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개정판(30~46쪽)에 실려 있는 이야기지만, 예쁜 그림과 영문 번역까지 곁들여 나온 책이라 소장하고 싶었다. 결정적인 선택은 역시 ’책따세 추천도서’로 선정됐기에... 책따세에선 중3부터 읽을만한 책으로 추천했지만 굳이 학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기엔 버거운 청소년들이 ’청구회 추억’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다. 청구회 추억을 읽고 신영복 선생님이나 그분이 겪어낸 20년 감옥생활이 궁금해, 혹은 민주주의가 죽어 있던 암울한 시대를 알기 위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찾게 된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신영복선생이 사형선고를 받고 남겼던 아름다운 추억이야기다. 1966년 이른 봄, 서울대학교 문학회원 20여명과 함께 했던 서오릉 답청놀이에서 만났던 여섯 명의 초등학생들과 68년 7월 구속되기 전까지 가졌던 모임 이야기다. 선생이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공허함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날마다 한장씩 주었던 휴지에 남긴 기록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매월 마지막 토요일 6시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 같이 놀았던 추억여행으로, 첫 만남에 아이들에게 접근하려고 고도의 작전을 세웠던 신영복 선생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 변변한 옷차림이 아니었던 아이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그들이 잘 대답할 수 있는 것을 물어보는 배려심, 그들의 반응에 즐거워하며 기꺼이 함께 한 선생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수 있다.
어른도 아이들과 친구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같이 어울려 놀고 문화빵 100원어치 사서 나눠 먹으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어울리며 점점 건설적인 모임으로 발전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의 모임에 왜 청구회라 이름 붙였을까? 아이들이 청구초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모임은 아주 모범적으로 운영되어 의견을 모아 한달에 100원씩 저금도 하는데, 아이들이 각자의 수고로 벌어온 10원씩 내고 나머지 40원은 신영복 선생이 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진학할 수 없는 이들은 7학년, 8학년으로 남아 있고, 이들이 중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해야 하나 고민했던 선생의 마음도 짠하게 읽히지만, 대체로 밝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아름다움이다.
청구회는 독서에 가장 힘을 쏟았다. 매월 책 한 권을 모임도서로 기증했고, 아이들도 각자 책 한 권을 모아 ’청구문고’를 만들어 나갔다. 아이들은 토요일마다 저희들끼리 만나서 번갈아가며 책을 낭독하였고, 마지막 토요일엔 선생과 만나 독후감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지만, 어려운 일을 상의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행복한 모임이었는지는, 약속 한 시간 전에 나와서 기다리는 걸 보면 짐작이 된다. 선생이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해 30분 일찍 나가면, 아이들은 그보다 역시 한 시간을 앞서 나와 기다렸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마을 청소를 하고 마라톤을 하면서 스스로를 키워 갔다. 청구회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육군병원의 문병사건이나 선생이 집으로 초대했을 때 오지 않았던 가난하고 순수한 소년들이 찡하게 울린다.
2년 이상 지속되었던 청구회는 선생의 투옥으로 중단 되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으며 반정부 단체나 되는 듯 청구회명단을 내놓으라던 그들, 청구회 노래에 나오는 ’주먹 쥐고’라는 귀절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 암시가 아니냐고 추궁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선생은 감옥에서 그들이 주었던 화사한 진달래 꽃잎 하나 가슴에 달고, 서오릉으로 외로운 산책을 꿈꾸며 20년을 견뎌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60년대 암울한 시대에 분홍빛 진달래처럼 피어났던 신영복 선생과 소년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알리고 싶어 영역했다니 고마운 일이다. 만년샤쓰와 엄마까투리에 그림을 그린 김세은 화가가 그린 그림은 예쁜 책으로 태어나는데 일조를 한 듯하다. 엄마까투리의 검고 굵은 선과는 다른 부드러운 그림은 청구회 추억에 동행하는 독자를 행복하게 해준다. 삽입된 그림과 청구회 소년들이 보냈던 편지사진, 아이들과의 만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고등학교때 미술선생님 그림(김영덕, 전장의 아이들)을 올린다.
*이 책을 선물해준 세실님께, 소장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고마움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