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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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에서는 만보산 사건으로 화교들이 학살당했고, 중국에서는 민생단 사건으로 조선인들이 죽었다. 서로의 오해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비극이었다.   

이런 일들이 지금이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강자에게 압박을 받으면 같은 약자끼리 싸우는 현실은 지금도 여전하다.

프락치가 무서운 것은 정보가 새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을 믿지 못해서 의심하고, 분열끝에 죽이고, 결국에는 살아남은 자들도 상처받는 점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그동안 막연하게 알았던 민생단 사건을 피부로 와닿게 한다. 민생단 사건이라는 뼈대에 감정이라는 살을 넣었다. 이것이 소설이 힘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보려고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보여주는 세계에서 상상하고 느끼기 위해서 소설을 읽고 생각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이들의 대화는 이들이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죽어갔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소설에서는 이념과 민족, 사랑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기쁨과 울분, 아쉬움을 전해준다.     

 

“하지만 나는 톨스토이를 버렸소. 설득과 타협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상 세계를 만들겠다는 중학 시절의 드높았던 포부를 버렸소. 가족과 애인과 개인적 미래를 다 버렸소. 그 대가로 나는 진실에 눈뜨게 됐소. 진실이란 전혀 아름답지 않지. 그런 추한 것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진실을 보게된다오. 그리하여 이 세계가 너무나 잔혹한 곳이라는 것을, 그 잔혹함마저도 기실은 진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잔혹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받아들이게 됐소.”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오. 그게 힘이라오. 물론 나 역시 사람을 죽인 뒤에 톨스토이의 책을 버렸소. 결국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오. 톨스토이가 10월 혁명을 목격했더라면 어떤 책을 썼을 것 같으오? 그는 세계 속에서 투쟁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대한 대서사시를 썼을 것이오. 인도주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지만, 그래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변화하는 인간의 힘을 믿겠지만,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만은 톨스토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내가 민생단 간첩으로 오해받아 죽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가 진리라면 인도주의 역시 개개인에게는 잔혹함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도, 분노도 없소. 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분노할 뿐이오. 인간은 진리 속에 있을 때만이 인간일 뿐이오. 그리고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끝없이 변화할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내가 죽음으로써 세계가 조금 변화한다면 그 이상 아쉬움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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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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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로 읽는 김언수의 장편소설이다. 

 

구암(狗巖)의 건달들은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
부산이라는 이 세계적인 항구 도시에는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 숫자만큼이나 건달이 즐비 하고, 건달들은 개나 소나 양복을 입는다. 알다시피 건달이란 인간들은 처자식 밥은 굶겨도 자기 양복은 빳빳하게 다려 입고, 점심값이 없어 하루종일 밥을 쫄쫄 굶을지언정 구두 닦을 돈은 남겨두는 한심한 족속이니까.

서두가 강렬하다.

맛깔나는 문장은 여전하고 이번에는 구성이 탄탄했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어떤 배우가 출연할까를 상상할 정도로 영화같은 소설이었고 500페이지 넘는 책을 순식간에 읽을 정도로 흡입렸이 있다. 

구암은 없는 지역이라고 하지만 시대 배경은 노태우 정권 정도로 추측해본다.  소설에서는 건달 세계를 쓰고 있지만 조폭에 대한 환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의리도, 친구도 없고 현재의 이득을 위해서 이합집산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 점이 흔한 조폭 영화들과는 다른 장면이다.  

데뷔작인 <트렁크> 작가 인터뷰에서 저자의 성장환경을 알게 됐는데 앞으로는 이번 책 처럼 고향에 뿌리를 둔 책을 냈으면 한다.

국제시장이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성장사를 이해했고 항구에는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밀수와 이를 둘러싼 다툼이 있다는 걸 흥미있게 읽었다. 

김언수 작가의 작가 후기는 언제나 소설 못지않게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들은 이제 뜨겁지 않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촌충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암의 그 지리멸렬한 삶이 그리워진다. 구암의 시절엔 짜증나고, 애증하고,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었지만 적어도 이토록 외롭지는 않았다.
이 밤에 혼자 소주병을 따며 나는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을 건넬 방법을 떠올려본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사랑을 받을 방법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그런 삶은 없다. 모든 좋은 것은 나쁜 것과 버무려져 있다. 문을 닫으면 악취가 들어오지 않지만, 꽃향기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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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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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이현 작가하고 같은 나이다. 동갑이라는 건 같은 해 태어났고 다른 환경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 했는데 세상을 어떻게 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성장한 기분도 든다.

언제까지 연애 소설만 쓸건가 하는 우려도 했지만 이번 소설은 달랐다.

청춘이 있다면 이제 중년이 있고 과거를 등지고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나이다.

노년에는 어떤 소설로 다가올지, 미스조의 입장에서 쓸건지 상상해본다.

기존의 소설들이 통통 튀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고 겉으로 보이는 사회의 유행은 반영했지만 현실 속은 파고들지 못했는데,  『상냥한 폭력의 시대』 에 나오는 각각의 단편들은 한국 사회의 숨막히는 현실 을 반영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그것울 풀어가는 과정이 돋보이는 작가다.,

단편집의 묘미는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다.  단편들이 배치된 순서도 가벼움에서 진중함으로 나간다.

전세 보증금에 고민하는 부부, 미혼모가 된 딸, 영어 유치원에 맡긴 아이, 등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고민을 보면서 어떤 해결책을 얻어야 할지, 속마음과 위선을 들킨 듯하다.

영영 이별은 누구나 해외에서 그런 인연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꿈을 소설로 만들어서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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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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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로 만든 집』을 처음 읽었고, 윤성희 작가의 소설은 큰 사건이 등장하기보다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짜여져서 에세이를 읽은 듯하다.

봄에서 시작해서 봄으로 끝나는 10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가족들 각자 이야기를 모은 책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문은 넘치지만 대사는 얼마 안 되는 보기 드문 소설이기도 했다. 각 단편들의 화자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묵묵하게 살아간다.  10편 속에 10명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작가는 이들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줄 뿐이다. 살아간다는 건 작은 일들이 모여서 나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 아닌가. SNS에 늘 여행이나 맛집 기행을 올리며 사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일을 하면서 고민도 하면서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보내는게 보통의 삶일 것이다.

“이렇게 큰 나무가 있다니 놀라워요.” 할머니가 목련을 올려다보았다.

“난 작은 나무들이 좋아. 그건 해마다 자라는 게 눈에 보이거든.”

목련나무 아래에서 할머니와 나는 묵례를 하고 헤어졌다.

여백은 없지만 읽은 후에 여운이 많이 남겨지는 단편 소설집이다.

책 제목인 『베개를 베다』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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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정전
최은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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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좋은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무조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3주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금기 사항을 철저히 따르십시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철칙입니다.”

여행갔을 때 작년에 방송된 팝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올해 들었다. 빨책 속의 김중혁의 숏컷코너에 최은미의 <목련정전>의 소개됐고 작가가 출현해서 작품 소개와 작가의 목소리로 낭송을 들어서 알게 된 책. 

이런 책 소개 팝캐스트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책이다.

단편집을 모은 책들은 단편들이 모여서 연작 장편처럼 일정한 주제를 가진 경우도 있고, 각 단편들이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전개되면서 작가의 여러 얼굴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번 책 둘 다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삶은 늘 지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아비지옥보다 몇천 배, 몇만 배 끔찍한 지옥이 뭔지 알아?”
모두가 동작을 멈춘다.
“바로 눈앞에서 자식이 죽는 지옥이다.”

목련정전에서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재작년 4월에 침몰한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지금도 계속되는 세월호에서 자식이 죽은 부모들의 슬픔과 이제는 잊어야 하지 않겠냐는 세간의 시선 속에서,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가, 착해진다는 건 입장 바꿔 생각할 줄 알게 된다는 거다. 입장 바꿔 생각할 줄을 알면 말이다. 세상에는 안 되는 일이 없단다.

 

때로는 철학책보다 소설책이 가슴을 움직이게 할 때가 있는데 목련정전이 그런 경우였다. 삶은 늘 현실을 배신하면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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