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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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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I thought of the drive back, late at night, along the starlit river to this rickety antique New England hotel on a shoreline that I hoped would remind us both of the bay of B., and of Van Gogh's starry nights, and of the night I joined him on the rock and kissed him on the neck, and of the last night when we walked together on the coast road, sensing we'd run out of last-minute miracles to put off his leaving.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불빛 비치는 강을 따라 강가에 위치한 곧 무너질 듯한 뉴잉글랜드의 호텔로 돌아가는 야간 드라이브가 곧 무너질 듯한 우리 모두에게 B의 만을 떠올리게 해 주기를, 밤에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가서 그의 목에 키스한 일, 그가 떠나야 하는 시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감지하며 함께 해안 도로를 걷던 일을 떠올리개 해 주기를.

> 원서에 있던, 반 고흐의 별이빛나는밤에는 안보인다.  

원서의 영어는 간단해서(영어 공부를 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의역을 해서 번역자가 문장을 추가한 것들이 종종 보이던데, 읽기에 수월하게 할라교 하는 의도 같은데, 문장을 번역안한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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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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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에 대한 교훈이면서 미래에 대한 계시가 될 것이다” (526쪽)에서  문학이 역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문학은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사는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상대의 생각에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의견의 차이를 넘어 화합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남자는여자의, 현대에 산다면 과거의, 카톨릭이라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 책을 잡는 동안은 가능하다.   


이 책은 이슬람이 들어오고, 파키스탄과 갈라진 인도 역사와, 델리, 케랄라, 구자라트 등 인도 도시를 탐방하고 키슈미르 분쟁속에서 지정학적 면을 탐방할 수 있게 해주는 네비게이트 역할을 한다. 


2009년에 델리에서 시작해 뭄바이, 고아까지 40일간의 인도 여행을 하면서 마날리의 추위와 고아의 더위, 사크교, 이슬람교, 힌두교, 카톨릭 교 등 문화의 다양성이 공존하지만 지성인들과 밑바닥 인생, 부자외 가난한 차들의 격차와 그 속에서 신뢰와 의심이 서로 바뀌는 경험을 하고 왔다. 이것이 인도의 매력같다.  

인도에서는 종교와 카스트 제도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는 그것을 반영한다. 소설은 현실을 비추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장면속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스쳐갔던 작은것들을 돌아보게 해준다. 

그들의 문제는 불명료함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건 현대 지정학의 언어 바깥에 존재하는 끔찍한 명료함에 가까웠다. 분쟁의 각 진영에 속한 모든 주역들은, 특히 우리는, 이 단층선을 무자비하게 이용했다. 이 단층선은 완벽한 전쟁-결코 승리하거나 패할 수 없는 전쟁, 끝이 없는 전쟁-에 제격이었다.

간디의 암살로 촉발된 시크교도 학살, 구자라트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 학살 등 힌두 민족주의는 불만 붙이면 타오를듯하다. 가난에 지친 대중들에게 힌두 민족주의는 뭉치게 하면서 타자를 베재한다. 차별하기 위해서 차이를 발견하도,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동질성을 확인한다.   


틸로는 거친 바다 위의 종이배 같았다.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우리 나라의 빈민들조차, 비록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을지언정, 가족은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녀의 배는 가라앉히 전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와 안줌같은 히즈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시작과 결말에서 맞물린다. 


그녀가 아는 유일한 언어인 우르두어에서는 모든 것이, 생명을 지닌 것들만이 아니라 모든 것-양탄자, 옷 , 책, 펜, 악기까지-이 성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남성 아니면 여성이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아기 만 빼고, 물론 그녀는 자신의 아기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히즈라. 사실 그런 단어가 두 개 있었다. 히즈라와 킨나르. 하지만 단어 구 개로 언어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틸라가 길에서 주운 아이를 안줌의 집으로 데려가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큰 강을 이룬다.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벽이 되면서 아기인 미스제빈 2세를 보호하는듯 하다. 자족은 주어지기도 하지만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아기를 통해서 연대하면서 각자의 삶을 확장하고 통합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본다.

이 소설이 뛰어난 점은 안줌이 이슬람 가족의 히즈라에서 출발해서, 카슈미르, 하층 카스트 등 그 사회의 내 공동체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결하면서  소수자나 약자가 또다른 소수자나 약자를 괴롭히면서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는 대중들의 모습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껴안는다.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인 지복의 성자 사르마드는 존재를 규정할 수 없는 자들, 신자들 속의 신성 모독자들, 신성모독자들 속의 신자의 위안이고, 이 책의 주제 같다.   


우리는 카슈미르 이야기도 조금 나눴지만 추상적인 대화만 오갔다. 
“결국 자네들이 옳을지도 몰라.” 내가 부엌에서 그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이길 수는 없을 거야.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근사한 로간 조시 냄새가 올라오는 냄비를 저으며 미소 딘 얼굴로 대꾸했다. “결국 우리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르지만, 우린 벌써 이겼어.”

이슬람 가족에서 태어난 안줌이 가출해서 히즈라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정세성을 확인하고, 사암이나 틸라 같은 상처받은 이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인도의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로 중심을 비추면서 연대와 희망을 보여준다.  


“폭동도 우리 내부에 있어. 전쟁도 우리 내부에 있고. 인도 파키스탄 전쟁도 우리 내부에 있어. 그리고 그것을은 절대로 해결이 안 돼. 해결됄 수가 없으니까.”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 인도를 보고 있지만 책을 덮은 후에는 우리 역사를 보고, 사회를 볼 생각하게 됐다.  


나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쓸거리가 많은 세련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카슈미르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세련되지 못하다. 훌륭한 문학이 되기엔 너무 유혈이 낭자하다. 
문제1: 그것은 왜 세련되지 못한가? 
문제2: 훌륭한 문학에 허용되는 피의 양은 얼마인가?

눈앞의 진실리 복잡해도 거짓괄과 증오를 외면하면 폭력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르럴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양의 피를 먹고 자란 훌륭한 문학은 현실에서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 그렇다라는 답을 이 책은 아프지만 따뜻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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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샤니 보얀주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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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읽은 이스라엘 소설인데 문장들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보이던데., 역자 해설을 보니 히브리어-영어 중역본이 아니라 저자가 영어로 쓴 걸 번역한 책이라고 한다.  

 

읽다가 의아한 문장들이 보인다.

 

토머가 그날 밤 방어벽에 가져온 신문에는 어머니에 의해 살해된 소녀에 관한 기사였다. 그 소녀는 북부에 있는 어느 마을의 이스라엘계 아랍인이었는데 두 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중 한 명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고, 그녀의 격정이 참착되었다.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226쪽

명예살인을 하는 건 아립인들이고, 문맥을 파악해보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계 이스라엘 인의 오역 같다.

 

이츠라크 라빈은 또 총리에 당선되었으나 그를 증오하는 이스라엘계 유대인에게 암살당했다.
380쪽

 

라빈은 극우파 유대인에게 암살당했는데 이 문장도 마찬가지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세 사는건 당연한듯. 이건 저자가 영어로  쓰다보니 표현을 잘못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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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생활의 즐거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 옮김 / 리수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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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도 이건 나하고 생각이 다른것도 있지만  지금봐도 고개를 끄덕일 장면들이 많이 보여서 고전은 언제나 읽어도 깨달음을 준다는것을 느낀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신문을 읽지 않은듯

신문은 문명화된 세계에서 그날그날 가족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비슷합니다. 신문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불길한 고독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역사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과거의 역사를 개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라고 한다.  

 

좋은 기억력이란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선택 기억이든, 합리적 기억이든 본질은 ‘연계’입니다. 관련이 있는 것들 사이에서 개인의 연상력이 작용하고, 머릿속에 하나의 질서가 새롭게 생성되는 창의성이 핵심입니다.

 

일본 서점 츠타야는 책 배치를 획기적으로 배치했다. 카테고리로 나누어진 책들을 관련된 주제로 새롭게 분류한 것. 예를 들면 프랑스 여행을 간다면  프랑스 가이드북, 미술책, 역사책 등도 함께 넣어서 돌아다니지 않고 한번에 볼 수 있게 한 것이고 직원들의 책에 대한 숙련도가 요구되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츠타야가 떠올랐다.  츠타야가 위탁 경영 맡은 일본 사가현 도서관도 이런 식으로 책을 배치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많이 배워서입니다. 얕은 깊이로 너무 많은 학문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젊은이들이 잡학에 몰두했는지 저자는 집중해서 한 우물을 팔것을 주문하는데, 인터넷에는 정보가 넘치지만 전문화에 몰두해서 교양을 쌓는데는 게으른 현대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듯 생각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이고, 떠 오른 나라는 일본인들이다. 일본인들의 삶과 비슷한 점들이 많아서.

  

지적 생활을 위해서 지적 생활은 동경이 아닌 각오에서 출발하고. 육체를 단련하고 목표를 정해서 나아가고 덕을 쌓아가면 지적 생활의 완결점에 도달할 것이다. 

저자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은 편하지만 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충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넘어갈것은 넘어가면 지적 생활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이스라엘의 어느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하는 노동에서 얻어진 기쁨보다 값진 것은 없다. 노동의 기쁨은 신의 축복이며, 인간의 본분이다.”

이스라엘 건국이1948년인데 원문에는 유대철학라고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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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동물농장 - 스노볼의 귀환
존 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천년의상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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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에서 사라졌던 스노볼이 돌아왔다. 나폴레옹이 인간을 몰아내고 다스리는 동물농장이 보여주는 것은 환멸과 절망이었다. 동물농장은 소련을,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스노볼이 돌아온 후 동물농장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변화한다. 농장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들은 철의 장막속에 있는 소련의 지도자들, 이슬람 테러리스트 들은 다양하다.   

동물농장을 이끄는 리더와 철학은 바뀌었지만 권력을 향한 욕망은 변하지 않았고,  공존보다는 경쟁을 선택했고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은 대립과 반목 끝에 테러라는 부메랑을 맞는다.  타집단과 갈등끝에 다른 존재를 차별하고,  싸우고, 소수지만 관용을 실천하는  이데올로기 투쟁 같은 현상들은 역사 속에서 늘 되풀이된다.

끝없이 진보하면 상황은 나아질까?  눈에 보이는 빌딩, 컴퓨터 같은 하드웨어는 진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지만 성찰 없고 올라가기만 하는 진보는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편리하지만  어리석음도 함께 얻지 않는가.  

공산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 다양한 해결책이 등장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속에서 미완성으로 남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해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연대의 힘이다.  각자도생 보다는 연민을 가지고 이웃들과 손잡고 타인들과 연대 하면서 공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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