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런 말로 그의 마음속에 울고 싶은 욕망을 더욱더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에 맞고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를 울며 끌어안았다. 바람과 부푼 파도에 떠밀리던 잘 만든 배가 포세이돈에 의해 박살난 탓에 바다 위를 헤엄치던 자들에게 육지가 반가워 보일 때와 같이 꼭 그처럼 그녀에게는 남편이 반가웠다. 그녀는 흰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잠시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p542

 

아트레우스의 아들의 혼백이 그에게 대답했다.

행복하도다 그대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여! 그대야말로 부덕(婦德)이 뛰어난 아내를 얻었구려! 이카리오스의 딸, 나무랄 데 없는 페넬로페는 얼마나 착한 심성을 지녔는가! 그녀는 결혼한 남편 오뒷세우스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모했던가! 그러니 그녀의 미덕의 명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불사신들은 사려 깊은 페넬로페를 위해 지상의 인간들에게 사랑스러운 노래를 지어주실 것이오. -p557]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솔 출판사

 

[혼자 남아 표류하던 오뒷세우스는 오귀기아라는 섬에 도착하고, 거기서 님프 칼륍소와 7년 동안 행복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이번에도 오뒷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섬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거칠고 넓은 바다를 항해해야 하고, 고향 이타카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뒷세우스는 신이 아닌 인간의 삶을 선택합니다......

물론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건 단순히 불멸의 명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의 귀가는 인간 조건 속으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

오뒷세우스는 영원하고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아프면서 고통스럽고 시시각각 고민에 횝싸이는 인간의 삶을 향해 스스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더욱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슬픔이 있기에 기쁨은 더욱 달콤하고, 고통이 있기에 성취의 보람도 커집니다. -p125~133중 발췌]

-<천년의 수업>, 김 헌, 다산 초당

 

[사실 율리시스는 아내 곁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한 사나이였어요. 그의 잠재된 의식은 아내 곁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서 앞길에 장애물이 생기길 바랐고, 또 그렇게 된 거죠. 율리시스의 모험 정신은 조금이나마 고향에 늦게 돌아가고 싶은 그의 무의식적 욕망을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아요. 모험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체되고, 자연스럽게 귀국이 늦어져 고향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얘기죠. -p180

 

오디세이는 부부 사이의 권태와 인간의 내면을 다룬 이야기에 지나지 않아요. 율리시스는 아내에 대한 싫증을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겨우 극복할 수 있었고 자기가 아내를 싫어하게 된 원인인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승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p181

 

정리하자면, 우선 페넬로페는 율리시스가 구혼자들의 잘못된 행동을 방관하고 당당한 왕이자 남편의 태도를 보이지 않아 경멸하게 됐고, 다음은 아내의 이런 경멸이 율리시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며, 세 번째는 자기를 경멸하는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율리시스가 귀환을 미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페넬로페의 존경과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 율리시스가 구혼자들 모두를 학살한 거죠, 알겠어요? -237

-<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책의 제목과 앞표지의 사진을 보고, 이 책을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예상은 한참이나 빗나갔다. 책 속에 이렇게나 많이 오디세이에 대한 해석이 나올 줄 몰랐으며, 그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해석들이 나의 뒷통수를 쳤다. 이 책에는 부부 사이의 감정과 욕망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설명하기 어려운 온갖 메커니즘이 들어 있으며, 그것을 율리시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를 등장시켜 그 상황들을 암시한다. 결말에 반전도 있다.

 

몰티니와 에밀리아 부부는 행복했지만, 결혼 2년이 지난 후부터 그들 사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몰티니는 아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부터 줄기차게 그 이유를 궁금해 하고, 집요하게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그녀가 그를 경멸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다양한 관계는 기능적인 것들이 많다. 그렇게 때문에 그 관계들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유를 찾기 어렵고, 그 이유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유치해진다. 사랑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족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이 다 인 것 같지만 사실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거의 대부분 기능적인 것들이 작용한다. 몰티니는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사랑이라는 감정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에 기능적인 면들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것들을 무시하고, 비판하고, 오해한다. 하지만 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갈등의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을 경멸하게 만든다.

 

경멸은 몰티니의 회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몰티니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래서 약간 답답한 면도 있다. 에밀리아가 몰티니를 경멸하게 된 이유가 너무나 분명한데도(독자들은 알 수 있다) 그는 그것을 나중에야 어렴풋이 알게 된다.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자신의 성격,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 아내보다 훨씬 더 지성적이고 잘났다는 자만심으로 정작 아내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경멸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괴로워하며 에밀리아와 그를 벼랑으로 몰고 간다.

 

오래전부터 내가 읽어왔던 책에는 오뒷세우스라는 인물이 무수히 많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는 인간 지혜의 상징이며,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인간이었다. 어느새 오뒷세우스는 내 마음에 영웅으로 자리 잡았고, 난 그를 흠모했다. 그러나 몇 년 전 직접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읽으며 만난 오뒷세우스는 내 마음의 영웅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물론 그는 상당히 지혜롭고 지략이 뛰어나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사실 약삭빠르고 비겁하기도 했다.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며 한없이 울고, 자신의 울분을 못이겨 충동적이기도 했으며, 여러 여자와 잠자리에 들었다. ‘오뒷세우스는 나에게 지혜롭지만 나약하고, 충동적이며,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경멸에는 여러 형태의 율리시스가 나온다. 작가는 몰티니를 영화 감독인 레인골드가 해석한 율리시스로 표현한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몰티니는 호메로스의 시정과 신곡에서 서술된 율리시스를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난 몰티니에게서 내가 본 오뒷세우스의 모습을 보았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 안에서만 맴돌며, 관계를 악화시키는 그런 모순되고 나약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몰티니는 이기도 하다.

 

[마침내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아직은 우리의 고난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닥칠 것이고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 하오. p543]

-<오뒷세우스>

 

온갖 어려움을 겪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오뒷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아직도 고난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설 경멸의 결말을 살짝 비틀어 생각해보면, 몰티니와 에밀리아가 결국 헤어져 살아간다 했을 때, 몰티니는 극작가라는 자신의 길을 가지만 분명 가난해질 것이다. 에밀리아도 다시 타이피스트의 삶을 살아가며, 현대적 욕망의 상징인 바티스타의 애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고난의 길이 열려 있다. 그래서 난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오디세이에 대한 해석 중 호메로스의 시정이 담긴 본래의 서사시를 원한다. 아마 그것은 몰티니의 해석일 것이다.

 

[바위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을 지나 눈

을 들었을 때, 한없이 푸른 바다가 마치 눈웃음을 치는 것 같았다. 오디세이가 떠올랐다. “율리시스, 페넬로페와 함께 에밀리아가 이젠 이 넓은 바다에 있구나하고 혼잣말을 해봤다.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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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30 17: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사놓고 안읽었는데 페넬로페님한테 쉽지 않으셨다니 ~ 걱정이군요ㅡㅡ 그래도 오딧세이 이야기 좋아해서 더 궁금하긴 하네요~뮌가 관계에 대한 이야기 완전 좋아합니다^^

페넬로페 2021-05-30 18:04   좋아요 6 | URL
이 책이 읽기가 어렵지는 않아요~~근데 생각할 것이 많아요. 가볍게 읽으면 한없이 가볍고 깊게 읽으면 정말 깊숙히 들어갈수 있어요. 전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고 싶었어요~~
저의 리뷰는 아마 여자의 입장이 많이 들어갔을텐데 새파랑님의 느낌도 넘 궁금해요~~

청아 2021-05-30 19:11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님 구구절절 맞습니다! 독서토론하면 밤을 샐 수도 있을듯ㅋㅋ새파랑님 리뷰 저도 궁금요^^

새파랑 2021-05-30 20:06   좋아요 5 | URL
앗~ 두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 가벼운 리뷰가 나올꺼 같지만 곧 읽어볼께요~!!

scott 2021-05-30 21:04   좋아요 5 | URL
새파랑님 리뷰 기대 1人 요기 ✋

청아 2021-05-30 19: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으아 <천년의 수업>까지! 덕분에 작품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페넬로페님의 리뷰를 읽는 것으로 마치 책을 한 번 더 읽은 것 만큼의 감동이 왔어요~♡ 올려주신 천병희님 번역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도 다시 찜! 아무래도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고 이 책을 재독해야 할것 같네요👍ʕ ๑ •̀ᴗ-ʔ ~♡

페넬로페 2021-05-30 18:07   좋아요 5 | URL
저 번 미미님 리뷰에서 왜 이 책에 대해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의 관계를 언급하셨는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며 이해가 되더라고요~~
작가의 생각도 놀라웠고 제임스 조이스와 신곡도 읽고 싶어졌어요^^

scott 2021-05-30 21:04   좋아요 6 | URL
미미님의 보석 같은 리뷰 다시 읽고 왔습니다
영화 경멸과 라디오 헤드 음악 크립속 잡음이 배경음악으로 쫙 깔리는 한남자의 오디세이.
미미님이
사랑에 빠져서 파랗던 하늘이 노랗고 황량하게 변해가는 모습까지!!
‘경멸‘은 장대하고 웅장한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프로이드적 심리로 바라본 남녀관계의 내밀한 심리 소설!
이책 쓸 당시 작가 모라비아가 아내를 살해 하고 싶은 충돌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현실감 넘치는 심리 소설을 완성했죠.
고전을 패러디 해서 20세기 고전으로 만든 모라비아도 거장!

청아 2021-05-30 21:11   좋아요 4 | URL
아하! 그런 숨은 배경이 있었군요!! 다이아몬드 스콧님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또 얻었네요~ 👍👍그래도 결국 살해하지 않고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데 거장으로의 자격이 충분한것 같아요!다른 작품도 궁금합니다~^^*♡

scott 2021-05-30 21: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리뷰 읽고 나니 오디세이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일리아스 읽던거 잠시 중단 ฅ՞•ﻌ•՞ฅ

페넬로페 2021-05-30 23:39   좋아요 2 | URL
저도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를 기회된다면 재독하고 싶어요~~워낙 내용이 많아 기억이 잘 안나는 구절이 많아요^^

다락방 2021-05-30 22: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읽으니 오디세이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그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었던 페넬로페님이 엄청 부럽습니다!!

페넬로페 2021-05-30 23:41   좋아요 2 | URL
네, 아무래도 오디세이아를 읽어서 이 책에 대한 이해가 좀 쉬웠던것 같아요~~다락방님께서 지금 성경 읽기 하고 계시니 그것과 병행해 읽으셔도 좋을듯 해요^^

coolcat329 2021-05-30 22: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디세이아가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오디세이아 잘 몰라 인터넷에서 찾아봤거든요. 이 책이 페넬로페 님에게는 더 풍성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을듯 합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1-05-30 23:43   좋아요 3 | URL
오디세이아를 읽었지만 모라비아 작가가 너무 현대적이고 획기적으로 해석해 참 신선했어요~~역시 작가의 상상력은 대단한것 같더라고요^^

붕붕툐툐 2021-05-30 23: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가 나와서 페넬로페님이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었다 생각하는 1인! 저도 붕붕툐툐가 나오는 소설을 만나면 멋진 리뷰를 쓸게요!;;;;ㅋㅋㅋㅋ
저에겐 너무 어려울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하지만 저도 오딧세이는 읽고 싶네요~!!헤헷~

페넬로페 2021-05-30 23:48   좋아요 5 | URL
ㅎㅎ~~그렇군요!
오늘부터 붕붕툐툐가 나오는 책을 찾아 볼께요^^
이 소설이 그리 어렵지는 않으니 기회되시면 한 번 읽어 보셔도 좋을듯 해요^^사람마다 그 느낌들이 다 다를 것 같아 재미 있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