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않는 하루’는 암이라는 병 앞에 소환된 저자가, 1년 동안 일상과 생각을 기록한 글이다. 고통 속에서 암 투병을 하는 사람이 쓴 글이 맞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이 책에 있는 모든 문장들은 담백하고 담담하다. 수술을 받고, 여러 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 중에도 여행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매일 아침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 간다. 몸에 힘든 병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에 고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천천히, 세심하게 보고 느낀다. 사물과 존재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내가 예외일 이유가 없음을 받아들이며, 몽테뉴의 책에 위로를 받는다.
{암이라는 병도 비슷하다. 피레네의 종소리처럼 내 인생에 눈금을 긋는다. 병이 생기기 전과 그 이후로 자르고, 그 이전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사색하게 만들며 사는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 번씩 ‘내가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육신의 고통이야 말할 필요가 없고, 그보다 내 손이 미치지 못할 가족을 생각하면 더 암담하다. 나의 소진(消盡)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없다면 그들의 삶 역시 피폐해질 것이다. 병을 앓는 육신의 아픔은 온전히 개별자의 몫이지만, 시작하고 일궈놓은 관계에서조차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만으로도 신산스럽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암울해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무한히 위로해야 하는데도 정작 난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같은 반대적이며 이중적인 것들 모두 내 마음이 결정하며, 그저 담담히 인생과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난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 그 일기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육아일기로 교체되었는데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일기를 쓰라고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도 전반적인 일기의 내용은 반성과 후회였다.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는지, 아님 스스로가 못나빠진 얼간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매순간 치열하고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내 일기는 항상 그렇게 반성만이 가득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나의 문장들에 싫증이 나서 어느 순간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화열의 ‘지지않는 하루’를 읽고 다시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다시 일기를 쓴다면, 이 책에 적힌 문장처럼 나의 일상을 묵묵히, 간결하게 기록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영리한 행복을 추구하는 글로 쓸 것 같다.
{의사가 물었다.
“마담 르그랑은 무슨 일을 하나요?”
“디자이너고 글도 씁니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좋은 책의 주제를 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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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탁에서 구역질 때문에 식사를 멈추는 걸 보고 올비가 말한다.
“6개월 뒤에 출산하는 거야. 이번에는 아이가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이왕이면 저 문장처럼, 기지와 충만한 위로가 가득한 글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