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이청준 지음, 전갑배 그림 / 열림원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2008년 7월 31일 새벽 1시,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이청준씨가 세상을 떠났다. 장흥 문학기행을 갔을 때, 문화유산해설사가 자랑스러워 하던 문인의 고장 장흥 사람이다. 장흥은 풍수적으로도 문필가의 고장이라는데, 이청준씨는 동인문학상을 비롯한 내노라 하는 상을 두루 받았다.

이청준님의 작품은 여러편 읽어봐도 다른 책에 비해 술술 읽히는 편이 아니다.  아마도 작가의 건조한 문체 때문일거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어렵게 읽고 나면 가슴에 남는 그 묵직한 울림이 참 좋다. 인간의 원초적 삶의 아픔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그러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교과서에 '선학동 나그네'가 실렸는데, 우리 큰딸이 고2였던 3년 전에 '서편제' 영화를 본 아이들이 없어 수업시간에 보여줬다고 했다. 우리애들은 방학마다 '거실을 영화관으로' 탈바꿈하는 엄마 덕에 웬만한 영화는 비디오로 다 봤기에, 우리 딸은 서편제를 본 유일한 아이였단다.  

책 제목은 천년학이지만, 실제 수록된 작품에 ’천년학’이란 단편은 없다. ’남도사람’ 연작소설로 ’서편제’와 ’소리의 빛’, ’선학동나그네’가 나오는데, 선학동 포구 맞은편 산줄기의 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모습이라고 묘사했다. 각 편마다 연작의 맛이 살아나 읽는 재미를 더한다. 대중에겐 소설보다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로 알려졌고, 그 후속으로 임감독의 100번째 영화로 '선학동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천년학'이 나왔지만, 서편제처럼 호응을 받진 못했다. 그래서 책도 서편제에 실렸던 작품들이 '천년학'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장흥 선학동을 배경으로 한 서편제 다음 이야기로, 북장단을 맞춰주던 아들이 떠났다가 훗날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이야기다.

가슴에 쌓아둔 원망의 한이 아니라 한을 풀어내는 소리가 된다. 바로 한을 소리로 풀어내면서 용서하고 화홰를 담아낸다. 우리 민족의 한을 어느 나라 말로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바로 우리 말과 글만이 온전히 담아낼 수 있으리라. 소리를 위해 딸을 장님으로 만든 비정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살의를 품는 아들과, 그 아버지를 용서한 딸의 승화된 사랑이 담아내는 서편제의 그 울림이 오래 남았다.

동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달라지고 비로소 용서하는 아들의 아픔도 마음을 적신다. 어쩌면 아버지를 떠날 때 이미 용서했는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고 인정할 수 없어 괴로워한 것은 아닐지 내 마음도 아프다. 딸 송화는 이미 아버지를 용서하고 한을 풀었는데, 그 아들은 가슴에 한을 남겨두었기에 화해와 용서의 과정이 필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민족은 유독 아픔을 많이 겪은 역사를 가졌기에 '한의 정서'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 한의 정서가 개인이든 민족이든 서편제의 소리를 통해 승화되기를 기원한다. 영화관객과 소설독자의 이해도는 다를거라 생각되지만, 영화를 보고 책도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오라비에게 나를 찾게 하지 마시오. 전 이제 이 선학동 하늘에 떠도는 한 마리 학으로 여기 그냥 남겠다 하시오. 그게 그 여자가 내게 남긴 마지막 당부였소. 그리고 그 여잔 아닌게 아니라 한 마리 학으로 하늘로 날아올라간 듯 그날 밤 홀연 종적을 감췄고 말이오..."  
   

예비 고딩인 아들이 읽어야 할 필독도서로 추천했는데, 거의 400쪽에 육박한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으니 수월하게 읽을 거라 기대한다. 고등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 뿐 아니라 이청춘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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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에 이청춘씨라 적혀 있어요~
당신들의 천국을 사두고 못 읽었는데 이 책이 더 끌리네요. 서편제 영화로 못 봤어요. 익히 유명한 줄거리만 알고 있네요. 이 책도 담아가요~

순오기 2009-02-04 18: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래서 고치려고 로그인했어요.
새벽에 써놓곤 그냥 잤더니~ 우째 이런 일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