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매우 불편했다.
자살한 딸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확실히 피해를 겪었고 이 가정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잘 알 수 있지만… 그리고 마리코를 죽일 뻔 했던 미친 여자 역시 너무 아프지만 이 모든 게 나가사키 원폭 때문이었다는 귀결은, 그들의 고통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 우익 영화 같았다. 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우리도 힘들었어, 원폭 이야기 하는 건 우익 아닌가? 일본계 영국인이어도 이렇게 일본 생각해주는데,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도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버리고 일본에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며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는 나라의 사람이 영국인으로서 일본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이런 글 쓴 거 자체가 그냥 슬프다. 일본의 재일교포 작가들은 소설에 자이니치 이야기가 없어도 에세이나 다른 글들 보면 정체성 문제에 힘들어하는데.
근데 이런 이야기 했다가 욕먹었지. 분명 원폭도 아픈 거라고. 그리고 일본인 입장에선 남의 나라, 다른 식민지 문제보다 자기들 생존문제에 대해 더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그렇겠지. 그래. 뭐. 다 내 잘못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 느끼기엔 소설이 너무 아름답고.
또다른 잔인한 진실. 미국이 잘못했지만, 원폭이 없었으면 우리가 해방될 수 있었을까? 잔인하지만 원폭이 슬프지 않다. 김기덕 감독의 죽음이 어 죽었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 처럼 슬프지 않다. 그들의 짠내 이전에 우리네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슬퍼서. 안 보인다.
그 시절에 중고등학교 다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면 분명히 창씨개명 했던 가정이라고. 우리가 지금 싫어하는 친일파를 모두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끔찍하다. 집안에서들 쉬쉬하고 있을 거다. 해방후 다시 원래 성으로 호적 고쳐놓은 거 우리 할아버지처럼 말씀 안하신 분들도 많겠지. 우리가 모른척 묻어둔 너무나 아픈 진실들 모두 다. 그런 감정이다. 외면. 외면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다.
한번만 원폭 피해자에게 따뜻한 마음 가질 수 없겠느냐고? 그러기엔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다. 사실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오래 살 생각으로 모든 걸 만들어놓고 갔다는 말도 다 믿을 수 없다. 그런 식민사관으로 차별과 황국신민 동화정책과 우민화가, 이지메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요즘까지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동정하며 읽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