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책소개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유명한 드라마 작가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소개하며, 이 책을 읽는 순간 저자가 딱 자신의 남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가볍고 얇은 것이 닮았다고....그녀의 얘기를 듣고 부담없는 마음으로 많은 재미를 기대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가벼운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진중했다. 유머 코드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해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거시적인 개념서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드라마 작가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남편을 연상했는지 모르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표현된 빌 브라이슨의 말들은 결코 가볍고 얇지 않았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의 대표적인 3대 장거리트레일 중 하나로, 애팔래치아 산맥이 뻗어있는 모양대로 미국 동부의 남북을 길게 가로질러 있으며, 걷는 거리가 총 3500km 에 이르는 산길이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살다 미국으로 돌아온 빌 브라이슨은 뉴햄프셔의 작은 마을로 이사했는데 자신이 사는 마을의 길이 애팔래치아 트레일로 연결되는 것을 발견한다. 곧 그는 트레일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5년 동안 거의 만나지도 않았던 친구 카츠와 함께 걷기를 시작한다.

 

이 책에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유래, 시초와 함께 저자가 지나간 구간에 대한 특별하고 슬프기도 한 역사와 트레일에 접해있는 마을의 특징도 실려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인디언의 트레일이나 식민지 개척의 길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길과 편의 시설을 건설하고, 여러 천연자원을 채굴, 나무를 벌목하는 과정에서 많은 야생동물과 숲이 사라지고, 환경이 파괴되었음을 저자는 아쉬워한다.

 

트레일을 걸으며 느끼는 감상도 풍부하다. 힘든 트레일 걷기를 하며 숲, 고독, 매일 똑같이 걷기, 저체온증에 대해 얘기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중 가장 문학적인 산인 그레이록(이곳에서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했다)’에 대해, 일이 가장 암울하거나 꼬여 있을 때 뭔가 운수 좋은 일이 일어나 당신이 순항하도록 돕는 산길의 마법에 대해서도 그는 아름답게 표현한다.

 

친구 카츠와 함께 한 여정도 무척 인간적이다. 등산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카츠가 같이 트레일을 걷기를 원했을 때 브라이슨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한 번씩 마음이 맞지 않고, 걷는 속도도 다르지만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는 동지가 된다. 몇 개월 걷기를 쉬고 다시 그들이 만났을 때, 친구 카츠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걸 브라이슨은 알게 된다. 카츠는 약물과 알콜중독의 전력이 있어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안된다. 브라이슨은 격분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카츠의 고독과 힘듦을 이해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인간 카츠를 통해 삶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힘든 카츠를 위해 빌 브라이슨은 과감히 트레일 걷기를 포기한다. 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제일 좋았다. 뭔가를 꼭 끝까지 하며 성취해내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를 위해 그만둔다는 용기도 아름답다. 겨우 트레일의 39.5%를 걸었어도 그들은 그 길 위에 있었다. 그러면 된거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 칠 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 법도 배웠다.....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내게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3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p389

 

 

 

 

 

 

 

 

 

 

 

 

 

 

 

 

나를 부르는 숲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는 책이라면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147일 동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종주하며 걷는 경험과 느낌을 세세하게 서술한 책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식도 따로 하지 않고 신혼여행으로 자전거와 걸어서 하는 세계여행을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자는 인생 모토를 가지고 이들은 길을 걷는다. 보통 사람들이 거의 매일 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거기엔 분명 우리가 체험하지 못하는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 다를 거지만 각자의 삶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난 행복한가?

 

트레일매직(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하이커들을 위해 음식, 비상약품, 숙식등을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것이 있다. 계속 걷는 사람들은 배낭에 최소한의 음식만을 넣고 다녀야 하는데 그들은 매번 배가 고프다. 그럴 때 누군가가 놓아둔 트레일매직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울지 이해가 된다. 트레일매직 뿐만 아니라 하이커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돈을 써가며 도와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이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세상은 그래도 이런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해본다. ‘트레일매직’,산길의 마법을 브라이슨과 이하늘은 이렇게 다르게 표현했지만 그것은 하나다.

 

트레일을 걷다 보면 하이커들은 비를 자주 만난다. 온 몸이 축축한 채로 걷다가 마을을 만나면 그곳에서 몸을 말리고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감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고보면 감사란 큰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만 매번 까먹는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건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순간순간 불안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이 맞는지를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특별한 길을 가기로 선택한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내가 가지 못하는 길을 과감히 들어선 그들이 보내는 행복의 메시지가 많았으면 한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제야 읽었다)이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좀 더 알고자 아무 기대없이 선택한 이하늘의 책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두 부부가 가고 있는 특별한 길과 그 길에서의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해 감동적이었다. 그들이 계속 행복하기를...

 

앞서가던 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잠시 멈추면, 이내 그도 멈춰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걷기 시작하면 그 역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재촉하거나 추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고 함께 호흡하고 발걸음을 맞춰 가는 것, 그 순간 이것이 바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p36

 

"Hike on your way(너만의 길을 가)-p54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걷기를 시작했다. 나의 두 발로 걸으면 걸을수록 걷기라는 것의 매력에 빠졌고, ‘걷기에 중독되었다. 걷기 시작하니 이젠 웬만한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요즘은 동네의 산책길뿐만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곳엔 거의 데크길을 설치해 걷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걷기를 위해 사람의 손길이 꾸준히 필요해졌으며 그것을 계속 관리하기 위해서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을 위해 설치한 인공적인 길 때문에 또 그만큼의 자연이 훼손될 것이다. 하지만 나이드신 엄마와 함께 걷는 그 편안한 길이 고맙기도 하다. 엄마가 그 길을 걸으며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실 때 그 길은 엄마에게 트레일 매직이 된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사람과 자연에게 다 좋은지 그 선택은 무척 힘들 것 같다. 그 방향이 탁월하고 센스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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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6 13: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곰들의 길 ㅎㅎ 아파팰래치아 트레일 인간들에게는 일생의 한번! 크게 마음먹고 가야할길 같습니다. 엄마와 함께 산책 하시는 페넬로페님!! 엄마와 보폭을 맞춰가며 함께 걷는 모습, 역쉬 딸이 쵝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는 지하철 두정거장은 걷고 있는데 공원속 꽃길에 감탄! 감탄 페넬로페님 4월은 많이 걷기!!

페넬로페 2021-04-06 16:06   좋아요 3 | URL
어떤 길이든 유명한 길을 꼭 한번 걷고 싶어요. 그래도 저의 최고의 로망은 산티아고 순례길이예요 ㅎㅎ
요즘 걷기에 참 좋은 계절이죠?
많이 걷자구요 ^^

미미 2021-04-06 14: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글이예요~♡ 저도 들은것보다는 막상 읽을때 여러모로 무게감을 느끼며 읽었어요. 자연에 관해서도 우정에 관해서도 질문하게 하는 좋은 책.저도 옆에 공원과 산이있어 즐겨 걷고 있어용. 걷기도 책읽기도 너무너무 좋아요!😄

페넬로페 2021-04-06 16:09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 책을 생각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잘 읽었어요~~어떤 경험에 대해 작가들은 왜이리 글을 잘 쓰는지^^집 주변에 공원과 산이 있으면 너무 좋죠. 미미님의 걷기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04-06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유럽이라는 프로가 있나보군요~작년부터 만보걷기 챌린지 같은거 하는데 ‘걷기‘ 정말 좋은거 같아요^^ (최근에는 달성율이 저조하지만...)

페넬로페 2021-04-06 16:11   좋아요 2 | URL
이 프로를 좀 보다 이제는 안보는데요, 유명한 셀럽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다양하더라고요^^
하루에 만보걷기는 작정하고 걸어야하는데 대단하시네요^^
날씨 좋고 꽃이 만발한 4월에 새파랑님의 걷기를 응원합니다**

초딩 2021-05-08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페넬로페 2021-05-08 19:47   좋아요 1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5-08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1-05-08 19:47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5-08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5-08 22:5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용^^