서 단련되어 도망친게 아닐까. 이것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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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 임철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3
임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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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결코 지난날들을 잊어서는 안 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기억해. 기억해야만 해. ……하지만 친구야. 그 기억 때문에 부디 네 영혼을 피 흘리게 하지는 마.”


현재의 일을 생각할 때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보면서 유츄한다. 미래를 예측할 때도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비교한다. 이처럼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 삼아 현재를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이루어갈 능력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 소설에 나온 보도연맹 학살 사건, 제주 4.3 사건, 1980년 광주, 베트남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등을 흘러간 세월호 간주하고나 남의 고통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모순들을 되짚어 거울로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시대는 누구나 그랬고, 모두가 나빴던 것이라고 변명한다면 이는 누구도 나쁘지 않았다는 말과도 통한다. 죄가 있다, 없다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가, 무엇을 추궁할 것인가, 잊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소설 연재 중 더러 주변에서 내게 말했다. 또 그 얘기냐고. 요즘 같은 세상에 해묵은 역사, 지나간 사건에 왜 그리 집착하느냐고. 그때마다 어설픈 웃음으로 혼자 삼켜버리곤 했던 그 대답을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아니다. 당신이 말하는 해묵은 역사니 지나간 사건 따위를 나는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난 단지 사람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죽은 자와 아직 살아있는 자. 그들의 이름 없는 숱한 시간들을, 사랑과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나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저자는 후기에서 망각과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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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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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에서 목소리만 듣던 권여선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다 읽고 난 후에 오랜만에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단편 소설집이었다. 

동사서독에서 취생몽사(醉生夢死) 라는 술이 나온다. 마시면 기억을 잊는다는 술.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것은 기억력 때문이다. 술을 안마시는 나로서는 술은 잊기 위해 마시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주할 수  없기에 잊을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권여선의 책을 읽으면서 술을 마시는 다른 이유는 삶을 버티기 위해서 마시는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버텨내는 고통도 있듯이  버틸 수 없는 고통도 있다.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고통에는 위로도 필요하겠지만 지켜 봐 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된 후에도 영경은 여전히 수환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했다. 영경은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다른 환자들의 병실 문을 함부로 열고 돌아다녔다. 요양원 사람들은 수환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연락 두절인 영경에게 품었던 단단한 적의가 푹 끓인 무처럼 물러져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뀐 것을 느꼈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끔 영경의 눈앞엔 조숙한 소년 같기도 하고 쫓기는 짐승 같기도 한, 놀란 듯하면서도 긴장된 두개의 눈동자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종우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그러느냐고 거듭 묻는데도 영경은 오랜 시간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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