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9

서른 중반에야 요리를 시작했다. 나머지 식구들이 요리를 잘하고 늘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이 푸짐하게들 만드는 편이라 요리할 필요를 못 느꼈다. 집에 음식이 없을 때는 그냥 하루종일 굶는 게 편했다. 배달음식도 의외로 시켜먹어본 적이 없다. 밖에선 주로 외식을 했다. 그러다 아프고 나서 식이요법이 중요해지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 시작하면서 처음 본 책이다. 이 책의 타깃 독자와 타깃 독자의 환경과는 조금 달랐지만 내가 읽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일단 나는 성인 여성이고, 주말이나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이 모일 때마다 주로 엄마보다 아빠의 요리를 먹었다는 점이다.
상관 없다. 언젠가 어른이 될 청소년들에게 요리를 통해 자립과 인생을 배우도록 한다는 이 책의 목적은 이미 성인이 됐지만 끼니 고민을 한 적 없는 내게 딱이었다. ^^;;

삼십년 외식경험이 어디 가진 않는지 나는 다행히 간을 잘하고 식재료의 맛을 빨리 배워 금방금방 요리 실력이 늘었지만 여전히 칼질을 못하고 재료손질에 쥐약이고 달걀 프라이나 지단을 못 부친다. 가장 인상깊던 오은 시인의 ‘김밥’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단 대신 스크램블드 에그를 해서 우엉 조리고 맛살 햄 볶고 시금치 데쳐 무침하고 단무지 썰고, 해도 밥과 김을 말아 여미는 손끝이 참 야무지지 못하다. 요즘은 밥빼고 베트남 월남쌈에 싸먹거나 아예 김밥 재료 다져놓고 달걀 볶음밥을 해먹곤 한다. 감자탕이나 삼계탕은 끓여도 여전히 김밥을 못 한다.
요즘 김밥(을 빙자한 볶음밥) 만들어 먹다 생각나서 다시 꺼냈다.

아마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평범한 남자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소년들은 엄마가 없는 동안 살아남기 위해 음식 만드는 법을배워 본 적도,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위해 요리를 해 보라는 격려를 받아 본 적도,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와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느껴 본 적도, 이것이 한 사람의 어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기 때문 아닐까요? 소녀들에게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롤모델이 되듯이 일상을 직접 책임지는 남자 어른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다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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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3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요리에 시작은 계란 후라이 부터!
오! 스크램블 에그 넣은 김밥 칼로 썰지 않고 먹어야 할것 같지만 조리 과정이 쉽고 맛날것 같아요.
페르소나님 요리! 응원합니다. ^.^

Persona 2020-12-13 00: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달걀을 잘 부칠 수 있을 때까지 고군분투하겠습니다! ㅋㅋㅋ
 
[eBook]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엘리엇 부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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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된 문장들로 한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아닌 인문공간을 사랑한다는 작가의 인문 공간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좋은 문장은 많았고 이어지는 말도 많았지만 마음에 남는 게 없어 애석했다. 수많은 책과 수십년의 세월 속에 명문장 하나 남기면 성공한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반대는 꼭 그렇게 볼 것이 아닌 모양이다.
제목도 시도도 인용된 참고문헌도 모두 참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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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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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은 작가나 독자의 수준을 강제로 끌어올려주는 것 같다.소설의 기품을 정점에서 보여주는 작가 같다. 정보량이 많지만 난해하지 않고 가독성이 있고 다 읽고 나면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한가지로만 딱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리고 등장하는 여성들이 과민한 불편러로 읽히지가 않는다. 나는 여성들이 히스테릭하거나 불편러로 등장할 때 그 소설을 사회적 구조 안에서 좌절한 상태의 여성이 태연할 수 있겠느냐는 입장으로 읽긴 하지만 계속 나라면 안 그럴 거 같다면서 동의를 못하거나 집중을 못한 채 읽을 때도 많은 편이라 그런 거 없이 읽히는 소설은 일단 호감이다.
결말도 구조도 클리셰나 신파가 없다.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셜리 잭슨이나 캐서린 맨스필드, 케이트 쇼팽 같은 옛날 단편소설 대가들의 고전적인 방식의 구조와 서스펜스가 보인다. 근데 그게 후지지 않고 더 멋지게 발전시킨 구조. 이런 스타일은 따라하려고 해도 따라하기 어렵겠다.
말장난 같은 대사는 즉각적으로 와서 박히기야 하지만 읽다보면 (유감스럽게도 내가 반대급부이거나, 작가가 예상치 못한 약자, 소수자라 싸잡히거나 해서) 상처도 받고 읽기 싫어질 때도 있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신중하게 쓰인 것 같아서 그 점도 좋다.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예의 바르고 아름답다. 화려한 건 아니지만 품위있다.

그런데 이 책을 빨리 읽어치운 건 아무래도 후회스럽다. 이 다음 읽을 책들을 호의적으로 읽을 자신이 사라진다. 내가 그 작가들의 고생을 무시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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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독서하며 메모한 노트.

스포가 다분하다..

「음복」
나도 토마토 김치찌개, 토마토 고기 볶음, 토마토 달걀 볶음 등등 토마토 넣어 자주 먹는데. 이 단편을 읽고 나면 토마토 요리는 그냥 내가 해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독한 시집살이의 유물.
고모는 악의적인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점점 진실을 알고 있는 중심에 선 인물로 변모한다. 연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철저히 따로따로인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주는 여성의 모습. 이해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묶어놓거나 해체하려하지만 실은 불편한 진실을 꾸준히 알리는, 그래서 어쩌면 다음 세대만큼은 굴레를 벗어나게 만드는 선배여성의 존재들. 그리고 가부장제 안에서 서로 공모하고 의심하고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 하지만 이 구도 역시 뒤집어진다.
모든 반전이 좋았다.
어릴 때 이 비슷한 일 사이에서 남자어른들은 정우처럼 알고 싶지 않아 모른 척 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그런 상황을 목격할 때마다 어린 나는 ‘남자들은 꼭 뭘 몰라. 꼭 뭐 하나를 빼놓고 다 아는 것처럼 굴더라.’라고 할 때 모인 집안 여자들이 우스워하면서도 내 입을 막았던 것이 생각난다. 어린 아이로, 외부인으로 볼 땐 할아버지가, 삼촌이, 아빠가, 코믹했는데, 가사일에 동참하는 순간 전혀 코미디가 아닌 그런 일들이 자라면서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우리집의 기제도 비슷하다. 남편을,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제발 좀 알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보이지 않는 존재들인 우리 선에서 끝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은 끝까지 모르도록,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냥 그런 것이 떠올랐다.

「가원」
주인공은 자신이 외할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하며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외할아버지를 이야기하지만, 외할아버지가 그런 존재로 있기 위해서 외할머니가 말레피센트처럼, 악역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여자의 이름을 딴 집과 평생 보살핌이 필요한 남자와, 여성의 노동으로 유지해 나가는 집. 남편과 남편 대신 관리해야 할 집과, 이혼한 딸과 외손녀 부양까지 일군, 여성.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을 의사로 키운외할머니를 다독이며 서로 연대하자 으쌰으쌰, 하는 신파를 보여주는 대신, 손주 학원비와 집 판 돈에 손댄 부양능력 뿐만 아니라 염치도 없는 외할아버지를 계속 추억하며 외할머니에게 요실금 팬티가 “충분히 축축하지 않다”는 미운 말을 하는 식이다.
나는 화자가 외할아버지 박윤보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 같다. 그리고 외할머니처럼 그 사랑을 지켜낼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살지 않아도 전혀 상관 없다. 외할머니가 어떤 삶을 선택하든 손주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키웠으니까.

「손」 일단 이 단편은 평정심을 잃고 읽었다. 이런 영악한 아이들을 몇 번 만났다. 아이건 어른이건 자기 말 한마디로 자기 세상에서 쫓아내 없앨 수 있다고 믿어서 자기가 유리하도록 거짓말하거나 부풀리는 아이들. 어른이라도 자기가 믿는 양육자보다 약한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들. 그러나 게임처럼 킬한 대상이 입는 실질적인 데미지를 모르는 면에서 ‘순진한’아이들.
그리고 부모는 자기아이가 늘 천사인 줄 안다.
그 애들이 실제로 얻는 혜택은 크지 않을 때도 있다. 선생도 적당히 맞춰주는 척하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스루하고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가르치기 어렵다. 진실만을 말할 것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가르치는 위치 자체가 위계를 획득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이기 쉬운데. 거짓말 하지마, 제발 내 말 좀 들어, 라고 한다면 뒷 말만 남아 폭력을 가해한 선생이 될까봐 말도 함부로 못하겠다. 그러다 선생은 그 애를 적당히 지나쳐 다른 애들을 더 챙기게 돼 있고 소설에서 처럼 양육자에게 진실을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다. 선생이기 이전에 사람인지라 나쁜 선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교육에 실패했던 나에 한한 소리이며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좌절을 늦게 경험한 아이들은 세상과 원만할 필요가 있다는 걸, 나보다 더 강한 권력자가 있음을, 뒤늦게 배우려면 또 늦는다.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를 가르치고 돌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상한 점은 현실에서 이런 모습이 아이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를 ‘미친년’으로만 읽을 수가 없다. 화자가 보고 들은 세상이 전부 잘못은 아닐 거라서. 어렵다.

「서우」 반전에 넋 놓다가 내가 뭘 놓친 게 있나 미칠 지경. 이것도 택시 범죄에 몰입하느라 주인공의 계급(도시)에 대한 시각이나 어릴 적 선생의 행동들, 오해나 피해, 가해 등등에 대해서는 스윽 지나간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로 나오는 일반적인 이야기와 달리 여성들만 등장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스릴러이리란 생각보단 후일담이 아니겠나 함부로 생각하고 읽어댄 것이 큰 실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야. 여성들만 등장하는 소설에서 왜 가부장제의 위계와 폭력을 보는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있어서일까. 왜 여전히 남성이 무섭게 읽히는가.

「오물자의 출현」 아무리 읽어봐도 독특하다. 오물자라는 단어. 다른 여러 관계자들의 언급을 레퍼런스로 한, 연예인 케이와 김지우, 이마리의 서술을 통해 자살한 인플루언서 김미진에 대해 조망하는 형태의 소설로 월간지의 가십 기사 같은 느낌이다. 수없이 많은 가면을 써서 유지하고 존재했던 생명과 그녀를 보는 굴절률이 제각각 다른 렌즈들과 그녀의 마스크와 렌즈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었으며, 오히려 더 키워졌던 균열들이 다 읽고 나서야 보이는 듯 하다.

「화이트 호스White Horse」
Taylor Swift -White Horse
https://youtu.be/D1Xr-JFLxik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어쩐지 위안이 되는 단편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블로그에 그냥 리뷰를 남길 때에도 언뜻언뜻 아무도 배려할 생각 없이 이기적으로 날선 진심을 내비칠 때가 있지만 보통은 그래도 그 글 뒤에 쓴 사람, 손 본 사람을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여간 허접하지 않으면 허접하다는 말을 잘 안하려고 하는 편이다. 글 뒤에 누군가가 상처받을 것을 생각해서. 혹은 내가 잘못 이해했을까봐 두렵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마음에 들지만 작가가 바라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생각에서 좋다고 하게 될까 봐. 대체로 책을 읽으면서 써 내려간 독서노트와 별개로 리뷰를 쓴다. 독서노트는 커녕 리뷰는 거의 비공개였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독서노트만 비공개로 쓰거나 노트에 메모하거나 하고 리뷰는 다시 조심스럽게 써보기로 했다. 늘 다짐하지만 읽다보면 늘 감정과잉 상태로 빠지는 것 같긴 하다.
북플을 시작한 게 위험한 거 같다.
흰 말이 그리던 님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음에 늘 품던 동경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언젠간 스승을 떠나야지 나도 스승처럼, 혹은 그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생긴다.


「카밀라」
봉고차 도시괴담은 내게도 익숙한 일이다. 나는 불체자로 보여 납치될 뻔한 적이 있다가 선진국 시민으로 오해되어 검은색 스타렉스로부터 벗어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책속 괴담은 더 무서웠다.
탄천이 소설집에서 두번째로 등장하는데, 만약 우리 동네 지명이 있었다면 무척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천은 어디에나 있다. 탄천의 의미가 확장되면 아마 독자들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동네의 가장 흡사한 부분을 자동적으로 떠올릴 것이다.

「해설」

「작가의 말」

그래, 고모가 아니면 누가 할머니를 이해하겠어. 고모가 할머니를 이해해줘야지.

그런데 말이야.

—음복.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밥값 못하는 사람이 아니야."

—가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석당이 가원을 박윤보에게 물려준 것도 아니었다. 대체 ‘아름다운 정원’이 무엇을 보살펴준단 말인가.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그러나 그날은 몰랐다.

—가원

하지만 할머니.
충분히 축축하지 않은걸.

—가원

"야."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응."
"진짜야."
"뭐가."
"나는 지금껏 낮잠이라는 걸 자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가원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가원

하지만 시어머니는 낮에 애를 재우고서 이장에게 줄 마른반찬이나 말린 시래기, 고구마 말랭이 같은 걸 만들었다. 밤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깨어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화가 났다. 시어머니가 민아를 봐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이 시골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러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오늘 또 민아를 재운 것이다.
—손

누구인지 영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가 느닷없이 내게 툭 말을 건넸다.
"뭐해?"
순간 묘하게 섬뜩했다. 분명 내 딸의 목소리였지만, 마치 누군가의 말을 대신 하고 있는 듯했다. 한동안 그 기분이 가시지 않았고, 솔직히 좀 두려웠다.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것이 옳은 걸까.

—손

"선생님, 이상하시네요. 왜 자꾸 무슨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씀하시고 그러세요."
—손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매번 아내가 내게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물자의 출현

그 와중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익명의 행위야말로 진짜 김미진에 가까운 삶이었다. 그것이 비극이었다. "본명으로 산 삶은 오직 연기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물자의 출현

자개 조각 수백 개가 그녀의 온 몸에 흩뿌려져 있었다.
— 오물자의 출현

왜냐하면 우선,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뭘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의식과잉이라는 말을 들었고, 다음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독서 목록을 감추기 위해 이선아를 이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또 그다음에는 과대평가된 이선아를 좋아하는 걸 보니 안목이 의심스럽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흠.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책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게 됐다. 그러자 또 이런 말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 교묘한 전략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이후 나는 정말로 책이나 작가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상처를 입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내가 전략적인 인간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껏 들은 말 중 가장 그럴싸해 보였다.
아무튼.
— 화이트 호스

언젠가 내가 또다른 컵케이크를 구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쓰겠지. 쓰다보면 또 쓰게 되겠지.
—화이트 호스

내게 사랑이란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오래될수록 의미가 있었다. 카밀라에게 사랑은 새로운 순간을 찾아내는 거였다. 설렘과 긴장감을 느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
…(생략)…
자신이 끝없는 관심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동시에 그녀는 내가 그걸 쉽게 견딜 거라고 ‘무자비하게’ 믿었고, 이어 나를 위해 친구들을 떠나기로 ‘아주 쉽게’ 결정했다. 그녀는 낙관했다. 자신이 그 모든 걸, 그러니까 타인의 관심과 애정, 끊임없이 그녀를 찾는 목소리, 그녀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눈길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지긋지긋해’하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카밀라

지난 일 년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지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그녀가 나를 보며 웃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미아가 살아 있다면, 그래서 지우의 사랑이 지속된다면, 그녀가 원하는 한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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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와서 북플로 놀기만 했다;; 옛날 읽은 책들도 생각하고 참 책 많이 안 읽었다 싶기도 하고. 생각나는 게 더 없기도 하고. 근데 이게 다 이번달 읽은 책으로 잡혀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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