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동시집
김용택 동시집, 이혜란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여년 전 마암분교에 가서 시인을 만난 적이 있기에, 덕치학교에서의 선생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해본다. 섬진강가 언덕에 자리 잡은 마암분교에서 뵌 시인은 시집의 표지 그림처럼 편안한 생활한복을 입고 계셨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시간의 강의가 어느새 흘러갔는지 돌아오는 발거음이 아쉬워 다들 가져간 시집에 사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과 동심으로 생활하시니 세월도 비켜가는 듯하다. 

김용택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시가 시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분을 뵈었기에 나혼자 친숙하게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곳을 다녀왔기에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학교 아이들도 이 분의 시집을 읽으면, 자기들도 이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만만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를 읽어 준 날은 어김없이 시를 쓰자고 조른다. 아이들의 시심을 일깨우고 시 쓰기를 어렵지 않게 여기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고향 마을에서 40년을 교사로 지낸 선생님은 참 행복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교사들이 진급에 목을 매면 참 많이 망가지는 걸 보게 되는데, 그런 걸 초월한 선생님은 정말 행복하게 사셨을 거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아이들과 사철 변하는 산과 나무와 풀꽃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산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누리지 못하는 행복이다. 아이들과 뛰놀며 시를 쓰는 선생님은 정말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아이일 것이다. 이 시집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교단일기로 낸 마지막 시집이다. 우리도 그분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시를 맛보자. 

개미 

토란 잎에 내린
이슬비가 모여
또르르 굴러
개미 위에
툭 떨어진다.
"어!
이거,

물벼락이여?"
  

새 

콩새
비비새
박새
물새
참새
멧새
굴뚝새
제비

작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만만하게 여길만 하지 않을까? ^^ 김용택 선생님이 쓴 시는 이렇게 쉽고 재미있이서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시가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시 51편이 5부로 나뉘어 있다. 1부와 3부에는 시골 생활에서 발견한 작은 생명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로 풀어냈고, 2부와 4부에는 산골 아이들의 일상과 외로움을 그려냈다. 5부는 산골 아이들의 일상을 다양한 풀꽃들에 비유한 시가 담겨 있다. 가끔은 뭉클 눈물 한 방울 퐁 솟아나올 시들도 있다. 표제가 된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를 읽으면 혀를 쏙 내밀고 있을 김용택 선생님이 그려진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태성이가 얼마 빨래하는 데 따라와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태성아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태성아 그러지 마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그래도 태성이는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너다닙니다.
그때 비행기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태성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징검돌을 뛰어 건너다가 풍덩 물로 빠집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스탕 2008-12-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는 정말 물벼락을 맞았네요 ^^

순오기 2008-12-26 18:48   좋아요 0 | URL
흐흐~ 그렇죠, 고 작은 몸에 물벼락을 맞았으니 어쩌누?ㅎㅎㅎ
 
슬픈 란돌린 어린이 성교육 시리즈 3
아네트 블라이 그림, 카트린 마이어 글, 허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신문기사 보셨나요? 음란물을 보고 자란 10대 청소년이 모방 성범죄를 저질렀고, 자녀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부모에게 '성교육 잘못한 죄'로 8,300만원 배상판결을 내렸습니다. 주변에서 성폭력이 발생해도 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며 무심하게 방치하다간 큰일 납니다. 특히 아들 키우는 분들, 성폭력 피해자가 딸들이라는 이유로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면 이참에 크게 반성해야 됩니다. 성폭력은 가해 행위를 예방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들을 잘 가르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책은 아주 슬프지만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서구 사회의 재혼 가족 형태가 우리에게도 흔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지만 또한 일어나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쉬쉬할게 아니라 확실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성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는 누구라도 될 수 있기에 내 몸을 내가 지켜야 합니다.

아이들은 조금 이상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저희들끼리 '변태'라는 말을 잘 합니다. 하지만 진짜 변태가 어떤 건지는 잘 모릅니다. 이제는 무엇이든 정확히 알려줘야 합니다. 이 책을 읽어주고 수업할 때, 처음에는 막 웃던 아이들이 곧 심각하고 숙연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성폭력 피해는 나이를 불문하고 일어나기에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리얼한 그림이라 민망하지만 자세히 보여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꼭 봐야할 책으로 추천합니다.

여기 아무에게도 말 못할 고민으로 슬퍼하는 일곱 살 브리트가 있습니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슬픔을 동물인형 란돌린에게만 털어놉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동물인형 란돌린이 말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브리트의 아픔을 아는 란돌린은 처음에는 그냥 슬펐지만 점차 분노의 감정으로 나쁜 아저씨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브리트에게 소리칩니다.
"정말 나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돼! 누구도 너에게 그래서는 안 돼!"
도대체 나쁜 아저씨는 누구이며 브리트에게 어떤 짓을 저지른 걸까요?
아저씨는 엄마의 남자친구였으며 브리트를 예뻐했고 브리트도 처음에는 아저씨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함께 살게 되었고, 아저씨와 브리트에겐 똑같은 비밀이 생겼습니다. 아저씨는 비밀을 지키라고 겁을 주었고, 브리트는 혼자였으니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결혼하고 몸으로 사랑을 나눠 우리가 태어났다는 걸 알려주고, 아저씨는 브리트 엄마랑 사랑을 나눠야지 브리트한테 해서는 안된다는 걸 말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수영복으로 가리는 부분은 아기의 씨를 담은 소중한 곳이기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거나 만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변태'라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 부분을 읽어주고 설명할 때에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아이들도 책을 통해 위기와 긴장을 느끼고 슬픔과 분노를 경험했습니다.



누군가 내 몸을 만지고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할때는 "싫어요. 안 돼요!" 소리치고 도망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도가 필요합니다. 나를 함부로 하려는 사람은 나쁜 아저씨 뿐 아니라, 아주 잘 아는 오빠나 삼촌,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다행히 브리트는 란돌린의 말을 듣고 이웃에 사는 프레리히 아줌마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브리트의 슬픔과 고통은 브리트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받게 해야 합니다. 브리트는 아줌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고 아줌마는 꼭 안아 주었습니다.



이런 일은 내 자녀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는지 알려주고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살면서 누구에게도 이런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꼭 아이에게 읽히고 보여줘야 하는 책입니다. 소중한 우리의 자녀들을 성폭행에서 지키려면,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가르치는 일도 중요합니다.

*어린이 성폭력에 대한 그림책 '내 몸은 내가 지켜요, 싫다고 말해요, 이럴 땐 싫다고 말해요' 등도 같이 보면 좋은 듯합니다.

난 싫다고 말해요이럴 땐 싫다고 말해요!안녕히 다녀왔습니다내 몸은 나의 것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8-12-1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만으로도 울컥 거려요, 순오기님. 저도 이 책을 봐야겠어요. 불끈!

순오기 2008-12-17 23:35   좋아요 0 | URL
성폭행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사회~ 정말 슬퍼요.ㅜㅜ

마노아 2008-12-15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공감이에요. 많은 교육이 부재상태지만 특히나 성교육은 굉장히 다급하다고 여겨져요. 올바른 교육이 선생되어야 하지요.

순오기 2008-12-17 23:36   좋아요 0 | URL
올바른 성교육~ 선행돼야지요.
부모의 역할도 아주 아주 중요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성폭행의 가해자 상당수가 우리나라의 경우는 나이든 남자입니다.

순오기 2008-12-17 23: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철부지도 아니고 뭔 짓인지...

꿈꾸는섬 2008-12-2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몸은 내가 지켜요는 봤었는데 이 책도 꼭 아이들과 함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희망찬샘 2008-12-2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폭력 주제로 책읽기를 하는데... 필요한 주제라 생각합니다.
 
산타 할아버지 비룡소의 그림동화 2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이먼드 브릭스가 핵폭발을 그린 '바람이 불 때에'를 보고 충격이 컷는데 이 책은 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다. 이렇게 인간적인 투덜쟁이 산타할아버지를 그리다니~~ㅎㅎㅎ 레이먼드 브릭스, 자신을 표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 즐거웠다. 직장생활이나 자신이 맡은 일에 늘 불평 불만인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산타할아버지라니 너무 귀여우셔라!^^

대사가 많지 않고 한면에 칸을 많이 나눠 그림이 작아서 아이들이 제법 집중한다. 유치원기 아이들보다 초등 저학년들이 열광할 책이다.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꿈꾸던 산타할아버지, 따르릉~ 알람소리에 깨어나며 하는 말,
"아니, 또 크리스마스잖아!" ^^

산타할아버지 빨리 여름이나 오면 좋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선물 배달을 위해 준비를 척척하네요.


자~ 드디어 출발! 썰매로 달리는데 눈이 오다 비가 오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군요.ㅜㅜ 드디어 지붕 위에 착륙~ 굴뚝 속으로 쏙~~~~ 들어가네요.^^



너무나 인간적인 산타할아버지, 검댕이 돼 버렸다고 또 투덜거려요~ ㅋㅋㅋ

선물주머니를 메고 지붕을 걷는 산타할아버지는 안테나를 싫어하고요,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 드시라고 차려둔 '주스'도 싫어하고~ 아빠가 맘껏 드시라고 한 '꼬냑'은 좋아하네요.ㅋㅋㅋ산타할아버지는 애주가인가 봐요!^^



저런~ 배가 고픈 산타할아버지 지붕 위 굴뚝 옆에서 점심을 드시네요~ 사슴들도 점심을 먹어요.^^

날이 밝아올 때까지 선물 배달을 마친 산타할아버지, 집에 돌아와 강아지와 고양이 먹이도 주고~

뜨신 물에 목욕하고 한잔 하려나 봐요. 수고하고 돌아왔으니 술 한잔 마시는 건 봐 드려야겠죠?ㅎㅎㅎ


혼자 진수성찬을 즐기는 산타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엘지아줌마가 보낸 촌스런 넥타이, 사촌이 보낸 끔찍한 양말~ 투덜거리던 할아버지는 친구가 보낸 꼬냑에는 만족하네요~ 역시 술을 사랑하는 산타할아버지야!



산타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끝나네요,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여러분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산타할아버지는 일년에 딱 하루만 일을 할까요?ㅎㅎㅎ 초등저학년들은 이 책에 아주 열광하지요. 보고 또 보느라 줄서서 기다리기도 해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okJourney 2008-12-1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산타할아버지지요~. 저도 즐겁게 본 책이에요.
둘째 아이한테는 아직 이른 것 같아 안보여주고 있지만요. ^^

순오기 2008-12-15 00:39   좋아요 0 | URL
너무나 인간적인 산타할아버지~ ㅎㅎㅎ

마노아 2008-12-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와 닮은 꼴 산타 할아버지라서 더 친근하고 마음이 가요.
술 좋아하는 할아버지 컨셉도 너무 잘 어울려요. 투덜대면서 할 건 다 하는 부지런쟁이 산타예요. ^^

순오기 2008-12-15 00:40   좋아요 0 | URL
닮은꼴이라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죠.ㅋㅋㅋ

희망찬샘 2008-12-1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 책 두 권을 올리셨네요. 내용도 못 살펴보고 쭉 읽는 바람에 이 모든 것이 한 권의 리뷰인 줄 알고 위의 책을 주문했는데, 딸 아이 맘에 쏙 들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네요. 땡스투~

순오기 2008-12-15 00:3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글은 별로 없지만 재미는 있지요.
따님이 일곱 살이라 했나요? 산타할아버지가 나오는 그림책을 찾았으니 됐네요.^^
 
[사진리뷰] 우리 '옛 이야기' 그림책 사진리뷰 올려주세요~ 5분께 적립금 2만원을 드립니다!
어처구니 이야기 - 2005년 제11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비룡소 창작그림책 28
박연철 글.그림 / 비룡소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정확한 출처나 연유를 모르고 쓰는 말이 있는데,  아마 ’어처구니 없다’란 말도 그 중 하나일 게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처구니 없다’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손없는 날’이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2005년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분 수상작인 이 책은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속지 제목을 거꾸로 써놨다.^^


거꾸로 된 제목을 가르키고 있는 녀석이 바로 ’어처구니들’의 하나인 손행자다. 어처구니는 모두 다섯으로 어찌나 말썽을 일으키는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자, 화가 난 하늘나라 임금님이 잡아 들였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 한번 살펴 보자.

이구룡- 거짓말로 하늘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죄.
저팔계- 술을 먹고 하늘의 천도복숭아 나무를 몽땅 뽑아 버린 죄.

손행자- 하늘나라 임금님과 똑같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선녀들을 골탕 먹인 죄.
사화상- 하늘나라 임금님이 아끼는 연못의 물고기를 죄다 죽인 죄.

대당사부- 사람들의 죽는 날을 똑같이 만들어 큰 말썽을 일으킨 죄.



줄줄이 굴비처럼 엮여가는 죄인들이 할 말은 있는지 변명을 늘어 놓으니 한번 들어 보자.

대당사부- 누구는 일찍 죽고 누구는 늦게 죽고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손행자- 허수아비한테 속은 선녀들이 바보지.
저팔계- 천도복숭아 나무가 그렇게 쉽게 뽑힐 줄 알았나.
사화상-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는지 정말 몰랐다고.
이구룡- 입이 두 개라 어디서 거짓말이 나오는지 알 수가 있나.

한편 하늘 끝에는 ’손’이라는 못된 귀신이 살고 있어 사방팔방 쏘다니며 사람들을 해코지 해서 모두들 무서워했다. 사람들은 손을 혼내달라고 하늘에 빌었고, 궁리하던 임금님은 어처구니들을 불러 손을 잡아 오면 죄를 용서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어처구니들은 손한테 혼쭐만 나고 쫄아버렸다. 그래도 사흘 밤낮 하늘도서관에 처박혀 책만 읽은 대당사부가 드디어 해법을 찾아, 각자 재주를 가진 어처구니들에게 일을 맡겼다.

이구룡- 너는 입이 두 개니 다른 목소리를 내도록 연습해.
저팔계- 너는 힘이 좋으니 커다란 연과 청동그릇을 만들고.
사화상- 너는 물을 다스릴 줄 아니 청동그릇 안에 물을 가득 채워.
손행자- 너는 재주가 좋으니 구백아흔아홉 자의 긴 밧줄을 만들어. 꼭 엄나무로 만들어야 돼!

하지만, 꼭 시킨대로 안하는 놈이 나온단 말이지. 손행자는 까불까불 말참견만 하다가 뒤늦게 엄나무를 찾으러 갔고, 밧줄을 만들다 엄나무 껍질이 조금 모자르자 귀찮아서 두릅나무로 만들었다. 다들 대당사부의 지시대로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해 손을 잡아 들였고, 엄나무 밧줄로 연에 묶어 하늘로 띄워 보냈는데... 그만 두릅나무로 만든 줄이 툭 끊어져 멀리 달아나 버렸다.

결국 손을 놓친 어처구니들은 숨어버렸고,  손은 다시 잡힐까봐 옛날처럼 날뛰지는 못하게 됐다. 죄를 지은 어처구니들은 임금님께 잡혀 궁궐 추녀마루 끝에 올라가서 손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게 됐다. 바로 요렇게~ ^^
 


어처구니는 생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뜻밖의 물건을 뜻하기도 하는데, 궁궐 추녀마루에 올린 ’잡상’이 바로 어처구니들이다. 기와장이가 궁궐 지붕에 어처구니들을 올리지 않은 실수를 저질러 ’어처구니가 없다’란 말을 하게 되었다. 또한 ’손’은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귀신 이름으로,  부담스런 손님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공경하기는 하지만 멀리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 있어 결혼식은 '손 있는 날'로 이사는 ’손 없는 날’로 택일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오늘은 이웃집 언니 큰딸 결혼식이니 '손 있는 날'이 확실하다. 손 있는 날 덕분에 비싼 점심을 먹고 와야 겠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8-12-0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교보문고에서 보고는 너무 신나서 두고두고 맘에 담아두었다가 결국엔 조카에게 선물했어요. 녀석이 어떻게 읽었는지는 미처 물어보지를 못했네요. 나처럼 재밌어 했다면 좋을 텐데요. 그림도 너무 신나고요. 수상하는 게 당연했다니까요! 오늘이 손없는 날이군요! 오홋!

순오기 2008-12-06 17:15   좋아요 0 | URL
애들은 어른들처럼 재밌어 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어른들은 그래도 뭔가 알고 보는데 애들은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요.
오늘 손없는 날이라고 결혼식장이 시간별로 꽉꽉 짜였더라고요~~ ^^

하늘바람 2008-12-0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창작 그림책으로 나왔군요 오 궁금해요

순오기 2008-12-06 17:16   좋아요 0 | URL
2005년이니까 진즉 나왔지요~ 우리 문화와 관련된 그림책은 꼭 가지고 싶어서 진즉 사두었는데 리뷰를 이제야 썼네요.^^

후애(厚愛) 2008-12-0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내용도 재미나고 무엇보다 그림보고 엄청 웃었어요.^^;

순오기 2008-12-06 17:17   좋아요 0 | URL
제가 보여주지 않은 그림들이 더 재미있어요~~ ㅋㅋㅋ

bookJourney 2008-12-0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저학년보다는 고학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울 아들녀석이 무척 신나게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이번 달에 책을 너무 많이 사서 참아야 하는데, 꼭 이런 책은 사고 싶단 말이지요~~ 땡스투 미리 누르고 보관함에 담아두었어요. ^^

순오기 2008-12-07 01: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학년은 이해가 안 되는지 고학년들이 좋아했어요.^^

2008-12-08 0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2-08 23:33   좋아요 0 | URL
어므낫~ 제가 이사만 생각했는지 잘못 적었네요.
결혼은 '손 있는 날'로 이사는 '손 없는 날'로 수정했어요. 고맙습니다~ ^^

Arch 2008-12-0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더라구요. 낯선 이름에 생소한 그림체였거든요. 그런데 옥찌들 너무 좋아합니다. 특히 이구룡처럼 음색이 다른 목소리로 말을 흉내내고, 손 무섭지 않냐고 자꾸 묻고. 확실히 좋은건 모두에게 좋은가봅니다.

순오기 2008-12-08 23:34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확실히 구분되더라고요.
뭔가 아는 녀석들이 좋아하는 듯...역시 옥찌들은 똑똑해요!^^
 
도둑고양이와 문제아 - 제6회 푸른문학상 동시집 시읽는 가족 7
김정신 외 지음, 성영란 외 그림 / 푸른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을 모은 동시집이다. 수상자인 곽해룡, 김정신 시인의 작품을 1, 2부에 담았고, 3, 4부는 이미 푸른문학상을 받은 시인들의 초대작품이다. 몇 몇 유명한 시인을 제외하면 동시집이 뜨기 어려운 현실에서도 꾸준히 시인을 발굴하고 동시집을 출판하는 푸른책들이 고맙다. 덕분에 몇몇 시인은 이름만 들어도 그의 시가 떠오른다. 동시집을 자주 접하면 우리네 감성도 동시적으로 전환되는 것 같아 즐겁다.

나도 이런 적 있었는데 공감의 즐거움과, 어쩜 이런 세심한 것까지 잡아 냈을까 감탄도 나온다. 어른이 썼지만 어린이 마음을 그대로 베껴온 듯, 어린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하는 시가 많았다. 학교에 가져간지 20일쯤 된 시집은 구김이 많아서 사랑받은 흔적을 갖고 있다. 아이들이 공감하는 시와 내가 좋다고 생각한 동시가 일치하기도 했지만 조금 다르기도 했다. 아이들이 최고로 꼽은 동시를 감상해 보자.^^

게임에게 따지다     -한선자-

널 몰라야 했어
널 아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금이 가기 시작한 거야
내가 널 몰랐던들
공부할 시간에 이러고 있겠니?
책이라도 한 장 더 보는 건데
문제집이라도 하나 더 푸는 건데
자전거라도 한 번 더 타는 건데
엄마 심부름이라도 해 드리는 건데
너 때문에
나는 이제 그런 일을 다 잊고 살아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었어
지지리도 속 썩이는 아이가 되었지
틈만 나면 너를 붙들고 살아
아니 너만 생각해
이거 확실히 병 아니니?
나 어떡할래?
책일질 거야?

뭐, 내 잘못이라고?

아이들은 게임을 안 하고 싶은데 자꾸만 하게 된다며 굉장히 공감했다. 따져 물어도 끝내 '내 잘못이라'는 대답에 속수무책인 자기네 심정과 딱 맞는다고 좋아했다. 1학년 우진이는 게임하느라 학원시간이 지나버렸던 경험을 토대로 멋진 글을 쓰기도 했다. '텔레비전만 말한다'와 '중독가족'도 아이들의 호응을 얻은 시였다. 가족간의 대화보다는 TV나 컴퓨터에 빼앗기는 일이 많은 풍경화를 그대로 보여준 동시라 할 수 있다. 자기 엄마는 시간만 나면 컴퓨터 고스톱을 즐긴다는 아이도 있었다.ㅜㅜ

동생에겐 관대한 엄마를 그려낸 '나만 미워하는 엄마'는 애들에겐 일상처럼 된 일이라 그러려니 한다는 반응에 놀랐다. 아무래도 엄마들이 맏이에겐 엄하고 동생에겐 관대한 보편화된 태도를 수정해야 될 거 같다. 이런 부모를 그냥 모른척 받아주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어른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소한 일상과 아름다운 마음을 담은 동시들이 독자와 시인의 마음을 이어준다. 나도 이런 시를 쓸 수 있어, 만만한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들은 시를 쓴다며 끄적거렸다. 시인은 천재이거나 시를 쓰는 건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그저 부럽기만 하던데... 역시, 아이들은 타고난 시인의 감성을 잃지 않은 듯하다. 아이들이 시적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동시집을 자주 접하게 하는 것도 어른들이 할 일이다.

아이들이 공감하기는 어려워도 이런 것까지 마음 써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동시도 많았다. 표제작인 '도둑고양이와 문제아'나 뇌성마미 '막내 고모'. 연변에서 온 '면발 뽑는 아저씨'등은 함께 사는 세상에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어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11-30 0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1-30 13:28   좋아요 0 | URL
무슨 그런 말씀을~ 쓸 때마다 어찌 써야 될지 막막하다고요.ㅜㅜ
그래서 내가 느낀대로 솔직히~~~ 라는 컨셉으로 쓸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