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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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다니고 있지만 나에게 성경은 언제나 어렵다. 성경에 있는 어떤 내용은 믿음과 연결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종교와 더 멀어 보여 이해가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시편에서 다윗은 절규하듯 신에게 매달리고 기도하지만, 자신의 원수들을 죽여 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인의 선민의식이 불편해 구약보다는 신약을 더 선호한다.

 

7년 동안, 연속해서 성경공부를 했다. 1년에 한편씩 성경을 집중해서 읽고 멤버들과 묵상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성경 자체가 어려웠기에, 성경 구절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거기에 따른 묵상을 하기가 매번 고역이었다. 잘 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자 한 묵상은 과거, 현재, 미래의 나의 삶과 연관된 것이었다. ,,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귀결되거나, 공동체에서 그만큼 봉사했으니 은혜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성경만이 아닌 다른 것도 충분히 가져다 표현할 수 있는 묵상을 하고 싶었다.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으며 뜬금없이 성경 공부했던 시절이 떠오른 것은 이 책의 문장들이 내가 원했던 묵상의 내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지 않은 내 삶과 내 주변을 이런 글로 돌아보고 싶었다. 기준을 너무 높이 책정해 나의 모자람을 부각시키기보다 조금의 반성과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를 다독거리며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했다.

 

일상과 세계 그 사이에서 빛나는 이야기들시리즈중 하나인 이 책은 저자가 서울의 성곽길 주변에 있는 낡고 오래된 언덕 위의 집에 살면서 느낀 것들을 담고 있다. 반려견 봉봉에 대한 사랑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낸 과정과 슬픔에 대한 단상들, 산책, 책에 대한 얘기도 소소하게 들어있다.

 

기억의 모티프로써 장소는 언제나 각자의 추억과 공감을 가져다준다. 장소는 사람의 성질, 정체성에도 영향을 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파트에만 살다가 오래 된 단독주택에 살게 된 작가가 직접 부딪히고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도 많지만, 그 장소에 있어야만 가능한 느낌들과 묵상이 가득하다.

 

[이 동네에서 집은 삶의 공간이다. 동네에서의 하루하루는 집이든 인간이든 간에 만물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는 돌봄을 통해서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멸을 가까스로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내게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

-p.14]

 

서울 동남쪽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 나는 그동안 한적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신도시가 계속 생겨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이기 시작하고, 덩달아 우리 동네도 리모델링이나 상가 증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어느 쪽으로 산책을 가든 답답함이 느껴진다. 집이 재테크의 수단이 되고 깨끗함과 편리함이 최고가 된 서울이 싫지만 도시 생활에 맞춰진 삶의 패턴을 쉽게 바꾸지도 못한다. 저자가 사는 성곽 주변의 언덕 위의 집이 낭만적으로 보여 질지 몰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은 변화를 원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그곳을 떠나지 못할 사람은 재개발이 늦추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장소는 분명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데도 그것은 우연과 인연과도 연결되어 있다. 생각지도 않게 어떤 장소에 오래 살 수도 있고, 원하지 않아도 떠나야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그곳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면서도 그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을 음미하며 산다. 사람과 세상을 향해 흐르는 따뜻한 마음의 길이 참 좋다. 작가의 그럼 마음을 내 마음에도 심어보고 싶다. 계속 변화되어 싫어지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렇다고 훌쩍 떠날 수도 없기에 콘크리트 높은 벽 사이를 누비며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봐야겠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지 않아 사실 그 사랑에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누군가의 반려견이 저 세상에 갔어도 난 주인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나의 애도는 서툴 것이다. 백수린 작가는 자신의 반려견인 봉봉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낸 후 사람들이 보내 준 빈껍데기 같은 말이 자신에게 더 상실감을 준다고도 했다. 난 이런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척 난감하기도 하다.

 

완벽히 공감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애도의 표현은 당사자에게 미흡하고 텅 빈 마음을 채워주기에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위로를 건네는 애도가 더 좋은 게 아닌가? 말의 내용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받는 것이 더 우선일 것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슬픔은 개별적이고 섬세한 감정(p.131)’이기 때문에 완벽한 공감이 어려울지 모르지만 번번이 공감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은 슬픈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내 인생에서 날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요. 많았어요, 도와준 사람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네 번까지 하고 나면 다 도망가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 경멸하면서... 지들이 착한 인간들인지 알았나 부지.”

 

착한 거야. 네 번이 어디야? 한 번도 안 한 인간들이 쌔고 쌨는데.”

 

드라마 나의 아저씨’ 7화에 나오는 지안과 동훈의 대화이다. 난 이 대사가 참 좋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그것이 다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건 용기를 내는 것이다. 애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소설도 그렇지만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건 비슷한 경험에 대한 표현의 찬란함일 것이다. 집과 사람, 산책길에서 사색한 생각들에 대해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문장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 감탄한다. 더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이만하면 됐다며 포기하는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다.

 

[람이 불어와 나무들을 잡아 흔들고 낙엽이 떨어져내렸다. 그 많은 낙엽은 곧장 바닥으로 떨어질 듯하다가 솟구쳐올랐고 다시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듯 허공을 맴돌았다. 마치 죽음의 군무를 추는 새떼처럼. 쓸쓸하고 찬란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꽃가루처럼. 나는 살면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지만 그날처럼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48]

 

몇 년 전 11월의 어느 날,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씁쓸한 마음으로 산책길에 나섰다가 내가 만났던 경험을 작가는 완벽하게 표현해주었다. 힘든 마음과 내가 바라보는 풍경에서 아름답고 기이한 것을 발견할 때의 전율은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인생은 항상 뭔가의 사이에 있고 그것들이 이율배반적 일 때도 있지만 작가의 말대로 살아 있는 것들 쪽(p.227)' 으로 돌리는 어쩔 수 없는 내 시선을 부끄러워하지는 말아야겠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우리는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자주 가질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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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0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꼬맹이가 얼마 전에
신약을 완독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랬던지요.

저도 어제 라즈 채스트의
부모님과의 이별 에세이
읽고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내 삶의 태도에 생각해
보게 하는 글,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3-03-06 19:36   좋아요 1 | URL
몇년 전부터 레삭매냐님께서 꼬맹이라 표현하셔서 ㅎㅎ 나이를 가늠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약성서를 완독했다니 정말 대단한데요~~

삶의 묵상과 통하는 책을 만나는 건 언제나 기쁨입니다^^
라즈 채스트의 책도 수소문 해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3-03-06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지 할 때가 있어요. 특히 에세이에서 그런걸 발견할 때가.... 그래서 작가는 다르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또 작가의 그런 표현에 위로를 받기도 하는거 같아요. 그래서 책은 사랑입니다. ^^

페넬로페 2023-03-06 23:42   좋아요 2 | URL
정말요!
그래서 작가인가봐요.
어쩜 그렇게 깊이 아름답게 표현하는지 매번 감탄해요~~
그래서 책은 사랑, 싸랑입니다^^

희선 2023-03-07 0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 슬픔은 다 알기 어렵겠죠 그게 자기 슬픔이 됐을 때 그때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르기도 해요 그래도 아주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는 뭔가 말하는 게 좀 낫겠습니다 말이 아니면 가까이 있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둘레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과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없는 사람 마음을 조금 생각하면 좋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3-03-07 09:49   좋아요 1 | URL
뭐든지 겪어보지 않으면 완벽히 알기는 어려워요. 대충 짐작으로 알뿐이죠. 기쁨과 슬픔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툴게나마 조금은 마음을 표현해주고 싶은데 요즘은 그것도 상대방을 생각하기에 잘 안될때가 있더라고요.
희선님 말씀처럼 없는 사람도 생각해야하는데 경제원리가 그렇지 않아 불편하고 아쉬워요^^

자목련 2023-03-07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의 에세이 참 좋았어요. 페널로페 님의 리뷰로 다시 만나니한 번 더 읽는 기분이에요^^

페넬로페 2023-03-07 09:51   좋아요 1 | URL
저는 두 번 다 백수린작가를 에세이로 만났는데 이제 소설을 읽어봐야겠어요.
소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레이스 2023-03-09 21:29   좋아요 1 | URL
소설도 좋아요~♡
단편집 <여름의 빌라> 좋았어요^^

페넬로페 2023-03-10 12:40   좋아요 1 | URL
네, ‘여름의 빌라‘, 오래 전부터 읽어보려고 하는데 계속 밀려요 ㅠㅠ

2023-03-07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3-03-10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경공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교회에서 성경 1년 코스도 들어보고
그룹 성경공부를 8년 가까이하고,
특히 종편 기독교 채널에서도 방송해 주는데
역시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페페님 이 책에서 성경공부 할 때가 생각나셨다니
궁금해지네요. 저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나의 아저씨‘의 그 대사 저도 기억나요.^^

페넬로페 2023-03-10 20:34   좋아요 1 | URL
성경공부 정말 어려워요.
워낙 비유가 많아 그걸 해석해야하고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고요.

페페!
좋은데요.
최근에 서재에서 저와 똑같은 닉네임을 가진 분이 활동하시는거 알고 닉네임 바꿀까도 생각중이예요 ㅎㅎ

stella.K 2023-03-10 20:47   좋아요 1 | URL
아, 모르고 계셨나봐요. 저도 똑같아서 처음엔 놀랐는데 서로 잘 쓰고 계신 것 같아서 그런가 보다했어요. 저도 스텔라님이 계시더라구요. 다행히도 그분은 한글로 쓰셔서 저랑은 다르니까 신경 안 쓰기로 했죠. 페페 마음에 드시나요? 벌써 그리 불러드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자제하고 있었죠. ㅋ 저도 텔라로 불러주시는 분계신데 그렇게 약칭으로 불러주는 것도 좋더라구요. 애칭같고. 앞으로 페페도 사랑해 주세요.^^

희선 2023-04-08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축하합니다 비에 벚꽃이 많이 떨어졌더군요 그래도 다 떨어지지 않고 남은 것도 많아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