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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피아드 -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ㅣ 세계신화총서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문학의 뿌리이자 출발점으로 간주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막상 읽어보면 당혹스럽거나 의아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지혜의 상징으로 알려진 오디세우스가 오히려 간사하고 교활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끄는 두 수장인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은 전쟁의 패배로 노예로 전락한 브리세이스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다. 브리세이스를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분노로 인해 전쟁 참여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무척이나 옹졸한 영웅들이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헬레네와 페넬로페에 관련된 에피소드였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맞먹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바람이 나서 그를 따라 가버린다. 이것은 ‘파리스의 사과’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결국 이로 인해 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는 10년 동안 전쟁을 치른다. 물론 전쟁의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호메로스는 헬레네와 파리스를 그 원인으로 내세운다.
그리스의 승리로 트로이가 함락되지만 헬레네에게는 어떠한 페널티도 주어지지 않는다. 헬레네로 인해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헬레네의 쟁취로 전쟁은 끝난다는 식이다. 헬레네의 경솔한 행동으로(사실 신들의 장난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여인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가지만 그녀만은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해 메넬라오스를 찾아갔을 때, 밤이 되면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아무 거리낌 없이 부부의 침상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헬레네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였다. 그녀는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고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까지 20년 내내 고통을 당한다. 아들이 한 살이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가하러 집을 떠나고,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의 소식이 끊기고, 그가 돌아올 가망성이 없어지자 페넬로페에게 백 명이 넘는 구혼자가 나타난다. 그 당시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했고 젊은 귀족들은 페넬로페와 결혼해 오디세우스의 권리를 얻으려했다. 여성은 내키지 않아도 남자의 구혼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짓는다는 핑계를 대며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 다시 그것을 풀어버리며 오디세우스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는 그런 처지에 있는 페넬로페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애트우드는 정숙한 아내의 전형으로 표상되는 페넬로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상상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솔직하고 신랄하게, 가슴이 뻥 뚫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똑같이 ‘오디세이아’를 패러디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는, 페넬로페에 해당하는 마리온을 너무 심하게 꼬고 왜곡시킨 반면 애트우드는 현실을 바탕으로 그 가운데 여성을 중심에 둔다.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애트우드가 신화나 그리스 서사시에 대해 느낀 것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좋았다.
애트우드는 『페넬로피아드』를 ‘오디세이아’에서 패러디했지만 소설의 구성은 그리스 비극의 형식으로 전개했다. 페넬로페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각 장 사이에 고대 연극에서 코러스 라인에 해당하는 12시녀의 목소리를 여러 형태로 구성했다. ‘오디세이아’ 22권에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의 구혼자들과 간통했다는 이유로 12시녀의 목에 올가미를 휘감은 채 한 줄로 매달아 죽인다. 작가는 왕비인 페넬로페와 12시녀를 교차시키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똑같이 차별받는 여성의 세계에서도 지독한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여성끼리의 연대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교수형을 당한 열두 명의 시녀와 페넬로페에게 화자의 역할을 맡겼다. 시녀들은 합창단이 되어 주로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그것은 『오디세이아』를 정독하고 나면 자연히 떠오르는 의문들이다. 시녀들이 교살된 까닭은 무엇인가? 페넬로페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디세이아』에 실린 이야기는 물샐틈없이 논리정연하지 않다.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다.
-p.17, 머리말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불가능한 시기에 산 페넬로페는 죽어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놓을 수가 있었다. 자신의 삶과 느낌들을 명부로 내려가서야 자기 식대로 털어 놓는다. 페넬로페는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다시 환생하는 삶을 거부한다. 새로운 생 역시 자신에게는 고달프고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안다. 불행과 고통의 규모가 더 커지고 여성의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한다. 그냥 수 천년동안 자신의 기억들을 간직하며, 한 번씩 영매를 필요로 하는 현대의 저속한 인간들을 통해 세상을 구경할 뿐이다.
페넬로페는 평생 사촌 언니인 헬레네를 의식하며 산다. 죽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움을 무기로 세상을 쥐락펴락한 헬레네에 비해 자신은 모든 것이 초라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환생한 헬레네는 현대의 모든 문물을 받아들이며 아름다움을 유지시키려 한다. 헬레네는 남성과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을 지키고 그것으로 안정과 쾌락을 보장받는 여성이다. 헬레네와 대조적으로 페넬로페는 그것을 거부한다. ‘오디세이아’에서 벗어난 페넬로페는 페미니스트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여성에게 그러한 것은 죽은 후에야 실현되는 건지도 모르지만......
애트우드는 12시녀를 통해 다양한 것을 시도한다. 그녀들은 자신의 불행을 노래하고, 신세를 한탄한다. 시녀들이 출연한 인류학 강의도 있다. 달을 숭배하던 모계사회가 아버지신(神)을 받드는 이방인들의 침략으로 결국 남자가 권력을 잡아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는 가설을 말한다. 누군가는 그러한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근거 없는 헛소리라고 주장한다. 오디세우스가 겁탈당한 12시녀를 죽인 것은 그들이 허락도 없이 겁탈당했다는 것이었다.(p.211)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겁탈. 만약 오디세우스를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페넬로페가 구혼자들 중의 한 명과 결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3명의 여자들이 한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경쾌하고 풍자적으로, 신랄하고도 현실에 맞게 쓴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는 단숨에 읽히는 책이다. 재미도 있다.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고대의 여성을 얘기하며 현대를 사는 여성의 역할을 조명해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달라졌고, 지금의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는가? 세월이 흐른 만큼 세상은 변화되었을까? 이 책은 요즘 읽고 있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최근에 본 드라마 ‘사랑의 이해’와도 연결되어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다.
‘페넬로피아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그리스 신화'를 읽고 난 후 읽으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교훈적 전설. 딴 여자들을 매질할 때 써먹는 회초리. 어째서 너희들은 페넬로페처럼 사려 깊고 믿음직스럽고 참을성 많은 여자가 못 되는 거냐? 그것이 정해진 대사였다. 가객들도 그랬고 이야기꾼들도 그랬다. ‘제발 나처럼 살지 마요!’ 나는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렇다, 바로 당신에게! 하지만 내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번번이 올빼미 울음소리만 나온다.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