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19세기 프랑스 여러 분야의 풍속을 그대로 담은 발자크 적 리얼리즘 소설인 인간극은 세밀하고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등장인물의 생김새부터 (발자크는 관상이나 골상학을 믿는 게 틀림없다.) 성격이나 자라 온 환경, 사건의 전개 등을 독자들의 상상력이나 해석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자크의 소설을 읽기 쉽다고 착각한다.

 

어둠 속의 사건이 그랬다. 프루스트를 읽고 난 다음 선택한 발자크의 소설은 프루스트에 비해 은유와 주어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길게 쓴 문장이 없어 술술 잘 읽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0페이지쯤 읽었을 때, 노트를 가져와 사건과 인물에 대해 정리하며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격변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과 변화에 순응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대조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그 당시 사회, 법률, 재판, 정치와 연결시킨 발자크의 글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혁명의 결과엔 늘 실망이 따르지만, 공통적으로 그 목적은 오랫동안 누려온, 부당하고 불평등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왕권과 귀족의 권위는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으며, 그들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거나 약탈되었다. 왕족과 귀족들은 망명자가 되어 왕정복고의 기회를 노리고, 부르주아는 국가로부터 귀속재산과 귀족의 지위까지 사들인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역사의 전반에 등장했지만 그들은 돈과 함께 옛 귀족이 가지고 있던 명예나 지위도 원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부르주아인 마르셀이나 스완, 베르뒤랭 부인, 오데트가 포부르 생 제르맹지역의 살롱에 가기를 원했고, 결혼을 통해 귀족의 작위를 얻는 데 집착한 이유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돈만으로는 진정한 품위를 얻기 힘들어서였다. 부르주아(시민계급)는 가문의 전통을 상징하는 공작이나 백작, 후작이라는 지위, 이름 중간의 를 사용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새로운 역사와 권력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한 밑천 잡은 고리오 영감이 그의 딸들에게 돈을 쏟아 붓는 것도, 귀족 숭배자이자 왕당파의 오노레 발자크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에 를 넣어 오노레 드 발자크가 된 경우도 똑같은 이유이다.

 

 

공드르빌 영지의 드 시뫼즈 후작 부부는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이었던 독일의 귀족들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1790년에 재산을 빼앗기고 단두대에서 참수된다. 영지는 국유재산으로 환수되어 다시 매각되는데, 나폴레옹에 의해 국가참사회 의원으로 임명되고, 오브현의 실세인 말랭이 비밀리에 사들인다. 말랭은 프랑스 혁명이후 격변하는 시기에 12번의 정부가 바뀔 때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인물이다. 어둠 속의 사건에서 발자크는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인물(나폴레옹, 푸셰, 탈레랑, 시에예스)을 함께 등장시키는데, 말랭은 푸셰의 페르소나로 보일 정도로 푸셰의 삶을 똑같이 답습한다.

 

드 시뫼즈 후작의 쌍둥이 아들과 그들의 사촌 로랑스 드 생시뉴는 나폴레옹 정권에 반대하고 왕정복고를 위해 투쟁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열정이 넘치고 의리가 있지만,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주위를 둘러보는 데 실패한다. 혁명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계속 누려온 기득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민중이 고통 받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지키고자 하고, 돌려받기 원한 것은 그들의 재산과 권위이며,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의 명예인 것이다.

 

로랑스 드 생시뉴는 그 시대 여성답지 않게 당차고 용감하다. 발자크의 표현대로 로랑스는 오연(傲然)하다. ‘남성적인 결단력과 금욕적인 강인함(p.74)’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과 가문,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나폴레옹의 암살을 응원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린 그들의 사촌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나폴레옹을 만나러 위험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폴레옹에게 굽히며 그들의 사면을 청한다. 자신을 끝가지 도운 미쉬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아들 프랑수아를 책임진다.

 

이 책의 표지인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절망적인 남자>는 보기에도 강렬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 위로 손을 올린 그림 속의 남자에게 당혹감과 놀라움, 절망, 불안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마 이 남자는 미쉬일 것이다. 보잘것없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미쉬를 거두어 관리인 자리까지 준 시뫼즈 후작 부인의 호의를 갚고자 그는 죽을 때까지 시뫼즈 형제와 로랑스를 위해 헌신한다. 발자크는 이 책의 초반에 미쉬에 대해 길게 서술한다. 미쉬의 미래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고, 독자는 미쉬가 정치와 법의 희생양이 될 운명임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발자크는 민중인 미쉬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그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격변하는 시기에 인간이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미쉬처럼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거나, 또는 자코뱅당의 수장이 되어 귀족을 단두대로 보내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귀족을 도울 수도, 귀족을 감시하는 경찰의 끄나풀이 될 수도 있다.

 

미쉬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역사에 발 빠르게 편승하여 민중에서 서민으로 자신의 신분을 바꿀 기회가 분명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쉬는 의리를 지키고 도덕적인 인간으로 남는 선택을 한다. 그런 미쉬같은 약자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요구되는 것은 희생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고 넘어가기 위해 한 사람 정도는 죽어줘야 하는 세상에,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선택되는 것, 그것이 미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집정정부 시대였던 1800923, 보베성에서 상원 의원 클레망 드 리가 납치되는 실제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 어둠 속의 사건은 각자의 인간이 추구하는 자신만의 신념과 정치적 선택이 격변하는 역사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와 작정하고 덤벼드는 무고적(誣告的) 악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학에서 인용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 탁월한 정치적 분석을 담고 있다(p.343)’는 알랭의 말처럼 발자크는 문학을 통해 그 당시 프랑스 사회와 정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금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그대로 담은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도출하고 분석하게 해준다. 그것이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사회가 재판을 창안한 이후로, 사법 당국이 범죄에 맞서 누리는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사회가 무고한 피고인들에게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재판은 쌍방향이 동등한 것이 아닙니다. 스파이도 경찰력도 갖고 있지 못한 방어 측은 자기 고객들을 위해 사회적 힘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무고함이 의지할 수 있는 건 논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배심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논리라는 것은 선입견을 가진 배심원들의 정신에는 무력한 것이 보통입니다. -p252]

 

[어둠 속의 사건은 인간의 삶이 역사의 굴곡과 얽혀 있어서, 인간의 운명이 결국은 역사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패멸하는 역사의 희생물로 그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342, 작품 해설 중에서]

 

소설 어둠 속의 사건은 실제 인물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조제프 푸셰를 빼놓고 읽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소설속의 인물로도 등장한다. 푸셰는 말랭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등장하는데 발자크는 이 소설에서 이중적으로 푸셰를 등장시킨다. 발자크는 푸셰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의 본성을 정확하게 알아본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실제 인물 푸셰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보나파르트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유용한 충고와 소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자신의 기량과 유용성을 증명해 보인 데 만족한 푸셰는 자신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삼가면서 만사를 굽어보는 위치에 머무르고자 했다

P.98, ‘어둠 속의 사건중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역시 푸셰를 완벽히 분석한다. 탁월한 전기 작가인 츠바이크는 혁명을 시작으로 빠르게 변화되는 프랑스 역사 속에서 기회주의자인 푸셰의 삶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푸셰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배반을 밥 먹듯이 하고, 그 누구에게라도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인간이다. 수도사 출신이지만 종교를 저버리고, 루이 16세와 친구인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리옹에서는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무수하게 학살했다. 항상 본심을 숨기고 끝가지 기다리며 마지막엔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 선다.

 

츠바이크는 푸셰를

-정치적 인간,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

-무미건조한 사무실형 인간,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사람

-현실주의자, 기회주의자

-가장 교활한 사내,

-영리한 계산의 달인

-팔색조, 집요한 모사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일념

-탁월한 정치적 지성을 가진 사람

-철면피, 무쇠 인간

-이기적이고 냉정한 사람

-남을 우롱하기를 즐기는 사람

-비도덕적 인간형

으로 다양하게 묘사했다.

 

로베스피에르는 푸셰를 음모의 괴수라고 했으며

나폴레옹은

내가 아는 정말로 완벽한 배신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바로 푸셰이다(p.297, 조제프 푸셰)”라고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조제프 푸셰는 서로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10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에게 믿음은 없었다.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언제라도 상대방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푸셰를 불신하고 화를 내며 증오하기까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푸셰에게 벗어나지 못하며 10년을 보낸다.(p.199)’.

 

푸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협박한다. 정적을 위협하기 위해 언제라도 써먹을 수 있는 숨긴 정보가 가득하다. 영화 더 킹에서 검사인 한강식(정우성)이 필요할 때 하나씩 써 먹는 수법과 같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세력과 손을 잡고 무자비하고 비열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며 물론 잘 살고 있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신념과 의리, 도덕, 인간성을 다 버리면 행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의 영역이다.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아서도 안 되지만, 그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사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사는 것, 살아내는 것은 매번 어렵다. 발자크도 츠바이크도 정확한 답을 주진 않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람, 삶을 통해 또 한 번의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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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5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하고 독서모임하신 줄 알았어요! 😹

페넬로페 2024-03-25 09:03   좋아요 2 | URL
앗, ㅋㅋ
이제 확인하고 왔어요.
그레이스님과 6년째 독서모임 하고 있습니다.
주로 고전을 읽고 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4-03-25 10:35   좋아요 1 | URL
^^

자목련 2024-03-25 13:41   좋아요 2 | URL
저도 혼자 두 분이 같이 읽으셨나, 우연인가 궁금했는데.

새파랑 2024-03-25 1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드 페넬로페‘ 님으로 불러야 할거 같아요~!! 요새 발자크에 빠진 페넬로페님~!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셔서 인지 다른 책들은 쉽게 읽으시는 군요~!!

제가 저번에 플로베르를 읽었을때도 느꼈던 건데, 발자크나 플로베르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4-03-25 13:39   좋아요 3 | URL
‘드 페넬로페‘, 영광입니다 ㅎㅎ
어찌하다 보니 계속 프랑스 소설을 읽게 되었어요.
이왕 시작한 거 스탕달과 플로베르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선 2024-03-26 0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다보니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사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친일파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파(밀정)로 바뀐 사람... 지금도 다른 남의 뒤통수 치는 사람 있겠네요 어떤 시대든 그런 사람은 있지요 큰 뜻을 갖고 살지 않는다 해도 개인으로는 부끄럽지 않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해도...


희선

페넬로페 2024-03-26 09:50   좋아요 2 | URL
네, 어느 시대고 이런 사람이 수두룩해요, 지금도 그렇고요.
희선님 말씀처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모두 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