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ミック版 告白 (單行本(ソフトカバ-))
木村 まるみ / 雙葉社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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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너무 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미성년자 보호법이 뭘 보호하고 있는가 의심이 들 때, 그러니까 촉법소년이나 살인 강간 강도를 저지른 미성년자가 가벼운 벌을 받을 때마다 다시 꺼내어 읽어보게 됐었다. 하드커버로도 읽고 한국어 번역판으로도 읽고 코믹판으로도 읽고 다시 코믹판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다시 읽은 ‘고백’에서 모리구치는 선생으로서 애들이 죄를 뉘우치도록 한 건 아닌 거 같다. 그냥 복수한 거 맞구나.

皮肉ですね。
殺意があったAには殺せず
殺意がなかったBが愛美を死なせてしまった。- P67

2人に自らの罪を認めさせ
命の大切さを実感してほしい。
自らの犯した罪の重さを知り
それを背負って生きてほしい。- P68

命は重いですか?
本当に誰の命も?-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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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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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쉬
늘 비어있다가 내가 대출하면 꼭 예약 걸려서 숨도 못 쉬고 책 읽고 체하게 되는 이런 상황.

에피소드 중에 백석이 겪는(겪었을) 어떤 상황이 백석의 싯구와 버무려져 나오는 장면들은 상당히 안 섞여서 만약 평점을 나쁘게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부분이 어색하다고 해야할까? 아직 간이 속까지 배지 않은 오이소박이 같아서 좀 눈에 걸려서 좋게 못 읽었노라고 할 거 같다. 그런데 이게 못 써서가 아니라 백석 특유의 문체와 김연수 특유의 문체가 다르기 때문인 거 같다. 너무나 오랜 시간적 거리도 있고. 그렇지만 김연수작가님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시인이자 소설가이기에 그런 부분 외의 부분은 상당히 좋았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밑줄을 쳐야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단어들도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한듯한 단어들. 물론 나는 아직도 여전히 바이러스 대신 ‘비루스’ 비슷하게 쓰는 게 맞는 거 같다. 우리 나라를 둘러싼 나라중에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나라는 우리 뿐이라 어색하게 느껴졌다. 러시아어 표기는 출판사마다 다르니 병기해주는 건 좋았다. 그루파 이런 건 러시아어 몰라도 의미 유추 가능하니깐 병기할 필요는 내 보기에도 없어보였음. 근데 문학동네 식이라면 꺼삐딴 리도 카피탄으로 표기할 거 같단 생각은 들었다. ㅎㅎㅎ

그리고 혜산시의 삼수갑산 내용이 나와 너무나 반가웠다. 험지고 유배지였으나 우리 외할아버지 말씀 들어보면 그다지 각박한 곳은 아니었다는데. 소들을 아침에 백두산 고원에 풀어놓고 저녁에 데리고 들어가는데 소들이 자기 주인 다 알아서 따라간다는 말과 무스탕 입은 사람들 보면 삼수갑산에선 가죽은 집 없는 거지들이 뒤집어 쓰고 다니는 거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오징어 순대 아바이 순대 좋아하는 거 보시고는 아바이가 할아버지란 뜻인 거는 아냐고 하시던 거. 그리고 새터민 선배들이 영어 공부에 어려움 느끼던 거, 정권이 바뀌고 신변보장 안 될까봐 두려워하던 거, 의외로 새터민 중에는 보수가 많았던 거, 그런 것도 생각난다. 그거 보면서 이념이 다르면 확실히 북에서 살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문학에 주체나 사상이나 그런 것들을 넣으면 계도는 될지 모르겠지만 후져지는 작품들을 여러번 봐 왔기에 나는 예술이 사회참여적어야 한다 현실을 반영해야한다 일견 맞는 말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고 다 좋은 말이지만 예술가가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사회참여적이려면 대박 거물급, 세기의 천재, 대문호여야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걸까, 뭐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그리고 남의 사생활 참여(침해)적이기도 참 쉬운 거 같다.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독자인 나로서도 너무 자주 헷갈리고. 어쨌든 일단 예술성이나 지키고 현실을 불편하게 만들든 말든 하는 거지 글도 못 쓰는데 예민미 쩔면 난 잘 못 읽겠음. 근데 매번 총회하고 자아비판하고 자백위원회와 고발로 대체 뭘 지적하는건지 아 읽는 내내 고구마였다.
월북하여 숙청/좌천만 되고 쓰는 삶을 살 수 없었던 작가들이 안타까웠다. 구인회 회원님들 다들 월북 안하시고 참전후 무사히 살아돌아오셨다면 서울에서 천변 풍경 바라보고 무과수 제과 앞에서 제비다방 추억하며 학림다방 빵모자 할아버지들과 계동 소풍 다니시지 않으셨을까. 마음껏 쓰고 태우고 쓰고 태우는 삶이라니 너무 절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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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은 매우 훌륭하고 좋다. 이 세 권은 사주 명리에 대한 시각을 세팅하는데 훌륭한 책이다. 그런데 이론서로는 다른 책을 더 보면 좋을 것 같다. 다른 책 보면서 함께 보면 좋은 것 같다.
나의 경우 주로 대유학당의 대산 선생님 책으로 기본을 보고, 유튜브나 블로그들도 종종 보는 편인데 블로그 참고 하는 것이 제일 어지럽다. 얼굴 내놓고 하는 게 아니다보니 정말 어이없는 사람들도 많고 잘 골라서 봐야 할 거 같긴 하다. 유튜브도 다 들으면 사람마다 말도 제각각이고 좀 그런데 시작은 기준점으로 놓은 거 하나만 보고 시작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여러번 보고+ 이것저것 많이 보고, 또 경험을 쌓고 편견을 조심하고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에 주의하며 배워야 할 것 같다. 알면 알수록 단호박으로 말 못하겠다.
그 기준점을 원문이 같이 있는 해석본 책으로 삼는 게 안전한 거 같긴 하다. 물론 그 중국원전도 선생님들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고 서로 오역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사실 나도 정신차리며 보려고 하는데 중문학과 출신도 아니고 당대 사용된 말의 의미라고 해야하나, 어휘의 시대성까지 고려하고 읽을 처지는 아니어서 일단 선생님으로 정한 사람 말을 따른다. 원문을 안 보고 쉽게 설명해주는 유튜브나 책을 찾으면 원 의미와 무한정 멀어져서 꼼수 위주로 기억하게 된다. 그러니깐 유튜브나 책에서 신세대 선생님이 일러주는 단편적인 것으로 오행 전체의 이미지부터 잘못 씌어지니까(거기다 선생님이 설명해준 원 이미지와 내가 설명을 듣고 갖게 되는 이미지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 원문/역/해석본을 화딱지나거나 졸립더라도 끼고 보는 게 아무리 취미로 배우는 거라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거 같다. 거기다 왜 그땐 그랬을까 늘 생각해보기. 무작정 외울 게 아니라. 왜 이 글자를 이렇게 설명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보기. 그러면 공부가 좀더 풍부해지는 거 같다. 단기간엔 실력이 오르진 않아도. 얼마전에 신수를 단식 사주로 풀어놓은 블로그를 보고 식겁했다. 몇달이나 배우고 시작한 건진 몰라도;; 일단 내게 그 링크를 보내준 지인에게는 차라리 만원-오만원 정도 하는 서로 다른 데서 몇 번을 보고, 그 이야기를 종합해서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천막 말고. 자기 이름이랑 가게까지 내놓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자기 공부에 스스로 신뢰가 있는 사람들일테니까. 아무리 사기꾼이 많아도 점사든 명리공부하시는 분 해석이든 세번 봐서 세번 다 사기꾼 만날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주 하나 봐줄 때마다 기가 엄청 빠지기 때문에, 오천원이나 종합적으로 다 보는데 만원 이러면 퀄리티가 좀 떨어질 거 같다. 십분 봐준다고 하면 그렇게 인건비 계산할 수도 있겠지만. 책임 안진다는 느낌도 좀 들고;; 좀 비싸도 상담시간 길고 서로 입 꾹닫는 게 아니고 자기 상황 브리핑이랑 질문 정리해가서 꼼꼼하게 물어보고 그런 준비된 자세로 사주보러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뭐 암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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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
임상철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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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과제로 만나봤던 책인데 제목이 이거였구나. 카드뉴스는 제대로 못 만들었고 시험도 떨어졌지만 책은 정말 재미있게 꼼꼼히 잘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나는 내내 춥긴 한데 그래도 뭐 최악도 아니고 이렇게 견디는 거다. 조만간 나도 괜찮아지겠지 뭐.
이분도 계속 그림 그리는 취미 버리지 않고 사셨으면 좋겠다.
사실 별은 상당히 무의미하다. 이분 인생과 이분 글을 판단할 자격이 있나. 그냥 나는 이분이 또 그림을 그리시고 책을 내시고 하셨으면 좋겠어서 그 기다림만큼 별 하나를 뺐다.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더 아프지도 말고 병원도 잘 다니고. 그러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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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nster Calls: Inspired by an Idea from Siobhan Dowd (Paperback) - '몬스터 콜' 원작
Patrick Ness / Candlewick Pr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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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신경 안 씀. 근데 비공개할까는 고민중)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었다.
기적을 말할 때마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도 느끼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실을 말하는 책을 발견한 기분이다. 아동문학에서. 저 어두운 그림들 속에서. 내내 울면서 읽었다. 인생이 얼마나 …같은지. 착해서 먼저 데려갔다는 둥, 안 믿어서 벌 받는 거라는 둥, 호상이라는 둥 개소리 나불대는, 마치 욥을 비난했던 …들과 다를 바 없는 …들한테 읽히면 좋겠다.

오랜 투병으로든 갑작스러운 사고로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또 한 켠으로는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거는 무척 자살을 닮았다. 죽음 자체가 좋아서, 죽음을 찬양하고 예찬해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 이 상황을 견디기엔 내가 너무 괴로우니 벗어나는 방법으로 택하는 것이다. 그건 당사자에게도 그렇고 주변에서 병간호를 해야 하는 사람도 그렇고, 그 자손 아이들도 그렇다. 정말 지친다.
또 언젠가는 사지가 사라지기 전에 마음껏 쓰자는 마음으로 그림과 낙서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나도 포기하고 있었던 건데 사람들은 생존 의지로 보았지. 고통을 평생 겪을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고 다 잘라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생존 의지라는 건 안 아파본 사람들의 개소리라는 걸 깨달았고.
진짜 목숨 끊어지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그 고통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야만 죽겠지? 의지가 있어 살아지는 게 아니고 기적이 있어서 살아남는 게 아니다. 그걸 넘어서는 고통을 감당하고 결국 기꺼이든 어쩔 수 없이든, 죽는 쪽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 아프다.
환우 몇을 보냈다. 나보다 말도 안 되게 어린 환우도 갔다. 새벽에 갔다고 호상이라는 사람들을 제발 지옥에나 가라고 생각하곤 한다. 고통-공포-고독사일 수도 있는데. 정말 아무도 없는데 ‘죽을 거 같다’는 기분은 정말 극도의 공포와 고통이란 말이야. 고통 속에서 지옥같은 시간을 지나 죽었을 텐데. 내가 잔다고 생각하는 사람 옆에서 살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숨이 멎는 고통에, 몸에 갇혀 버렸을 때도, 무섭단 말이야. 너무나 고독하고 무섭단 말이야. 그게 왜 호상이야. 아니면 그게 왜 벌이야. 너무하잖아. 다 진짜 너무 잔인하잖아. 위로를 하고 조의를 보낼 거면 똑바로 해. 대체 왜 호상이라고 하고 천사를 먼저 데려갔다고 해 그런 정신 놓은 신이 세상에 어딨어 아예 태어나게 하지를 말지. 대체 뭘 믿는 거냐고.
조용히 잠들듯 가셨다며 왜 아름답게 그려? 싫다.

나보다 더 열심인 사람은 죽었는데 나는 살았다? 이게 기적이라고? 아니지. 그런데다 기적이란 이기적인 단어좀 쓰지 말았으면. 늘 생각해. 삼풍 때도 대구 지하철 때도 세월호 때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기적이라는 말 쓰면 죽은 사람들은 뭐가 돼? 그럼 그사람들에겐 왜 기적이 없었는데? 기적이라는 것이 주어지는 거라면 받은 사람은 왜 받았고 못 받은 사람들은 왜 못 받았는데? 설마 세상 얼마나 살았다고 어린 애들한테 까지 죄 받았다고 할 거야? 명줄 긴 죄인들은? 천사라 먼저 데려갔다고? 그 천사가 언제 데려가 달랬어? 개소리 작작 좀. 사실은 비열한 거잖아. 아 난 아니라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기적이다. 기적은 늘 당신에게만 오는 괴랄맞은 것이니까. 인과를 따진다면, 당신 같은 사람이 기적을 경험하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일 수도 있잖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늘 드는 반감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인데 이 책에선 이런 반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악몽과 괴물로 불러내고, 모든 걸 놓고 싶다는 감정을 인정하고 나를 떠나는 이들을 보내기 위해 견딜 수 있도록 해준다.

And he also knew he was going to get through it.
It would be terrible. It would be beyond terrible.
But he‘d survive.
-204쪽.

이 감정이 얼마나 거지같은 감정인지. 그러나 견뎌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 있어서 마음이 매우 슬프고, 덜 괴로웠다.
육하원칙에 따라 꼬치꼬치 끊임없이 병과 사고 원인이나 사인에 대해 들춰내는 집요하면서도, 내가 아니라서 가할 수 있는 폭력적이고 병리적인 시선을 코너에게는 차라리 거두어버리고 안 보이는 사람으로 처리해준 것도 좋았고, 남에게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괴로울 수 있다는 점도 알려 주어 좋았다. (물론 안 보인 게 아니라 무성한 소문+쉬쉬 일 수도 있지만, 나는 투명인간에서 불투명 인간이 될 때, 이해와 소통의 여지 만큼 소문이나 억측의 여지가 커지는 것 같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절대, 다행이나 불행같은 운도, 기적도 아니고 하물며 삶이라는 것 자체가 랜덤한 요소가 있다는 것도 다루는 거 같아서 좋았다. 나고 죽는 건 절대 상벌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괴물이 그걸 말해주어 좋았다. 다소 거칠고 잔인해 보이지만 결국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게 해 줘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괴물은 코너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 것이다. 이따금 그 때 뒤지지 그랬냐는 자책을 여전히 하겠지만 그래도 멘탈 붙잡고 있을 땐 죄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누군가가 너무나 살고 싶었던 그 순간을 아까워 하는 마음으로, 그게 안되면 반성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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