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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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도 한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 너머로 뻗어가는 지평에 수많은 문장과 생각과 감정이 흩어졌다가 모이면 또하나의 작은 길이 되어가는 상상은, 언제나 두려울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만 나를 볼 수 있듯이 카메라는 밖을 찍을 수 있지만 카메라 자신을 찍을 수는 없다. 카메라가 자기 자신을 찍을 수 없듯이 ‘나’라는 주체는 ‘나’를 인식할 수 없다. 남을 찍을 때야 존재하는 카메라처럼 나는 타자가 인식하는 나를 알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자리를 매김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타인의 삶을 통해서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우리 시대의 아픔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 비주류의 삶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기억되기를 바란다. 기억을 되새겨주는 매개체와 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다짐이 만날 때 창처는 치유되고 화해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문장이 빠진 그들의 결여된 이야기를 지붕 위로 펼쳐지는 별들의 수신호처럼 상상의 영역에서 해독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신념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 개인은 세계에 앞서고,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억압할 수 없다.   


 “구호품 트럭의 피격으로 사망한 노먼 마이어와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그의 어머니 알마 마이어를 통해 역사의 폭력에 맞서는 개인의 가치 있는 용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존자고,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가 인생에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내 삶에서 재현해주자는 다짐이었죠. 쓰레기 같은 전쟁에서 죽을 뻔했던 여성을 살린 그 일을 말이에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 보다시피 나도 이제 늙었어요. 더 늙기 전에, 나는 그가 했던 방식으로 그의 역사를 기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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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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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조선이었다. 송파강은 날마다 부풀었다. 물비늘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칸은 답답했다. 저처럼 외지고 오목한 나라에 어여쁘고 단정한 삶의 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기를 쓰고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됨으로써 멀리 있는 황제를 기어이 불러들이는 까닭을 칸은 알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조선 군대는 단 한 번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대처를 지날 때도 관아와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조선의 누런 개들이 낯선 행군대열을 향해 짖어 댈 뿐이었다. 도성과 강토를 다 비워 놓고 군신이 언 강 위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산성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달아나겠다는 것인지, 지키겠다는 것인지 내주겠다는 것인지, 버티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한국인들은 분열하고 있다., 우리 경 중국경제에 종속될 정도로 비중이 높았질때부터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하는 지도층의 무능에 한탄한다.

지난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명청교체기의 병자호란과 대한제국이 중국과 일본, 미국, 러시아 사이에서 어설픈 처신 끝에 나라는 기울었고 국민들은 고난을 겪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어떤 길을 갈것인가, 자기의 안위인가, 민중들의 고통인가 선택의 순간에서 판단이 중요하다. 위기 앞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조율을 하는 것도 위정자의 능력이고, 그런 위기 자체를 가져오지 않는것이 더 큰 책임이다. 


너는 명을 아비로 섬겨, 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 말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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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1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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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끼는 거대 군수기업 미쯔비시三菱의 자본 아래 놓여 있는 항구도시였다. 이 나가사끼로부터 18.5킬러미터 떨어진 섬 타까시마高島에서는 일본 최대의 해저탄광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쯔비시 타까시마탄광이 성업 중이었다. 다시 이 섬에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 하시마端島였다. 이 무인도에서 석탄이 채굴되면서, 물로 풀도 나무도 없이 오직 채탄시설과 광부 숙소만으로 뒤덮인 곳이 미쯔비시광업 하시마탄광이었다. 맨 위에 서 있는 신사를 중심으로 섬 전체를 둘러싼 드높은 방파제 때문에 하시마는 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아서 사람들은 하시마라는 이름 대신 군함도라고 불렀다.


원자폭탄 피해 지역으로만 알고 있던 나가카시를 가봤지만 군함도의 존재는 몰랐다. 소설 군함도를 만나면서 하시마를 알게 되었고, 영화 군함도 덕분에 묻혀 있던 소설이 각광을 받는 현실은, 문화 매체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보여준다.

잔혹함은 부당한 죽음, 비인간적 죽음 처럼 학살 피해자의 숫자가 아니라 폭력성에서 드러난다. 일제의 수탈과 강제징용의 피해는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소설을 통해서 구체적인 울림으로 다가왔다. 소설의 장점은 일본은 악이고 우리의 피해만 그리고 있는 게 아니라 일본 사람들 중에서 선한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것을 함께 보여주고 국가폭력에 대항해서 민중들의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쟁의 초기에는 일본노동연맹과 부라꾸민 해방운동을 벌여온 인권단체 수평사의 도움이 있었지만, 이건 조선인의 폭동이라는 시각이 퍼지면서 3주 만에 쟁의는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석은 승도의 이야기에서 어떤 길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사람, 단체와 단체가 하나로 뭉치는 연대였다. 힘을 모으는 것. 나뭇가지도 하나씩은 부러지지만 묶여서 한아름이 되면 불에 탈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다.
하나같이 어두운 소식들이었지만 우석은 승도가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무엇을 느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세상에 나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이 거기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나에게는 꿈꾸는 내일이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깨우쳐야 한다.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과거를 알려는 것은 분노하려는 목적 만은 아니다. 과거에서 배우고, 기억하고 화해를 함으로써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 한걸음 내딛어야 하겠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과 마주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군함도라는 징용이라는 과거는 모르고 나가사키를 원폭의 피해도시로만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베트남 전쟁 등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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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8
한수산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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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한수산 두 분은 베스트셀러들을 많이 냈지만 통속작가라는 낮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제야 비평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어린 시절에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서커스단이 공연하러 오는 걸 본 적 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라서 책을 읽으며 옛 생각이 났고 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어서 반가왔다. 

부초는 책에 나오는 “불행한 운명의 밭에서 자란 한 포기 잡초이기에 화려한 꽃은 없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고 끈길기게 살아내기는 했던 것을” 이라는 떠도는 잡초처럼 살아간다는 부초처럼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소설에서 사당패는 살아남았지만 서커스는 사라지는 현실을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졌는냐의 차이였다. 

“사당패들에게야 쌍놈들 억울한 가슴을 풀어주던 저항의식 같은게 있으니까.”

“서민인 관객과 얼마나 호흡을 함께 하느냐가 바로 그 연희演戱에 민중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의미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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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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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하면 연상되는 것은 해학 이었다. 맛깔나는 문장 속에서 냉소가 아니라 웃음이 피어나는 문장들을 만나는 재미로 그의 소설들을 읽었다.

『투명인간』은 일제 시대부터 글곡진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갈등하고 살아가야 했는지를 눈물나게 보여주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만수들은 국가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투명인간처럼 살아왔지만 누구도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만수같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모여서 역사가 되고 사회가 발전하는데 거대한 빌딩숲과 편리함 속에서 투명인간을 외면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은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투명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행복해하는 투명인간 가족이 다리 너머에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투명인간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픔도 슬픔도 없이 모두가 평등한.”


베트남 전쟁 파병, 연탄가스에 중독된 누나, 웃기는 장면이긴 하지만 교통 단속 의경과 경찰의 모습 등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모습들이 스쳐간다.


행복은 성적 순으로 매겨지고 부는 상위 일 퍼센트가 독점하며 권력은 세습된다. 정경유착, 금권언(金權言) 유착, 초국적 기업, 신정주의(神政主義), 광신적 테러가 그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나 혼자 깨끗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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