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작가님 만나러 장흥으로

7월 11일 토요일 오전 8시, 내 예상대로 건강상 문제가 생긴 학생 세 명이 안 나와서
어머니 13명에 학생 28명, 선생님 두 분까지 총 43명으로 버스 정원을 꽉 채워 출발했다.
광주를 벗어나자 비가 내렸지만 오히려 더 멋진 기행이 될 수도 있다 싶어 걱정하진 않았다.  
선생님이 준비한 자료집을 차례대로 읽으며 장흥과 한승원 작가에 대한 공부를 했다.

  


장흥군민회관에 도착하기 10분 전, 광주는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이 준비되지 않은 22명의 비옷을 살 수 있도록 알아봐 달라고 해설사님께 부탁드렸더니 5분만에 회관앞으로 가지고 오도록 했다는 연락이 왔다. 군민회관까지 비옷을 들고 오신 그분께 1,500원씩 33,000원을 계산했는데, 문제는 내가 빼기를 잘못해서 22개가 아닌 32개가 필요했다는 것~~ 하지만 우산을 가져온 사람이 11명이니 둘씩 써야지 어쩌겠어.ㅋㅋㅋ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한 곳을 들를 예정이었는데 비가 오니까 바로 한승원 선생님께 가기로 했다. 김순옥(전남문화유산해설사)님의 상세한 설명으로 비로소 문학기행이 실감났다. 선생님은 회진면이 고향이지만 안양면에 살림집과 집필실(해산토굴)을 지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사신다 했다. 군민들은 그분 때문에 장흥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자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해산토굴까지 가는 길목에 종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서로 배려하는 고마움이 느껴졌다. 

 



한승원선생님께 30분 후에 도착한다고 연락드렸는데, 우리가 우산이 없다는 것만 알고 비옷을 준비한 줄 모르는 선생님 내외분은 이웃에서 빌린 우산까지 들고 찻길에 마중나오셨다. 찻길에서 해산토굴까지 2분쯤 걷는다기에 '그 정도면 달음박질하지요' 했는데, 비를 맞고 들어올 우리를 염려한 노부부의 마음이 바로 '어버이 마음'이구나 싶어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학생들 후기에도 감동받았다는 글이 여러편 있었으니 따뜻한 마음은 저절로 통한다. 
 

양손에 우산보따리를 들고 오신 노부부는 비옷 차림으로 내리는 학생들을 보곤 황당하신 듯, 몇 사람이 우산을 받아 쓰긴 했지만 사모님은 당신의 수고가 제값을 다 못하자 좀 속상하셨는지, "여보 들어갑시다!" 하셔서 비옷을 가방에 둔 채 감사하며 우산을 꺼내 들었다.^^ 



비옷을 입은 학생들은 룰루랄라 신나게 앞장서 달려갔다. 하긴~ 언제 또 이런 비옷을 입고 여행다닐지 모르지만, 평생 이런 경험을 두번 다시 못할 수도 있다 생각하면 이마저도 소중한 추억이 될 듯하다. 이 비옷은 이후 일정에도 같이 다닌 길동무로 사진발은 별로였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우산과 비옷을 입은 행렬들 앞에 보이는 왼쪽 집이, 한승원 선생님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장흥군에서 지어 준 강의실 '달 긷는 집'이다.  



선생님을 따라 가는데 마중나오느라 빗물에 젖은 선생님 바지자락이 눈에 밟혔다. 길 옆에서 고추, 콩이랑 참깨꽃이 반겨주고... 잘 안보이지만 표지석에 쓴 '해산토굴'이다.

  





좁혀 앉으면 5~60명은 족히 앉을만한 강의실, 43명 우리 일행이 앉으니 꽉 찼습니다. 선생님은 젖은 바지자락을 닦으라고 사모님이 가져다 준 수건도 옆에 둔채 학생들을 바라보십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오래하셔서 중학생 아이들이 사랑스러우신 듯...  하지만 당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딴짓하거나 떠드는 것은 예민하게 반응하셨습니다. 눈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는 통섭(通涉)을 원하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민망할지 모를 여학생의 마음을 섬세하게 다독거려주는 모습은 더없이 인자했습니다.



강의실을 '달 긷는 집'이라 이름 붙인 '달'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셨다. 한번 깨달았다고 공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파껍질을 벗기듯 탐구해야 할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자연인 한승원이 추구하는 진리의 깨달음과 예술가 한승원이 지향하는 문학의 최고 경지를 이른다고 말씀하셨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어, 꿈과 이상을 갖고 있는 내 몸도 '달을 긷는 집'으로, 공부란 하늘과 땅의 진리를 통달하는 것으로 조금 알았다고 날넘거나 고장난 나사처럼 겉돌지 않도록 끊임없이 정진하라고 당부하셨다. 내 몸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똥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학생들이 남긴 후기를 보니 제법 진지하게 경청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강의하는 동안, 사모님은 옆방에서 차를 준비하셨다. 사진 안쪽에 계신 분이 사모님이시고 바깥쪽에 앉은 분은 김순옥해설사님. 사모님 뒷쪽으로 보이는 서가에 꽃힌 책들은 한승원선생님 작품으로 미처 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오신 분들이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판매도 하셨다.



한승원선생님의 차밭이 따로 있어 직접 키우고 가꾸며 사모님이 손수 만든 차만 드신다는데 강의가 끝나자 43명 모두에게 차를 주셨다. 한승원 선생님과 사모님께 감사의 박수를~~~ 학생들 후기에 보니 쌉싸롬한 차를 마셨다고 써 있었다.^^





그리고 사인 받는 시간, 집에서 읽고 가져온 사람도 있었지만 준비하지 못한 분들은 주머니를 털어서 선생님 시집이나 동화책, 소설을 구입해서 차례대로 사인을 받았다. 선생님은 붓을 들어 스윽 쓱 이름과 말씀을 적고 낙관까지 찍어주셨다. 학생들 후기엔 누군가에게 사인받는 일이 난생 처음이라며 굉장한 의미를 부여했다. 각자 혹은 모녀간이나 모자간, 친구끼리 같이 앉아 사인을 받았고, 특별히 사인을 받고 악수까지 나눈 장흥 출신 명숙씨!

   

민경이는 준비해간 '다산 1.2'권에 사인 받았는데, 1권엔 아제아제바라아제, 2권엔 '달처럼 꽃처럼 향맑게'라고 써주셨다.

 
순오기는 마지막으로 감상후기를 잘 쓴 학생에게 상품으로 줄 세 권과 흑산도 하늘길과 바닷가 시인에 받았는데 민경이처럼 두 권에 다른 말씀을 써 주셨다. 


 

 

 

 





사인하는 시간만 20분 이상 걸려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지루했을 듯... 자리를 정돈하고 한승원 선생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했다. 선생님이 다같이 '바보처럼' 하라고 해서 나온 사진이다.^^ 



이미 밖으로 나간 회원들은 못 찍었고, 마지막까지 강의실에 남아 있던 엄마들끼리 친한척(?)하고 찍은 사진^^

>> 접힌 부분 펼치기 >>

우산을 받치고 '달 긷는 집' 밖까지 나와서 배웅해주신 한승원 선생님



마지막으로 내려오다 생각하니 집 구경을 못해서 부리나케 다시 올라가 사진 몇 장 찍었는데 정작, 선생님 작업실인 해산토굴은 안찍고 내려왔는데, 어쩌면 이 글귀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엄두를 못냈는지도... 해산은 한승원선생님 호이고, 토굴은 땅속에 지은 집이 아니라 겸손히 낮은 집이란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우리 학생들도 토굴이라니까 땅굴쯤으로 생각하는 듯...^^



달 긷는 집과 해산토굴 사이에 있는 연못과 꽃들~ 바로 이 연못 오른편으로 빨간 기와집인 해산토굴이 있다. 한승원 선생님 호인 '해산'과 겸손하게 낮은 집이란 의미로 토굴이라 이름 붙였다는데, 토굴이라니까 우리 학생들도 땅굴을 생각하는 듯...



  



 
여기 보이는 지붕은 '달 긷는 집'
 

일단 여기까지만 올리고 추가하던지 페이퍼를 따로 작성하던지...
사람들이 사인받은 한승원 선생님 책을 담았어야 되는데~뒷북으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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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7-1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마르셨어요. 좀 예민할 듯도 해요.^^
연꽃이 무척 이뻐요. 학생들도 진지한 시간을 가진 듯해서 보기 좋습니다.
우비와 함께 한 멋진 문학 기행이에요.^^

순오기 2009-07-12 21:52   좋아요 0 | URL
원래도 마르셨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더 야윈듯 보이네요.
그래도 밝게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비와 함께 한 문학기행~ 또 경험할지 모르겠어요.ㅋㅋ

비로그인 2009-07-1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속에 고생하셨지만 사진만 보는 사람도 이리 좋아보이니.. 수고 많으셨어요, 오기언니. 한선생님의 멋진 사인만 다시 봐도 뿌듯하시겠어요.

순오기 2009-07-12 22:29   좋아요 0 | URL
빗속에 고생이라는 것보다 즐겁다고 생각했지요.ㅋㅋ
2001년도에 받은 사이보다 더 세련되고 멋져요!^^

왕유니션맘 2009-07-1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으로도 넘 즐겁네요~^^

순오기 2009-07-13 09:19   좋아요 0 | URL
나중에 시간내서 꼭 가봐~~ ^^

프레이야 2009-07-13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오기언니 찾았어요.^^
해산토굴 가보고 싶은 곳인데.. 다음에 정말 기회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때 조언 다시 구할 줄 몰라요.
이래저래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뿌듯하시죠!!

순오기 2009-07-13 09:20   좋아요 0 | URL
문인들은 꼭 가봐야 될 곳이죠.
페이퍼는 계속 올릴테니 기다려주세요.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더 바빠요~ 어머니독서회, 운영위원회 꽉 찬 일정...

같은하늘 2009-07-1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에 남을 기행을 하고오셨네요...
비오는 날씨에도 진지하게 참여해주는 학생들 모습이 너무 예쁘고
작은 못의 연꽃도 예쁘네요...
많이 여위어 보이시는 선생님의 건강은 좋으셨는지...

순오기 2009-07-13 14:44   좋아요 0 | URL
뒤로 처지지 않고 잘 따라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어요.
공기 좋은 고향에서 시끄럽지 않게 사시니 좋으시겠죠.^^

무스탕 2009-07-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뻐요.. 사진 한장한장, 선생님 글 하나하나 다 이뻐요.
좋은시간 보내신거, 부러워요 ^^

순오기 2009-07-13 14:45   좋아요 0 | URL
이쁘다고 하는 무스탕님도 이뻐요~~ 많이 많이 부러워하세요.ㅋㅋ
부러워하는 탕님을 위해서도 나머지도 잘 정리해서 올릴게요.^^

소나무집 2009-07-1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갈 걸 그랬어요.
장흥 한 번 가자 가자 하고 있는 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찾아가면 안 만나줄 것 같아요.
요즘 나온 책은 많이 안 읽었지만 학교 다닐 때 한승원 이름 붙은 책은 전부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들 딸이 모두 작가고...

순오기 2009-07-13 14:47   좋아요 0 | URL
님은 장흥에 오고 나는 완도에 가고~~ 그래야겠어요.
교장선생님은 그날 완도 다녀오셨다고 막 자랑하시던데요.^^
나도 예전에 단편 몇 개만 읽었는데 이 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읽게 됐어요.

하늘바람 2009-07-1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진 곳이네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았겠어요 저 시기 인생의 지침이 되는 분 한분을 잠시만 만나도 크게 남지요.
저도 저 아이들 속에 한명이었으면 하네요

순오기 2009-07-13 14:48   좋아요 0 | URL
음~ 저 아이들 속에 한 명이었으면 한다니 고마운데요.
학생들 감상후기를 보니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듯해요.^^

hnine 2009-07-1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전, 서울 살 때 장흥에 내려가본 적이 있는데 버스 타고 한참을 갔던 기억이 나요.
노년에 두분이 도시와 멀찌기 떨어져 사시면서, 이렇게 여러 어린 손님들이 찾아주신다니 반갑기도 하고 맞이하는 마음이 분주하셨을 것 같아요.
<아제아제 바라아제> 영화로도 만들어졌었지요. 강수연이 여승으로 출연했던...지금 청소년들이 그 영화를 보았을까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영화 개봉 당시에는 청소년들은 관람 불가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빗속에서 우산 받쳐 들고 배웅하시는 모습에 눈길이 자꾸 가네요.

순오기 2009-07-14 09:43   좋아요 0 | URL
장흥을 가보셨군요.
저분들처럼 살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듯해요.^^
우산을 받쳐든 모습~~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지요.

BRINY 2009-07-1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이 여학생들이군요...남학교는 정말 정서적으로 너무 메말랐어요ㅜ.ㅜ 부럽습니다.

순오기 2009-07-15 01:21   좋아요 0 | URL
남학생은 다섯 명이었어요.
여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았죠.^^

라로 2009-07-1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문학기행이었네요~.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친필 사인과 함께 참석한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것 같아요.
언제나 멋진 이벤트를 마련하시는 언니를 본받아 저도 대전에서의 이벤트를 함 생각해 봐야할듯,,,^^;;;(팁좀 주세요~.하하하)

순오기 2009-07-18 00:15   좋아요 0 | URL
멋진 문학기행이었어요.
대전모임~ 개성있는 나비님인데 어련하시려고요.^^

꿈꾸는섬 2009-07-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산토굴, 가보고 싶었는데 사진으로 위안을 삼으며 만족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가보고 싶어요.^^
달 긷는 집, 너무 인상적이에요.

순오기 2009-07-18 00:15   좋아요 0 | URL
기회되면 꼭 가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