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같이 있고 싶은 엄마

작년 6월 18일에 떠난 그녀의 1주기,
음력으로 따르다 보니 양력 날짜보다 많이 늦었다.
화요일이 제삿날이지만, 오늘(7/4) 산소에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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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엄마 없는 1년간 성큼 자랐다.
작은 아이가 오늘 입은 옷은 딱, 제 엄마 스타일이다.
어린이 날 아빠가 사줬다는데, 제 엄마가 보면 흡족해 할 것 같았다. 
함께 산 세월이 18년이니, 옷을 고르는 취향도 닮았나 보다.   

지난 6월 산에 두고 오던 날도 비가 내렸는데
오늘도 먹구름이 몰려 오더니,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앞이 탁 트인 곳에 누워 답답하지는 않았으리라, 위로 받으며
밥보다 커피를 좋아하던 그녀를 위해 진한 커피향을 날리며 무덤에 놓았다. 

자매는 엄마 앞에 절을 올리고
아이 아빠는 가져온 맥주를 그녀와 나눠 마셨다.
오늘은 술 취하고 싶은 날이겠지.... 

다음에 만나면 "왜 그랬느냐?" 꼭 물어 보고 싶다며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자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야지요~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야지요.   


작은 아이는 오늘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먹었다고
엄마에게 얘기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7월 19일이 생일이라기에, 그날 만나 영화도 보고 냉면도 먹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아이는 지난번처럼 눈치보거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든든한 아빠가 곁에 있으니 어깨에 제법 힘이 들어가 보기 좋았다.^^


돌아오다가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는데 소주를 주문하기에 말렸다.
술 마시고 싶은 날인 줄은 알지만 운전해야 되니까,
아이들 데려다 놓고 밤에 한 잔 하자고...

산소에 함께 가기로 했던 이웃들이 못 가서 나혼자 따라 나섰는데
저녁에는 다같이 모여 술잔을 들었다. 
오늘 같은 날 어찌 술 취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아빠는 아침 6시에 출근하고,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나 밥 챙겨먹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전화로 깨웠지만, 이제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난다고...

4학년 작은 아이도 세탁이 끝나면 빨래를 널고
밥 먹고 설거지는 기본이고, 집안 청소든 무엇이든 척척해내며 잘 적응한다고...
엄마가 없으니 아이들은 일찍 철들고 강하게 자란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어서 처량하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면서, 아이들보다는 본인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바쁘니까 생각이 안 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라도 내리면 무진로를 달리며 참 많이 처량하고 쓸쓸했다고...
하지만 사는 동안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삶과 죽음의 어느 한 순간에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이별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있으며, 나름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애틋하고 소중한 것이며, 이별이 있기에 지금 나의 사랑이 애절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합니다. 지금의 내가 애틋하고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이곳에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 - 월호스님/마음의숲)




이제 사랑했던 그녀를 놓아보내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 가꿔가기를...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이제는 엄마를 놓아보내고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고...  이 책을 수시로 읽으며 그녀를 생각했고, 폐암으로 남편을 잃은 지인에게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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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7-05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서 다행이건만 그럼에도 짠하고 안타까워요.
함께 해주셔서 가신 분이 많이 고마워하고 있을 테지요.
잘 다녀오셨어요. 순오기님의 마음도 토닥토닥...

순오기 2010-07-06 00:43   좋아요 0 | URL
산 사람은 또 씩씩하게 살아야지요.

비로그인 2010-07-0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살아갈거예요.
으음~~그래서 마셨구나, 울 오기님?!

순오기 2010-07-06 00:44   좋아요 0 | URL
으음~ 그래서 머리도 아프고 술도 마시고...

루체오페르 2010-07-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행복하길...
그저께,어제 인천대교 버스추락 사망자 사연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가신 분들이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순오기 2010-07-06 00:44   좋아요 0 | URL
사고사도 많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많은 걸 보면
분명 뭔가 잘못되고 있어요~ ㅜㅜ

꿈꾸는섬 2010-07-0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1주기군요. 아이들이 주눅들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바뀌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스스로들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너무 다행이구요. 어제 버스 사고로 7살 아이만 남은 가족이 생각나서 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글썽거려지네요. 아이만 두고가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까요.......

순오기 2010-07-06 00:45   좋아요 0 | URL
글쎄~ 어떤 마음이면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는지...솔직히 모르겠어요.
독하다고 할 수 밖에...

마녀고양이 2010-07-0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학년이면 코알라랑 동갑인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요.
아이들이 씩씩해서 다행이예요.
그리고 언니같은 친구분이 있어서 다행이예요, 정말.

순오기 2010-07-06 00:47   좋아요 0 | URL
엄마 품속의 4학년은 어리지만, 홀로 선 4학년은 씩씩했어요.
내일 그녀의 제삿에 올릴 떡을 해주는 이웃도 있는 우리동네가 좋아요.

hnine 2010-07-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때 올리신 페이퍼 지금도 생각이 나요.
아이들이 "괜찮다"라고 했다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빠의 어깨는 또 얼마나 무거울까요.
엄마의 자리는 엄마 혼자만의 자리가 아님이 때로는 힘에 겹지만 그래서 또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자리를 해주시는 순오기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요.

순오기 2010-07-06 00:49   좋아요 0 | URL
나도 '괜찮다'는 말 들으며 그런 생각했어요.
정말 괜찮을까~~~~~ ㅜㅜ
어제 고2 큰아이랑 입시 얘기도 많이 나누고
요즘 초경도 빠른 초딩들이라 작은아이도 신경써야 될 거 같고요.

소나무집 2010-07-0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들도 4학년인데 아, 진짜 마음이 짠해지네요.
그리고 친구 곁을 지키는 님이 너무 고마워요.

순오기 2010-07-06 00:5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작은아이는 뭐든 잘 먹고 씩씩해서 보기 좋았는데
큰아이가 오히려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아빠가 앞으로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는 것도 접수하던데...많이 아프겠죠.ㅜㅜ

2010-07-05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7-06 00:51   좋아요 0 | URL
아아~ 왜들 자녀를 두고 갈 생각을 하는 걸까요?
남겨진 아이는 또 얼마나 힘들면 우울증까지... ㅜㅜ

글샘 2010-07-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내가 애틋하고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이곳에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로 죽다가 '나끄 낫다'인데요... 없게 되다...입니다.
죽음이 마음아픈 것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고, 다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죠.
역설적이게도... 죽음은 삶에 더 힘을 내라고, 그렇게 힘줘 말하는 거 같아요.
가신 님께는 애도를... 남매와 아빠에게는 용기를 보낼게요...

순오기 2010-07-06 00:5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바로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고 있어요.
마음에 위안이 되는 말씀이 좋더군요.

가신 이는 고통없이 안식하고 있을까요?
이 생에서 연을 다하지 않으면 또 다른 연이 생긴다는데...
아빠와 자매는 잘 지내고 있어 조금 안심이 됐어요.
고맙습니다~~

세실 2010-07-06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겨진 아이들이 잘 크고 있어 다행입니다.
사람에게는 무한한 힘이 있나 봅니다.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요.

행복희망꿈 2010-07-06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막막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그래도 남은 가족들이 씩씩하게 살아간다니 다행이네요.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생활할 가족들이 안스럽지만 그래도 그 몫은 본인들의 삶이겠지요?
지금 모습을 보니 앞으로는 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갈것 같네요.
순오기님께서 옆에서 잘 지켜봐주세요.

어쩜~ 이 책속의 말이 가슴에 또렷히 남네요.
저도 기억하고 열심히 살께요.

전호인 2010-07-0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는다고 잡아지는 사랑이 아닌 이상 사랑했기에 놓아 보내야지요.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인연도 만났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본인의 인생을 위해서도.......

토토랑 2010-07-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저번에 본 영화관 갔던 페이퍼도 보면서 펑펑 울었는데.
그 아이들이 저번처럼 주눅들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들으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또 눈물이 핑 도네요..
여튼.. 여튼 엄마들은 건강하고. 또 행복해야 해요..우울하면 하루쯤은 집안일 파업하고 스트레스 풀어줘야 해요
순오기 님도 모두모두 건강하자구요!!!

같은하늘 2010-07-07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글을 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렸군요.
아이들의 '괜찮다'는 말이 더욱 맘에 걸리네요.
딸아이들이라 앞으로도 엄마의 손길이 더욱 필요할텐데...

순오기 2010-07-0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모두 부모 노릇 잘하면서 열심히 살아야지요.
아자아자~~~

희망찬샘 2010-07-0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전 글이 생각이 나네요. 슬퍼요.

순오기 2010-07-08 11:25   좋아요 0 | URL
이젠 슬픔을 잊고 열심히 살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