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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ㅣ 푸른도서관 27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평점 :
역사소설을 주로 쓴 강숙인 작가는 '지귀설화'의 이룰 수없는 사랑을, 신라를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그렸다. 선덕여왕 말년에 있었던 비담과 염종의 반란에 지귀를 개입시켜 개연성을 얻는다. 비담과 염종은 당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으로 신라를 지키자 했고, 당나라의 연호와 복식을 따르더라도 군사협정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제압하려던 김춘추와 김유신 세력을 양대 축으로 세운다. 거기에 김춘추의 아들 법민이 나오고, 염종의 아들인 '가진'을 가공인물로 설정한다.
작가는 소설의 모티브를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 줄의 기록에서 얻었다고 한다.
“16년(선덕 여왕 말년)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반역을 꾀하고 군사를 일으켰다고 성공하지 못하였다.” 는 기록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어 ‘비담의 난’을 단순한 반역이 아닌 신구세력의 갈등으로 그리게 만들었으며, 더불어 시대의 격랑에 휘말린 여러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는 나이 예순에 열여섯 살 꽃다운 가진을 보고, 가슴 설레는 사랑을 느낀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한 사랑은 끝끝내 가슴을 찌르는 병이 된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지만 선덕여왕은 '가진'을 사랑했고, 선덕여왕을 흠모한 것은 광덕이었던 듯하다. 지귀는 광덕의 영향으로 선덕여왕을 한번이라도 뵙기를 꿈꾸었을 뿐, 지귀가 선덕여왕을 사랑하고 흠모했다고 여길만한 것들은 많지 않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귀설화를 다르게 그려냈지만, 지귀의 선덕여왕 사랑을 더 많이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오히려 여왕이 마음에 둔 가진을 생각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졌다.
사실 지귀는 선덕여왕을 사랑하고 흠모하는 것보다 평민인 자신을 존중해 준 가진의 낭도가 되고 싶었다. 지귀가 은혜를 입은 김유신의 부탁으로 가진의 낭도가 되어 첩자 노릇을 했으나, 마음의 고통으로 선덕여왕께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선덕여왕이 지귀를 찾았을 땐 탑에 기대어 잠들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여왕은 지귀의 가슴에 금팔찌를 얹어 두어, 여왕이 다녀가심을 알게 했다. 반란이 끝나고 가진이 처형되는 날 지귀는 영묘사 탑에 불을 지르고 뛰어 들었으니, 여왕과 가진을 다 구할 수 없었던 지귀의 사랑도 끝났다.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으로 읽히는 '지귀설화'를 반역 사건에 연루시켜, 그들의 반역이 외세에 의존하기 보다는 신라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설득하는 듯하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란 역사학자들의 반론을 의식한 듯, 작가 후기에서 김춘추의 외교 정책에 대해 옳고 그른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아는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초등 5~6학년 이상이면 읽을만 하겠다. 청소년 대상이라 애절한 사랑을 절제했을까? 강숙인 작가의 전작들에 열광했던 독자로서 분량을 늘려 충분히 풀어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라 변방의 아홉 적국(고구려, 백제, 당, 왜, 여진,거란, 말갈, 오월, 탐라)을 상징하여 구층 탑을 쌓고, 부처님의 가호로 적국의 침략을 막고자 했던 황룡사 9층탑은 흔적이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신라의 역사 속에서 접했던 선덕 여왕을 우리네와 같은 성정을 지닌 여인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