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가기 전(시간에 쫓기니)매번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하지만 이번엔 제주43평화공원에 꼭 가고 싶었다. 제주4.3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비극이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지 않았다면 4.3과 평화공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4.3에 붙어있는 평화라는 말이 참 얄궂다. 평화롭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적 비극에 붙인 평화는 미래에만 존재할 수 있는 단어 같다. 현실은 여전히 불안하고 대립적인데, 4.3이 지향하는 평화는 언제쯤 가능할지 암담하다.

 

 

한라산의 어리목과 1100고지를 지나는 길가의 가지만 무성한, ‘희끗한 살갗이 함부로 벗겨진 것 같은나무들에 눈이 쌓인 광경을 상상한다. 무릎이 잠길 만큼 눈이 많이 쌓이면 저 나무들은 경하가 꿈에서 본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을 수밖에 없는, 경험해보지 않은 역사적 사건인 4.3에 한강 작가는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직접 겪지 않은, 바라보는 고통은 아무리 상상해도 그 아픔을 그대로 느낄 수 없다. 한강은 먼저 인선의 손가락 절단으로 인한 치료에 대한 설명으로 우리에게 통증을 만나게 한다.

 

봉합수술을 마친 인선의 손가락은 3주 동안 3분마다 아직 피가 굳지 않은 봉합된 자리를 바늘로 서슴없이 찔러주어야 한다.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신경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신경이 죽으면 수술한 위쪽 마디가 썩어버린다. 바늘에 찔릴 때마다 수술한 부위에 피가 나 더 부풀어 오른다.

 

3분마다 인선에게 가해지는 아픔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찌릿찌릿하게 몸서리가 들고 소름이 돋았다. 인선의 손가락 봉합과 통증으로 인한 고통은 4.3의 희생자와 남겨진 유족들의 아픔에 대한 너무나도 적절한 비유였다. 차가운 시체 위에 떨어져 녹지 않는 눈송이처럼, 그들에게 끝나지 않을 트라우마는 3분마다 인선의 손가락을 찌르는 바늘과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의 중간쯤에서 본격적 4.3이 시작된다. 인선의 엄마와 아버지, 외삼촌, 몰살되고 불 탄 마을,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의 유골, 총살당해 구덩이에 빠져 흙이 덮이면서도 숨이 붙어 있었던 사람, 전쟁 발발 직후 제주에서 예비검속돼 총살된 천여 명의 사람, 제주에 투입된 서북청년단, 제주의 빨갱이들을 절멸하려는 목적, 일제때 부역하던 고등계 형사, 재판 없이 수감되고 제주에서 육지로 이감된 사람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됨, 보도연맹 강제 가입과 그들의 죽음들을 집중하며, 그래도 담담히 읽다가 다음의 문장에서 결국 울었다.

 

[호송차 여러 대에 올라타기 시작하는데 줄 뒤쪽에서 젊은 여자가 아니메, 아니메,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굶주려 그랬는지, 무슨 병을 앓았는지 배에서 숨이 끊어진 젖먹이를 젖은 부두에 놓고 가라고 경찰이 명령한 겁니다. 그렇게 못한다고 여자가 몸부림을 치는데, 경찰 둘이 강보째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여자를 앞으로 끌고 가 호송차에 실었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그 말 못할 고문을 당한 것보다.억울한 징역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 줄 맞춰 걷던 천 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

-p. 266~267]

 

인선의 외삼촌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경산의 코발트 광산에서 총살되었다. 약 삼천오백 명이었다. 1960년 여름, 유족들이 모이고 위령제를 열지만, 유족회장은 5월 군사 쿠데타 직후 체포돼 사형언도를 받는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빨갱이라는 이 지독한 프레임은 언제 사라질 것인지.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기에 끈질기고도 지독한 인연에 얽혀 산다. 그 사랑으로 인연을 끊지 못하며 작별하지 않는다’. 저절로 기억에 저장되고 가슴에 사무치는 이 인연의 존재들은 행복과 절망, 고통을 나눠 갖는다. 죽어서, 살아서, 남겨져서 서로를 쓰다듬고 부둥켜안는다.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1]



 

 












43이 나에게 건넨 말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4.3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직접 4.3을 겪은 전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제주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로, 국가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그에 맞서는 시민성, 평화를 추구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방안에 대해 다양한 주제의 글이 서술되어 있다.

 

먼저 4.3이 일어난 이유와 전개, 장소, 소설 순이 삼촌, 돌담에 속삭이는, 영화 <지슬>속에서의 4.3을 말한다. 4.3을 겪고 살아난 사람들의 사연을 전한다.

 

군과 경찰이 무분별하게 제주 주민을 학살한 것의 가장 큰 책임은 이승만과 미군에 있다. 서북청년단을 제주에 투입한 것도 이승만이다. 당시 미군은 군경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다. 제주 주민을 가혹하게 학살된 것도 그들의 명령 때문이다.


-p.58, 강요배, <넘치는 유치장>


빨갱이 절멸의 목적으로 인한 무작정 검거로 형무소에 수감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은 앉지도 못하고 서 있어야만 했다.

 

[서북청년회 단원들은 믿기기 않을 정도로 잔혹한 짓을 벌였어. 이들에게 제주 사람은 빨갱이였어. 이들은 같은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빨갱이를 없앤 것이라고 자신들의 악행을 정당화한 것 같아.....결국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회 단원은 최고 권력자로부터 무자비한 초토화작전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들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거야.

-p.160~161]



4.3의 상징은 동백꽃이다.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4.3평화공원 입구에는 해체된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있다. 이 장벽은 전 세계의 각 나라로 전해졌다. 완전하지도, 좋은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사상의 대립으로 행해진 국가 폭력은 무수한 민간인을 학살했다.







향이 피워져 있는 서늘한 기운의 위패봉안실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이 널찍하고 잘 꾸며진 장소에 모셔진 죽은이들은 여기에서 평화를 찾았을까? 어쩌면 부질없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한강 소설의 제목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이곳에서 더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제목인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강연 중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문장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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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들 2025-04-0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가깝고
너무 어둡고 너무 아파서
고개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더랬죠.......
요번에 아픔 때문에 책을 읽어내는데 두 달 가까이 걸렸어요.

페넬로페 2025-04-06 01: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랬어요.
이번에 재독했는데, 처음보다 더 집중하며 자세히 읽었던 것 같아요.
인선과 경하, 제주의 접점을 새롭게 볼 수 있었어요^^

독서괭 2025-04-0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제주도 다녀오셨군요~ 이번 탄핵 때문에 4.3은 생각 못하고 지나갔네요 ㅠㅠ 저도 올해 제주도 여행 일정이 있는데 가기 전에 작별하지 않는다 읽을 수 있을지;;

페넬로페 2025-04-06 01:25   좋아요 1 | URL
이 글을 며칠동안 썼는데, 그 사이 파면이 되어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제주는 거의 10년만에 다녀왔는데 여전히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